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관계 없이 임신한 수녀, 수상쩍은 수도원의 비밀

김형욱 2024. 7. 29. 16: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작 영화 리뷰] <이매큘레이트>

[김형욱 기자]

어렸을 적 죽음의 문턱에서 7일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 돌아온 경험이 있는 세실리아, 그녀는 커서 수녀가 된다.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수녀원이 신도 수가 급감해 문을 닫자 테데스키 신부의 소개로 이탈리아까지 온다. 순수한 믿음을 가진 그녀, 하지만 이탈리아의 수도원은 분위기가 수상쩍기 이를 데 없다. 순수한 믿음만으로는 잘 지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실리아는 정결, 청빈, 순종 서약으로 이뤄진 서원식을 통해 진정한 수녀로 거듭난다. 수도원 생활에 적응하고 있던 어느 날,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더니 임신이라는 게 아닌가. 수녀로서 당연히 정결했고, 이곳에 오기 전에도 성관계한 적 없는데, 어떻게 임신했을까. 이후 추기경, 신부, 원장 수녀들은 기적이라며 그녀를 성녀로 추앙한다.

수녀로서 임신한 것도 이상한데, 이후 그녀의 이와 손톱이 빠지는 등 설명이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다. 단순히 임신에 따른 증상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 세실리아가 아닌 자신이 임신했어야 한다고 외치던 이사벨 수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세실리아와 친한 그웬 수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행동 하려다가 잡혀간다. 이후 세실리아는 수도원의 비밀을 하나둘 캐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수녀 공포물
 
 영화 <이매큘레이트>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일명 '수녀 공포물'은 꾸준히 영화화됐다. 대부분 오랫동안 깊숙이 감춰져 온 수녀원의 추악한 비밀에서 촉발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영화 전반에 기분 나쁜 으스스함이 깔려있다. 영화 <이매큘레이트>도 비슷한 결이다. 제목은 'Immaculate'의 음을 그대로 가져왔는데, 이는 순결하고 흠결 없다는 뜻인 동시에 가톨릭에서는 무원죄 잉태를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이를 마리아의 예수 잉태로 해석한 것 같다. 문제는 무원죄, 즉 성관계 또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 없이 세실리아가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 하기에 불길하고 불안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급기야 세실리아는 배 속에 있는 아기가 절대로 자신의 아기일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가 악마라도 된다는 말일까.

영화는 크게 세 파트로 나눌 수 있다. 비밀에 싸인 으스스한 수녀원에 와서 적응해 나가는 세실리아, 어느 날 갑자기 잉태해서 기적의 성녀로 추앙받는 세실리아, 충격적 비밀을 알아채고 탈출하고자 자신을 놔버리는 세실리아다.

영화는 전형적이라 특별함을 찾기 어렵고 공포영화로서도 더위를 날릴 만한 짜릿함도 찾기 힘들다. 머리를 띵하게 하는 엄청난 반전도 없다. 외려 전형적이기에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야기의 구멍들이 있지만, 미술이나 음악 등으로 분위기를 끌어 올려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선택의 순간들
 
 영화 <이매큘레이트>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영화 속 배경이 수녀원이다 보니 가톨릭을 떠올리기 쉽고, 종교적으로 추악한 비밀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 종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드는 수단에 그친다. 진정 추악한 건 '인간'으로 이들은 종교를 명분삼아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려 한다. 수녀원의 추악한 비밀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실 '수녀원'의 추악한 비밀이 아니라 수녀원 '사람들'의 추악한 비밀이라고 하는 게 맞다.

영화는 세실리아는 수녀원을 탈출한다. 그녀는 수녀원의 추악한 비밀을 보고야 말았고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꼭 영화 속 선택을 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한 짓과 하려는 짓도 문제지만, 그녀가 사람들에게 한 짓도 용서받기 힘들다.

인간이 참 얄팍하다. 삶의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기에 올바르거나 올바르지 않거나, 과거의 망령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거나 앞으로 나아가려 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고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잘못된 선택들 혹은 잘한 선택들은 계속 쌓여 결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세실리아가 안타깝다. 그녀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악랄한 선택의 순간들이 마냥 그녀의 것, 남의 것이 아닌 것 같아 치가 떨리기도 한다. 그녀는, 아니 우리는 왜 치명적인 일들을 끊임없이 겪어야 하나. 왜 삶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나. 원죄가 있어서일까. 누군가는 종교에 귀의해 신에게 죄를 사해 달라고 빌고 누군가는 과학에 매진하며 이 상황을 이해하려 든다. 인문학을 공부하며 세계와 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는 시도도 한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를 통해 그 질문 앞에 선다. 
 영화 <이매큘레이트>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