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좋아하는데 스트레스 받아요... '미공포'의 진실

이진민 2024. 7. 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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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케이팝이 부추기는 경쟁심리, '초동'-'스밍'으로 피로도 호소하는 팬덤

[이진민 기자]

케이팝이 총성 없는 전쟁터로 돌변했다. 무조건 스타를 '추앙'하던 1, 2세대 아이돌 팬덤을 넘어 3, 4세대 아이돌은 스타와 팬덤이 한 몸이 되어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간다. 음악 방송에서 1위를 기록하는 것이 전부였던 시대는 지났다. 이젠 앨범 초동(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부터 유튜브 조회수, 각종 시상식과 아이돌 브랜드 평판 지수까지 신경 써야 한다.

변화한 케이팝에 맞춰 팬덤 또한 자체적으로 홍보팀을 꾸리고 인증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전략적인 덕질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애정과 뿌듯함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팬들이 늘고 있다. 케이팝 팬덤 데이터 분석 플랫폼 케이팝 레이더가 지난 6월 18일부터 7월 1일까지 100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초동 경쟁이 지나치다고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라이트 팬의 63.3%, 코어 팬의 74.4%가 '그렇다'고 답했다. 활동기 한 달 동안 5만 원 미만으로 소비하는 팬은 '라이트 팬'으로, 같은 기간 5만 원 이상 소비하는 팬은 '코어 팬'으로 분류했다. '초동을 위해 팬덤이 무리한 소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말에도 라이트 팬의 66.9%, 코어 팬의 71.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과연 케이팝이 부추기는 경쟁심리는 건강한 애정일까.
 
 무대에 선 아티스트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픽사베이
 
"사랑한다면 소비하라"

실제 팬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무엇이고, 또 고민은 뭘까. 이들은 앨범 발매 첫 주 판매량인 '초동'부터 긴장하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초동은 아이돌 그룹의 인기를 측정하는 척도이기에 해당 시기에 맞춰 팬들은 앨범을 대량으로 구매하고 소속사 또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통해 홍보한다. 대표적인 방식은 이른바 '미공포'인데, 미공개 포토 카드의 줄임말이다. 이는 발매된 앨범에 포함된 정식 포토 카드 외에 앨범 판매처마다 소량으로 공급된 포토 카드를 의미한다.

"앨범에 수록된 포카(포토 카드의 줄임말)보다 훨씬 예쁜 사진이 많다. 셀카나 팬들이 좋아할 법한 착장과 콘셉트를 갖추고 찍은 사진들이다. 그래서 포카를 모으려고 판매처마다 똑같은 앨범을 여러 번 구매한다."

아이돌 팬 A씨는 '미공포'에 숨은 비밀을 전했다. 이러한 '미공포'를 갖기 위해 팬들은 최소 세트 단위(여러 버전의 앨범을 모은 세트)부터 많게는 몇백 장씩 구매한다. 

굳이 '미공포'가 아니어도 팬들은 초동 기록을 위해 앨범 구매에 나선다. 또 다른 팬 B씨는 '초동 줄 세우기'를 경험한 이후로 앨범 구매에 신경이 곤두섰다고 토로했다.

"타 그룹의 판매량과 비교해서 이 그룹이 얼마나 잘나가고, 못 나가는지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 그대로 인기를 줄 세우는 건데 지난 앨범보다 기록이 밀리면 '한물갔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 아이돌이 그런 말을 안 들으려면 결국 초동 기록을 신경 써야 한다."

B씨는 아이돌 그룹 간 인기 경쟁 탓에 역대 초동 신기록이 잇달아 쉽게 깨지는 '초동 인플레' 현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에는 좋아하는 마음만 있으면 팬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사랑하는 만큼 소비하라'는 팬덤 기조가 있다"며 "소속사도, 팬덤 분위기도 소비를 부추긴다"고 토로했다.

음악과 뮤직비디오 '스밍'에도 전략이
 
 그룹 투머로우바이투게더가 21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SBS 2024 가요대전 서머 블루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음반에 '초동'이 있다면, 음원에는 '스밍'이 있다. 스밍이란 스트리밍의 줄임말로 인터넷에 연결된 상태로 음원을 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밍 횟수에 따라 음악 방송 1위는 물론, 각종 시상식에서 주요한 부문을 차지할 수 있다. 또한 음반이 얼마나 팬덤이 강력한지를 보여준다면, 음원은 팬이 아닌 일반 리스너의 청취도 포함되기에 대중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핵심적인 지표다.

음원 순위를 위해 일부 팬덤은 '음원총공팀', '음원정보팀', 스트리밍 팀' 등 스트리밍 독려 팀을 꾸린다. 이미 여러 아이돌 팬덤이 운영하고 있는데, 인기 있는 그룹일수록 여러 개의 팀을 갖고 있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스밍' 독려 팀은 컴백마다 스트리밍 리스트를 세우고, 스트리밍을 독려하고자 인증 이벤트를 진행한다. 또한 아이돌 그룹의 곡이 순위권에서 벗어날 때 '스밍' 독려 알림을 띄운다.

일부 스밍 독려 팀은 팬들에게 음원 사이트 아이디를 받아서 대리 스트리밍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스밍은 케이팝 팬덤이 가진 응집력과 전략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B씨는 "그냥 음원을 많이 듣는다고 스밍이 되는 게 아니다. 스밍에 유리한 특정 시간대가 있고 리스트를 적절히 짜야 기록에 잘 남는다. 특히 '차트 붙박이'라 불리는 일부 곡들은 장기간 차트에 남는 걸 노리기 때문에 틈틈이 스밍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음원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조회수까지 음악방송 순위 집계 기준에 포함되며 '뮤비 스밍'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일부 팬들은 뮤직비디오를 시청했다는 인증 사진을 올리면 추첨으로 기프티콘을 주는 '스밍' 이벤트를 열었다. 
 
 그룹 스트레이 키즈가 21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서 열린 SBS 2024 가요대전 서머 블루카펫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초동'과 '스밍' 사이, 끊임없이 소비하고 순위 경쟁에 매진해야 하는 케이팝 팬에게 남는 건 '현타(현실 자각 타임)'다. 

A씨는 "팬 사인회에 가려면 최소 몇백 장을 사야 한다. 그렇게 사도 아이돌을 만날 수 있는 건 몇 분에 불과하고, 남는 건 쓰지도 않은 앨범 몇백 장이다. 너무 많은 지출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도 걱정이 된다"고 고백했다.

B씨는 "한때는 '스밍'을 돌리겠다고 공기계로 하루 종일 음원을 재생하곤 했다. 순위가 떨어질 때마다 팬덤에서 '더 많이 스밍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때 '현타'가 왔다. 그들의 빛나는 기록을 위해 내가 계속해서 쓰이는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사랑하는 만큼 소비하라'는 시장 논리에 팬덤은 "어느 때보다 지갑을 자주 연다"고 입을 모았다. "좋아했을 뿐인데 신경 쓸 게 너무 많다"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팬들의 목소리를 새겨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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