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보수 우위' 대법원 개혁안 공개…"종신제 폐지, 前대통령 면책금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미 연방 대법원에 대한 개혁안을 발표한다고 백악관이 28일 밝혔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다수인 연방 대법원은 바이든 재임 기간 내내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에 제동을 걸어왔다.
특히 백악관이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에 배포한 사전 자료엔 이번 개혁안엔 전임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사실상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법 앞에 평등’ 대통령도 예외 없다”
현재 총 9 명의 연방 대법관 중 6명이 보수 성향이다. 연방 대법관들은 탄핵되지 않는 한 평생 대법관직을 유지할 수 있는데, 트럼프 1기 때 보수 성향의 대법관 3명이 새로 임명됐다. 보수 우위인 연방대법원은 49년 간 유지했던 보편적 낙태권을 폐지하는 판결을 했다. 고등교육 내 소수집단 우대 정책에 대해 위헌 판결을 하고 총기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등 번번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백악관이 배포한 사전 자료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개혁에 대해 “미국은 ‘법 앞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원칙 위에 세워졌다”며 “대통령과 대법관을 비롯해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고 밝혔다. 현재 대법원에 대해선 “대법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상이 아니고, 개인의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로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9일 텍사스 오스틴시 린든 존슨 대통령 도서관에서 관련 연설을 할 예정이다.
대통령 재임 중 면책 금지…트럼프 겨냥?
백악관이 전면에 내세운 건 전직 대통령이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면책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난 1일 대법원이 트럼프 재임 시절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일부 인정하면서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시킨 결정에 대한 정면 대응 성격으로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 협의와 관련해 보수 대법관 6명 전원의 찬성과 진보 대법관 3명의 반대 속에 트럼프의 면책 특권을 일부 인정했다. 대법원 결정 이후 트럼프 관련 수사와 재판의 상당수가 중단되거나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사전 자료에서 백악관은 “그 어떤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고 재임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기소가 면죄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헌법 개정을 요구할 것”이라며 “헌법 개정안에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형사 기소, 재판, 유죄 판결 또는 선고에 대한 면책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명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만 종신 대법관”…18년 임기·2년마다 임명
현재 탄핵 사유가 없다면 종신 임기를 보장하는 대법관의 임기를 18년으로 단축시키고, 결원에 대해선 대통령이 2년마다 새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대법관 임기 제한 규정도 추진된다. 이에 백악관은 “입헌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미국은 유일하게 대법관에게 종신직을 부여하는 국가”라며 “의회는 75년 전에 대통령에 대해서도 임기 제한을 승인했기 때문에 이는 대법원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18년의 임기와 2년의 임명 주기를 명시한 이유에 대해선 “대법원 구성원이 어느정도 규칙적으로 교체되도록 보장하고, 대법관 지명을 보다 예측 가능하고 덜 자의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리며 “특히 대법관 임기제는 한명의 대법원장이 다음 세대에까지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1기 때처럼 당대에 생긴 결원을 한꺼번에 채워넣는 일을 막겠다는 의미다.
“대법관 행동 강령”…비리 대법관 견제
이와 함께 대법관에게 적용되는 명시적이고 구속력 있는 행동강령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대법관은 선물을 공개하고, 공개적인 정치 활동을 자제하며 본인과 배우자가 재정적 또는 기타 이해 상충이 있는 사건에서 스스로 기피하도록 하는 구속력 있고 집행 가능한 행동 및 윤리규정을 의회가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보수 성향의 대법관과 관련해 발생한 최근 사례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보수 성향의 클래런스 토머스 연방 대법관은 부유층 지인으로부터 공짜 호화 여행을 제공받은 의혹을 받았고,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부인이 ‘1·6 의회 폭동’을 지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통과 가능성 희박…‘장외 지원’ 의도한 듯
하지만 백악관이 추진하는 연방대법원 개혁이 성사될 지는 의문이다. 대법관 임기를 정하고 윤리 규정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공화당은 현재 연방 대법원의 구성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원은 민주당이 간신히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의 다수를 차지하더라도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할 의석까지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직 대통령의 면책특권 제한은 헌법 개정 사안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은 더 낮다. 미국에서 개헌을 하기 위해선 상·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은 뒤 50개 주 중 4분의 3 이상의 주의회가 승인해야 추진이 가능하다. 때문에 이번 개혁안은 실질적 성과를 내기보다 트럼프의 사법리스크를 재차 부각하는 위한 차원의 장외 지원전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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