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비가 반가운 이곳, '슬기로운 천막생활'의 위로

박은영 2024. 7. 2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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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 천막 소식 90일-91일차] 자연이 만든 습지 정원은 야생동물의 집

[박은영 기자]

▲ 물총새와 할미새 비가 내린 뒤 나뭇가지에 나란히 앉아 쉬고 있는 물총새와 할미새
ⓒ 임도훈
 
"와, 시원하다!"

오후에 소나기가 한 번 지나간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 후끈한 열기 속에서 예기치 않았던 시원한 한줄기 소낙비, 그래서 더 반갑다. 농성장에 놀러온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빗속으로 돌진한다. 다 젖어서 갈아입을 옷 없는데 어쩌나 하는 걱정은 부모의 몫일 뿐, 아이들은 거침없이 비를 즐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이처럼 신이 난다.

이도 잠시뿐, 다리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줄기. 아쉬운 마음에 부채질을 하면서 오후의 더위를 맞이하지만, 이 또한 한순간일 뿐이다. 그라운드 골프에 흠뻑 빠진 어르신들의 "우와~" 하는 소리에 시선이 꽂힌다. 그 소리가 다리 아래에 울려퍼지면 덩달아 신이 나서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농성장에 찾아온 이가 이런 모습을 보더니 나중에 자기도 한 번 도전해보겠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또 웃는다. 더위를 씻어낸다.

금강 수위가 장마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왔다. 모래섬과 자갈밭이 드러났고 큰 비에 몸을 피해있던 야생동물들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온다.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 가족은 부쩍 늘었다. 아직 경계심이 없는 어린 유조들은 주차장 위에까지 올라와 돌아다닌다. 왜가리, 백로, 할미새, 오리도 가족이 늘었다. 천막농성장에 찾아온 아이들마냥 신이 났다.

자연이 만든 습지정원… 야생동물들의 집  
 
 방치된 톤마대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금강에는 아름다운 습지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천막 농성장 건너편의 하중도 또한 금강의 흐름이 만든 아름다운 습지정원이다. 이 습지는 인간의 눈에 좋고 나쁜 어떤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들의 집이자 안식처이다.  
2018년 세종보 전면 개방 이후 상류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모래섬은 버드나무가 자라고 수달, 고라니, 물떼새들의 천국인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정원이다. 그런데 세종보 보수 공사를 하면서 그곳의 버드나무를 모두 잘라냈고, 모래를 긁어 톤마대에 채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마대를 쌓아 인위적으로 물길을 바꿨다. 보수공사는 끝났지만, 그 톤마대를 그대로 방치해서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는 게 볼썽사납다. 치워달라고 신고를 해도 깜깜무소식이다.  
 
 장마가 지난 뒤에도 남아있는 이응대교 아래 하중도 모습
ⓒ 대전충남녹색연합
 
이응교 하류에도 멋진 하중도가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니 버드나무가 아름답게 자라 습지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도시에 이런 습지들이 있다는 건, 어떤 인공적인 시설물이나 야간경관 따위와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많은 생명들이 여기서 태어난다. 기후위기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 지금, 지키지는 못할 망정 없애버리겠다고 나선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다시 강 곁으로… 달라진 풍경들
 
 장마가 한 차례 지나가고 천막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 대전충남녹색연합
 
얼가니새(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와 나귀도훈(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간사)이 떠내려갔던 천막을 건져왔다. 모래와 자갈이 더 쌓이고 판판해진 원래 천막의 자리에 새 천막을 쳤다. 한 달 만이다. 천막 밖으로 보이는 금강은 그대로 금강이다. 펄이 씻겨나간 바닥보호공 사이로 수풀이 자라고 있다. 자갈도 그 틈새에 들어차 있다. 

"더운데 아이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는 아이들이 오전부터 연습삼매경이다. 인라인 첫 걸음을 떼는 듯한 아이가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연습장을 몇 번씩 돈다. 두 바퀴쯤 돌 때, 나귀도훈이 눈이 마주쳐 인사를 건넸더니 아이 아빠가 이렇게 말한다. "여기를 아시냐"고 물었더니 "유튜브에서 봤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장맛비로 인한 한 달간의 유배(?)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하천부지로 내려오니 되레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언제 세종보 수문을 닫을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둔치 위에서 노심초사했는데, 지금은 세종보에 물을 채운다면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위치다. 위에서는 세종시민들과의 접촉면이 넓어져서 좋았는데, 이곳에서는 자연의 친구들과 더 많은 만남을 가질 수 있다. 금강의 골을 타고 부는 바람도 훨씬 시원하다.    
 
 오랜만에 보는 한두리대교 아래 금강의 모습
ⓒ 임도훈
 
인라인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자전거 배우는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 소리... 이를 대체한 건 삑삑도요와 할미새의 울음소리, 고라니 울음소리, 매미의 여름 나는 소리, 그리고 코앞에서 말없이 흐르는 금강도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반갑다고. 

중복이 지나고 더위가 성큼 천막 농성장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치지 않는 건 여전히 천막을 찾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건네는 시원한 웃음과 금강의 시원한 바람이 끊임없이 우리들을 위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맹렬하게 울어대는, 우렁찬 울림통을 가진 매미도 100여 일 가깝게 버텨온 우리들의 '슬기로운 천막생활'을 응원한다.

"매앰~ 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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