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이 전화해서, 용산이 보고있다고..." 경찰판 '채해병 사건' 터졌다
[조혜지 기자]
▲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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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장께서 밤 9시에 전화해 심각한 어투로 말하셨다. 이 사건을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 (기자들과의) 신뢰가 깨지는 일이라 안 된다고 하니. 서장이 '지시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29일 오후 증인 심문을 시작한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제2의 수사외압' 의혹으로 들썩였다. 대규모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수사 결과 발표 직전 '세관 연루 가능성을 언급하지 말라'는 압박을 경찰 고위 간부를 비롯한 상급자들에게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마약수사 경찰에게 걸려온 '윗선'의 전화들
현재 좌천성 인사로 보직을 옮긴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경정)은 이날 청문회에서 브리핑 예정일 이틀 전인 지난해 9월 20일 당시 영등포경찰서 서장이었던 A총경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사실을 언급했다.
▲ 조병노 전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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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병노 전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오른쪽)과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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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경정에게 그즈음 전화를 한 인사는 또 있었다. 조병노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경무관) 역시 지난해 10월 5일, 백 경정에게 마약 밀반입에 인천공항 세관 직원의 연루 사실을 언론에 공개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논란이 가중된 이유는 조 경무관이 이른바 '임성근 구명로비 의혹' 한가운데 있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의 녹취록에 언급된 인물이라는 데 있었다. 이 전 대표는 이 대화에서 조 경무관을 거론하며 승진 여부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경정은 당시 조 경무관이 자신에게 전화한 내용을 재차 진술했다. 외압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자기 소개를 먼저하고, '세관 이야기 안 나오게 해주시는 거죠?' 말했고. 제가 대답하지 않으니 '관세청도 국가기관이고 경찰도 국가기관인데 기관끼리 싸우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제 얼굴에 침뱉기 아니냐'... (중략) 서울경찰청과 이야기해서 (세관 연루 여부가) 다 빠졌다고 했더니 조 경무관이 '올바른 스탠스입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정부를 엄청 공격할텐데 우리가 야당 도와줄 있습니까' 하고 말했다."
조 경무관은 백 경정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곧바로 반박했다. 조 경무관은 "(백 경정에게) 상세히 설명해줘서 고맙고, 상급기관과 협의한 만큼 잘 됐을 거라고, 국감을 앞두고 국가기관을 좀 세심히 고려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다만 인천공항 세관장으로부터 사실 확인을 부탁 받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조 경무관은 "(인천 세관에서) 국감 대비 차원에서 마약 밀반입 사건에 연관이 있는 세관 직원이 (언론브리핑에) 언급되는지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제 생각이 짧았다"고 설명했다. 이 답변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신정훈 행안위원장은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한가하냐"고 소리쳤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그 일이 조 경무관의 업무에 포함된 것이냐"고 다시 물었고 조 경무관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위 의원은 "부당한 청탁을 받아 (수사 일선 경찰에게) 부당한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조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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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은 이 사건을 '제2의 채해병 수사 외압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경찰판 박정훈 대령 사건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 백 경정에게 같은 사안으로 조 경무관을 포함해 서울청 형사과장, 영등포서장으로부터 압력이 들어온 정황을 강조했다. 윤 의원은 "직접 상관인 서장이, 업무 연관성이 전혀 없는 서울청 부장이... 뭔가 이상하지 않나"라면서 "이들을 움직인 보이지 않는 손을 밝히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이날 청문회 대상인 조지호 후보에게 따져 물었다. 조 후보자는 앞서 공보규칙 위반과 지시사항 위반 사유를 들어 백 경정에 대해 좌천성 인사를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후보자는 윤 의원의 "영등포서장의 전화 압력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보고 받았느냐"는 질문에 "영등포서장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고 답했다. 윤 의원은 "부하가 압력을 받아서 흔들리는데 그걸 지켜주진 못하고 좌천성 인사를 하는게 대장이 할 역할이냐"면서 "비겁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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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 "아무리 (세관이) 국가기관이라고 해도, 피의자에 가까운 기관에서 상황을 확인해달라는 전화를, 경찰 내부에서 전달해주나?"
조지호 : "금지되어 있다."
신정훈 : "마약 수사라는 엄중하고 긴장된 사건을 다루는 담당자가 상급기관 간부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이게 사실 확인 전화로 이해가 되나? 아니면 압력으로 받아들이겠나?"
조지호 : "후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신 위원장은 조 후보자의 답변 끝에 조 경무관에게 "부적절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다. 그러나 조 경무관은 백 경정의 전체 녹취를 확인해야 한다고 맞섰다. 신 위원장은 이에 "끝끝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당사자에 대해선 국회의 대처가 엄중할 것"이라면서 "따로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에 "동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역시 "행안위 청문회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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