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0 고지 눈앞... KIA 김도영, 야구 천재 이종범 넘어설까
[김종수 기자]
▲ 24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KIA 김도영이 4회에 타격하고 있다. 2024.7.24 |
ⓒ 연합뉴스 |
프로야구 각 팀 팬에게는 자신만의 판타지 영웅상이 있다. 해당 팀에서 가장 빛났던 영광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좀 더 특별한 영웅이 있었다. 정교하면서도 멀리 칠 수 있고 발까지 빠른 전천후 유격수 이종범이다. 승부사 기질까지 차고 넘쳤기에 여러 차례 팀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다. 그의 전성기를 함께 한 팬들은 끊임없이 열광했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가슴 속에서 승리의 감동을 잊지 않는다.
야구 천재 이종범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20승 투수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선수' 등의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종범은 레전드 야구선수다. '야구 천재'라는 별명이 공식적으로 붙은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동시대에서 함께 활약한 양준혁은 은퇴 후 각종 방송을 통해 "전성기 시절의 그(이종범)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 같은 존재였다"며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유격수로 뛰던 이종범은 리그 전체에서 경쟁 상대조차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야수였다. 팀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과 더불어 관중을 몰고 다닐 수 있는 스타성을 겸비했다.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갖춘 1번 타자면서도 웬만한 거포 뺨치는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 거기에 정상급 수비력까지 갖춘 대표적 ´5툴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다.
정수근, 전준호 등 역대급 대도들도 인정하는 '대도 위의 대도'였으며 안타 제조기는 물론 1997년 30홈런을 기록하며 이승엽(32개)과 팽팽한 홈런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올스타전 MVP를 석권한 것을 비롯해 국제대회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포수 포함 전 포지션을 경험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야구 센스 자체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종범 열풍 이후 팬들은 물론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제2의 이종범'을 호명했다. 보통 발 빠르고 방망이 좋은 호타준족 혹은 공격력 좋은 내야수 유망주를 그렇게 불렀는데, 누구도 수년 동안 이를 유지하지 못했다. 박진만, 김종국, 신명철, 이현곤, 정성훈, 김주찬, 윤희상, 이원석, 이용규, 김민철, 김선빈, 김상수, 안치홍, 하주석, 최원준 등 차고 넘치던 후보군 중 이종범의 기록에 도달한 선수는 없었다.
아들인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같은 경우 실력 부분에서는 한창때 아버지와 자웅을 겨룰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제2의 이종범'과는 거리가 있다. 정교한 배트 컨트롤을 앞세운 타격 테크닉은 역대급으로 불릴만하지만 공·수·주를 겸비한 5툴 플레이어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종범의 활약상은 그렇게 전설처럼 흘러가나 싶었으나 드디어 올 시즌 리얼 후계자가 나왔다. KIA 타이거즈 3년 차 내야수 김도영(21·우투우타)이다. 그동안은 제2의 이종범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올 시즌 엄청난 대활약을 이어 나가며 적통 후계자(광주 출신+타이거즈)로 사자후를 토하고 있다.
김도영은 지난 23일 광주 NC전에서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하더니, 25일 NC전부터 27일 키움전까지는 3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 27일 키움전 홈런으로 시즌 100득점째를 올리며 최연소(20세 9개월)·최소경기(97경기) 100득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5년 에릭 테임즈(NC)와 1999년 이승엽(삼성)이 세운 99경기 100득점을 2경기 앞당겼고, 1998년 이승엽이 22세 1개월 15일로 세운 최연소 100득점 기록도 1년 3개월 가량 앞당겼다. 제2의 이종범을 넘어 '제1의 김도영'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 KIA 타이거즈 3년차 고졸 내야수 김도영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있다. |
ⓒ 김종수 |
김도영의 올 시즌 활약상을 한껏 즐기는 KIA 팬들은 과거 드래프트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표현한다. 지난 2022년 당시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을 앞두고 KIA는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광주 동성고 내야수 김도영과 광주 진흥고 문동주 하필이면 최대어 둘이 광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언론에서는 '양손의 떡', '행복한 고민' 등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둘 중 KIA에서 선택한 선수가 기대만큼 못 해주고 상대적으로 타팀으로 간 선수가 잘하면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일 수 있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잔인한 선택지였다.
차라리 똑같은 야수 혹은 투수였다면 좀 더 비교가 수월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도영과 문동주는 야수와 투수로 포지션이 달랐다. 김도영이 공·수·주를 두루 갖춘 5툴 플레이어 유격수로 가치가 높았다면, 문동주는 고교선수로서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던 파워피처였다. 각자 자신의 팀에서 끼치는 영향력까지, 그야말로 용호상박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 투수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조건이면 투수의 가치를 더 높게 책정한다. 어느 팀이라도 고교 최고의 파어어볼러를 그냥 지나칠 팀은 없었다. 때문에 드래프트 날이 다가올수록 분위기는 'KIA=문동주' 쪽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당사자 김도영 또한 각종 인터뷰 등에서 "마음은 타이거즈에서 뛰고 싶지만 아마도 (문)동주가 지명받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며 내심 마음을 내려놓은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막판 반전이 일어났다. KIA의 최종선택은 투수 최대어 문동주가 아닌 김도영이었다. 김도영을 원했던 팬들도 적진 않았지만 그런 팬들조차 '예상 밖'이라며 놀라는 분위기였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문동주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었던 것이 사실이다. 김도영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프로 적응에 힘겨워하던 사이 문동주는 소속팀 한화 이글스의 각별한 관리를 받으며 젊은 선발투수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지난 시즌의 경우 초반부터 KBO 리그 한국인 투수 최초 160km를 기록하더니 이후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선수까지 발탁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신인왕 자격조건이 되었던지라 신인왕마저 수상했다. 김도영도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3할을 때려내며 가능성을 보였으나 문동주만큼은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모든 것이 뒤집혔다.
올 시즌 김도영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다. 29일 기준 98경기에서 타율 0.354(3위), 136안타(2위), 28홈런(2위), 78타점(5위), 100득점(1위), 29도루(6위), 출루율 0.420(4위), 장타율 0.654(1위), OPS 1.074(1위)로 전방위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부상을 우려해 주특기인 도루를 자제하는데도 그렇다.
상황에 따라 다관왕까지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페이스로 정규시즌 MVP도 유력하다. 거기에 리그 최초 월간 10-10클럽, 최연소 전반기 20-20클럽, 최소 타석-내추럴 사이클링 히트, 최연소 시즌 100득점 선점, 최소경기 시즌 100득점 등 각종 굵직한 기록들도 계속해서 써 내려가고 있다. 소속팀 KIA도 1위로 잘 나가고 있는지라 정규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 정규시즌 MVP, 30-30클럽, 다관왕 등 이후가 기대된다.
김도영의 장타력은 전성기 이종범보다도 확실히 앞서고 있다. 이종범이 홈런도 잘 쳐 기존 발 빠른 타자 개념을 부쉈다면 김도영은 장타자라고해도 무방할 정도다. 제2의 이종범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더 빨라진 박재홍', '5툴 김동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시즌 김도영이 어디까지 해낼지는 알 수 없다. 매 경기 환상적인 플레이로 팬들의 마음을 쉴 새 없이 열광시키고 있으며 아직도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았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은 김도영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팬들은 가슴이 뛴다. KIA 팬들은 매 경기 '도영아 니땀시 살어야'라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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