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여 오라 [김선걸 칼럼]
고교 시절로 기억한다. 한국에 첫 맥도날드 매장이 최고 부촌이라는 서울 압구정동에 생겼다.
물 건너온 음식이라며 기름진 그 맛을 한입 한입 음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맥도날드 위상은 패스트푸드점이라기보다 최고로 핫한 레스토랑이었다.
웬디스나 롯데리아, 피자헛도 비슷했다. 미국서 건너온 리바이스, 죠다쉬 청바지나 나이키, 아디다스 운동화도 비쌌다. 중산층도 사기 힘든 가격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고나서야 미국 등에선 이들 브랜드를 서민들이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발도상국인 한국 국민들은 그렇게 30년 이상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선진국 문화를 배웠다.
최근에는 달라졌다. ‘K컬처’의 영향력으로 한국 브랜드가 오래전 미국·유럽 등 선진국 브랜드 취급을 받는다. 지난달 컴포즈커피가 필리핀 국민 기업이라고 불리는 ‘졸리비(Jollibee)’에 4700억원(로스팅·제조사 포함)에 팔렸다. 졸리비는 한국에선 저가 커피인 컴포즈커피 가격이 동남아 현지에서 경쟁력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K커피’의 잠재력도 감안했을 것이다. 컴포즈커피가 동남아 시장에선 30년 전 맥도날드나 피자헛이 한국서 누리던 프리미엄을 누릴 공산이 크다.
최근 동남아 자본은 유독 K브랜드에 꽂혔다. 위생용품 기업 모나리자와 화장지 브랜드 쌍용C&B를 인도네시아 기업이 인수했고, 화덕으로 구운 1인 피자인 고피자에 ‘태국의 삼성’이라 불리는 씨피그룹이 투자했다. 국내의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최근 동남아 투자자를 만났는데 자기 아들에게 경영 수업을 시켜주고 싶다며 한국의 작은 F&B 브랜드를 하나 살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말했다. K컬처를 안전판으로 받치고 성공적인 사업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한국이 진짜 선진국이 됐구나 생각이 든다. 단순히 돈만 버는 졸부 국가가 아니라 한국 문화가 흠모의 대상이 됐으니 말이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도 있다. 최근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불고기, 비빔밥보다 ‘K치킨’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한다. 실제 강남, 명동의 치킨집에는 외국 관광객들로 바글바글한 곳들이 많다.
최근 국내 미슐랭 스타 셰프인 강민구(‘밍글스’ 운영), 신창호(‘주옥’ 운영) 두 사람이 합심해 ‘효도치킨’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했다. 둘이 뜬금없이 치킨 브랜드를 창업하게 된 계기가 색다르다. 세계의 미슐랭 셰프들은 다른 나라 셰프들이 방문하면 본국 음식을 소개해주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최근 외국 셰프들이 너나없이 ‘K치킨’을 찾는데 소개할 만한 브랜드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프리미엄급인 ‘효도치킨’을 창업하고 프랑스 파리에 ‘세토파(SETOPA 서울(to)파리)’라는 현지 직영점을 내는 등 ‘K치킨 업그레이드’에 열과 성을 기울이고 있다.
K컬처 붐에 의존해 K푸드가 잘나가는 건 한때의 유행처럼 사라질 수 있다. BTS 같은 아이돌을 덧씌워 팔거나, 못 먹을 정도의 매운맛으로 마케팅하는 건 한계가 있다. 실제 덴마크 식품청에서 한국 라면이 너무 맵다며 리콜을 추진하기도 했다.
30년 전 한국선 맥도날드가 최고급 음식이었다. 그러나 유학 시절 미국을 가보니 그들은 ‘정크푸드(Junk Food)’라 부르고 있었다.
대중적인 K푸드가 ‘정크’로 불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값싼 치킨과 라면만 갖고 K푸드의 아성을 지키기는 힘들다.
삼성전자는 ‘애니콜’에서 ‘갤럭시’로 옮겨 가고, 현대차는 ‘현대’에 그치지 않고 ‘제네시스’를 내놨다.
K푸드를 이어가려면 파인 다이닝이 필요하다. 그 노력도 진심으로 해야 할 때가 됐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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