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갇힌 김범수…‘뉴 카카오’ 날개 꺾이나
카카오가 2006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져들었다. 창업자면서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서 있는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사법 리스크와 회전문 인사 논란 이후 전반적인 쇄신 작업에 나선 상황에서 이를 총괄하던 김 위원장이 구속돼 다시 한 번 급제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소환 14일 만에 속전속결
혁신의 상징이던 김범수 위원장이 ‘철창 신세’가 된 건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인수와 관련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엔터 경영권을 두고 하이브와 인수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경쟁자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사모펀드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 SM엔터 주가를 하이브 공개매수가인 12만원 이상으로 높게 설정하고 시세 조종을 벌였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김 위원장이 이를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는지가 핵심이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송치 8개월 만인 7월 9일 김 위원장을 소환해 밤샘 조사를 벌였다. 7월 17일에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김 위원장의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송치받은 지 8개월 만에 김 위원장을 소환한 검찰이 8일 만에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검찰이 ‘결정적 단서’ 확보에 성공했다는 관측이 파다했다. 한정석 서울남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월 22일 오후부터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했다. 이후 7월 23일 새벽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의 우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7월 22일 영장실질심사에서 200쪽 넘는 프레젠테이션(PPT) 자료와 1000쪽 분량 서면 의견서를 통해 김 위원장의 구속 필요성을 역설했다.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 당시 김 위원장의 시세 조종 공모 혐의를 입증하는 충분한 인적·물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의사 결정을 승인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이준호 카카오엔터 투자전략부문장은 지난 7월 3일 증인신문에서 “배재현이 ‘브라이언(김 위원장의 영어 이름)의 컨펌을 받았으니 걱정 말라’고 얘기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배재현은 카카오 전 투자총괄대표로 SM엔터 인수를 주도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다만 검찰이 가진 ‘확실한 증거’가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진 않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시 여부를 입증할 확실한 물증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논리 싸움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면서 “김 의장은 2월 28일 카카오 투자심의위원회에 참여해 하이브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 이뤄진 1300억원 규모 주식 매집 계획을 보고받고 승인했다. 이를 시세 조종 지시로 보느냐 아니냐의 싸움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구속은 피하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7월 9일 검찰 소환 조사에서 “SM엔터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7월 18일에는 “현재 받고 있는 혐의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는 구속. 카카오 내부에는 “과도한 조치”라는 불만도 나온다. 대기업 총수인 만큼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기 힘든데,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또 배재현 전 대표나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가 보석으로 풀려난 것과도 모순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재현 전 대표는 지난 3월 보석으로 풀렸고, 지창배 대표는 7월 22일 보석 석방됐다.
시선 쏠리는 정신아 리더십
김 위원장은 카카오 지배구조 정점에 자리하는 인물이다. 카카오를 통해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형태다.
김 위원장은 카카오 최대주주로 올해 3월 말 기준 지분 13.2%를 보유했다. 카카오 지분 10.4%를 갖고 있는 2대 주주 케이큐브홀딩스 역시 김 위원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실질적인 김 위원장의 카카오 지분은 20%를 훌쩍 넘어선다. 김 위원장의 리더십 공백이 카카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의 주요 의사 결정은 김 위원장을 거쳐야 하는 구조”라면서 “그룹 차원 쇄신 작업과 비핵심 계열사 정리 등도 김 위원장 중심으로 이뤄진 만큼 당분간 멈춰 선다고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향후 김 위원장 구속 수사 등 재판 결과에 따라 카카오는 인터넷은행 카카오뱅크의 1대 주주 자리를 내려놔야 할 수도 있다. 인터넷은행 특례법의 사회적 신용 요건에서 대주주가 ‘최근 5년간 조세범 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 혐의가 법원에서 확정되고, 양벌규정으로 법인(카카오)까지 벌금형 이상을 받으면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보유 지분 가운데 10%만 남기고 나머지(17.16%)를 정리해야 한다. 양벌규정은 법인 대표자는 물론 직원 등이 법을 위반하면 법인에도 책임을 묻는 제도다. 금융투자업계에서 ‘카카오가 10% 넘는 지분을 매각하면 한국투자증권이 카카오뱅크 대주주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카카오가 ‘뉴 카카오’의 새 비전으로 내세운 AI 신사업 관련 의사 결정이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이미 경쟁사 대비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와중에 ‘최악의 상황’을 마주했다는 평가다. 연내 공개 예정이던 ‘카카오식 AI 서비스’도 불투명하게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인식이다. AI 신사업 역시 김 의장이 구심점이 돼 진행된 만큼 제약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한 치 앞도 예상이 어려운 시계제로 상황. 카카오는 정신아 대표를 중심으로 플랜B에 돌입했다. 카카오 측은 “창업자인 김범수 CA협의체 공동의장 겸 경영쇄신위원장의 구속에 따른 현재 상황이 안타까우나, 정신아 CA협의체 공동의장을 중심으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큰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내다보는 이가 다수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신아 대표가 실질적인 카카오그룹 리더 역할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위 교수는 “정신아 대표의 경우 카카오 초기 창업 멤버도 아니고 핵심 계열사에서 큰 비즈니스 성과를 낸 인물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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