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추진
野 간사 박선원 "여야 위원들 큰 이견 없어"
국가정보원이 미국 등 주요 국가에 도입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른바 '수미 테리' 사건으로 방첩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간첩죄 적용 대상도 북한에 한정되는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인데, 정치권도 공감대를 갖고 있어 22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국정원은 29일 간첩죄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 제정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박선원 의원은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정보위 현안보고에서 조태용 국정원장이 이 같은 방침을 보고했다고 전했다. 조 원장은 올해 주요 업무현황 중 대외 정보역량 강화 방안에 대해 보고하면서 "외국대리인등록법 및 국가안보기술연구원법 제정, 간첩죄 적용 대상 확대 취지의 형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현행 형법 98조 1항은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적국'을 명시한 조문은 1953년 법 제정 이래 그대로인데, 적국 개념은 북한에만 적용된다. 북한만 아니라면 미국·일본·중국 등 외국을 위한 간첩으로 활동해도 제동을 걸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최근 미 검찰이 중앙정보국(CIA) 분석관 출신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을 외국대리인등록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에 알리지 않고 한국을 위해 일했다는 혐의다. 테리는 주미대사관 등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국정원 요원들과 정보를 주고받았다.
박선원 의원은 간첩죄 개념 확장과 한국형 외국대리인등록법을 도입하겠다는 방침에 "여야 간 큰 입장차는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간첩죄 적용 대상을 넓혀야 한다는 논의는 이미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 정치권의 공감대는 있었지만,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 모두 형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해둔 상태다. 적국의 개념이 모호해진 시대적 상황과 국제정세 변화에 맞게 간첩죄 적용 기준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장하자는 취지는 같다.
아울러 박선원 의원은 지난 23일 외국대리인등록법 개념의 조항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추가 발의했다. 간첩죄 조항에 '적국 및 외국을 위해 국내외 정책 관련 사항 또는 외교적 관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공무원에 대해 법적 의무가 없는 행위를 하도록 하거나 또는 의무의 이행을 방해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더한 것이다.
방첩 대상, 국제적 흐름은 '적국' 아닌 '외국'
미국의 외국대리인등록법은 미국의 정책이나 여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려는 개인·단체 등은 법무부에 등록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활동에 제약을 가하진 않지만, 대리하는 국가와 관련한 활동 내역을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주요 국가들은 미국 FARA와 동일한 개념의 법안을 이미 도입했다. 호주는 '외국 영향력 투명성 제도(FITS)'를 시행하고 있다. 외국 정부를 위해 활동할 경우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하게 한다. 내정에 간섭하면 형사처벌 대상이다. '영향력 행사'를 정의할 때 정책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금 지원 활동까지 폭넓게 해석한다. 영국에는 '외국 영향력 등록 제도(FIRS)'가 있다. 안보·국익 수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내무부 장관이 특정 외국 세력을 등록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게 했다.
간첩 혐의를 적용하는 범위도 '적국'이 아닌 '외국'으로 폭넓게 보고 강력히 대응하는 추세다. 미 연방법률 18편 37장에 따르면 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정보를 입수하거나 외국의 정부·파벌·정당 등에 국방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경우 간첩죄가 성립한다. 최대 사형에 처한다. 중국 형법 110조는 간첩 조직에 가담하거나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에 대해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에 처한다. 국경 밖의 기구·조직 등을 위한 정보 절취·정탐·매수 혐의도 동일한 기준의 형량을 적용한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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