반효진 “금 딸게”…사격 반대한 엄마와 약속 3년만에 지켰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최고 스타로 떠오른 반효진(17)은 총을 잡은 지 3년밖에 안 된 새내기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21년 7월 함께 태권도장을 다니던 친구의 권유로 처음으로 총을 잡았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두 달 뒤 열린 대구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며 아예 엘리트 사격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반효진의 어머니 이정선씨는 “막내딸이 느닷없이 사격을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반대했다. 그런데도 뜻을 굽히지 않자 ‘국가대표가 돼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겠다’고 약속하면 허락하겠다고 했다”면서 “그런 우여곡절 끝에 사격선수가 됐는데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딸이 돌아오는 대로 고기를 듬뿍 넣은 ‘엄마표’ 된장찌개를 끓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부도 잘했던 반효진은 똑똑한 머리와 사격 재능을 더해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친구들보다 늦게 사격을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10배는 더 노력한다는 각오로 훈련을 거듭했다. 해마다 몰라보게 기량이 성장한 반효진은 지난해부터는 국제대회에서도 입상하면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어 경험을 쌓기 위해 출전한 지난 3월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전체 1위를 차지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반효진의 좌우명은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후회 없이’다. 여고생답지 않은 당찬 마음가짐이다. 평소 그의 성격도 ‘쿨’한 편이다. 침착하면서도 나쁜 건 빨리 잊어버리는 쿨한 성격이 사격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다.
이날 결선은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는 명승부였다. 경기는 8명의 선수가 먼저 10발씩 쏘고, 이후 두 발씩 총을 쏘면서 중간 합계 점수가 가장 낮은 선수가 한 명씩 탈락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반효진은 초반부터 황위팅과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였다. 경기 중반 한때 2위로 밀려났지만, 13번째 격발에서 만점인 10.9점을 쏴 1위 황위팅을 0.5점 차로 추격했다. 이어 16번째 격발에서 다시 10.9점을 쏘면서 168.7점이 됐고, 마침내 황위팅을 0.1점 차로 제쳤다.
그러나 반효진은 금메달을 의식한 듯 경기 막판에 흔들렸다. 23번째와 24번째 격발에서 차례로 9.9점과 9.6점을 쏘면서 황위팅에게 251.8점 동점을 허용했다. 그러나 마지막 슛오프에서 10.4점을 적중해 10.3점을 쏜 황위팅을 극적으로 제쳤다.
경기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총을 쐈던 반효진은 “마지막 두 발이 그렇게 크게 빗나갈 줄 몰랐다”며 “당황했지만, 슛오프라고 하길래 ‘하늘이 내게 금메달을 딸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한 발을 더 소중히 생각했다. 심호흡을 한 뒤 항상 쏘듯이 똑같이 쐈다”고 했다.
‘10대 명사수’ 반효진의 깜짝 선전으로 한국 사격은 파리 올림픽에서만 벌써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를 수확했다. 한국 사격은 이번 대회 목표를 금메달 1개, 은 2개, 동 1개로 잡았는데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이대명 해설위원은 “지난 도쿄 올림픽에서 성적(은메달 1개)이 좋지 않아 이번 대회를 앞두고 사격 관계자들의 걱정이 컸다. 그러나 최근 월드컵에서 선수들의 기량이 상승세를 타면서 기대감이 커졌고, 어린 국가대표 사수들이 실력을 마음껏 뽐내면서 목표를 빠르게 달성했다. 남은 기간 사격에서 메달이 추가로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리=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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