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기본소득과 AI

김동표 2024. 7. 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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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40만원을 받게 된다고 치자.

3년간 6000만달러(약 830억원)를 들여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이다.

기본소득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자녀를 돌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빗나갔다.

역사상 최대의 기본소득 실험을 지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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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40만원을 받게 된다고 치자. 무조건이다. 삼성전자 주식을 사도 되고, 비트코인을 사도 되고, 인스타 ‘핫플’에서 오마카세를 사 먹어도 된다. 지금 직장이 맘에 안 들었다면 이참에 사표를 쓰고 진정 원하는 직장을 찾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가정경제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가던 알바를 그만둘 수도 있다.

실제론 어떨까. 챗GPT를 개발한 오픈AI 창업자 샘 올트먼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대형 프로젝트의 결과가 지난 22일 나왔다. 3년간 6000만달러(약 830억원)를 들여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이다. 실험에서는 월 1000달러(약 140만원)를 받은 실험군, 월 50달러(약 7만원)를 받은 대조군이 나뉘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주당 근로시간은 실험군이 대조군에 비해 1.3~1.4시간 적었다. 이는 4~5%의 소득 감소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실험군의 파트너(배우자·동거인 등)도 비슷한 정도로 노동 참여를 줄였다. 기본소득 1달러당 20센트의 소득 감소효과가 나왔는데, 연구진도 "상당한 효과"라 평할 정도였다.

고용의 질은 어땠을까. 1000달러의 여유가 생겼으니, 더 높아진 협상력을 바탕으로 악덕 사장·기업에 매달리지 않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었다. 일자리의 질적 변화는 감지되지 않았다. 줄어든 근무시간은 여가시간으로 대체됐다. 교통수단 이용시간이 늘었는데, 이 역시 뭔가를 더 하기 위한 활동으로 추정된다.

기본소득으로 소득이 증가하면 자녀를 돌보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빗나갔다. 양육시간은 오히려 줄었다. 일부 희망적인 결과도 있긴 했다. ‘기업가 정신’을 자극해 창업과 관련한 의향을 높였고, 젊을수록 교육에 더 투자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유의미한 노동 공급 감소를 상쇄할 만한 눈에 띄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실험은 기본소득이 노동 공급을 줄인다는 점은 명확히 보여줬다.

AI 혁명은 '노동의 종말'을 예고한다. 올트먼은 인간 노동력이 AI로 대체된 미래에 월드코인이라는 가상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놨다. 역사상 최대의 기본소득 실험을 지원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현재 진행 중인 AI의 생산성 혁명은 기본소득, 노동에 대한 논의를 더욱 촉구할 것이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더 늘어나고, 불평등은 더 심화할 수 있다. 한 연구는 2090년 미래 계급을 전망하면서, 플랫폼을 소유한 0.001%의 기업인이 최상위 계급을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서울대 유기윤 교수팀).

AI의 진화와 함께 노동의 가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근로소득은 금융소득을 이길 수 없다’며 투기와 한탕주의가 권장되고, 파이어(조기은퇴)족의 득세와 함께 노동을 폄훼하고 혐오하는 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 기본소득은 그러한 문화를 뒷받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보여준다.

그간 우리는 AI에 수없이 질문해 왔다. 챗GPT, 구글 제미나이 등에 인간이 질문하는 건수는 하루 수억건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AI가 인간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이냐고. 그리고 무엇이어야 하느냐고.

김동표 콘텐츠편집2팀장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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