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보는 순간, 홍세화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안지훈 2024. 7. 2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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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훈의 뮤지컬 읽기] 왕용범 연출-이성준 작곡가 창작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안지훈 기자]

인기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가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가문 대대로 내려온 근위대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남자로 살아가게 된 '오스칼'과 그의 곁을 지키는 하인이자 연모하는 마음을 숨기며 살아가는 '앙드레', 그리고 하루하루 어려운 삶에 허덕이는 파리 민중의 이야기.

프랑스 혁명 당시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은 장르를 불문하고 넘쳐나지만, <베르사유의 장미>는 독특한 설정과 신선한 캐릭터를 앞세우며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시대를 조명한다. 7월 16일 관객 앞에 첫 선을 보인 <베르사유의 장미>는 국내 창작 뮤지컬로, <벤허>와 <프랑켄슈타인> 등을 탄생시킨 왕용범 연출-이성준 작곡가 콤비가 작업을 이끌었다.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근위대 장교가 된 '오스칼' 역에 옥주현, 김지우, 정유지가 캐스팅되었고, 그의 곁을 지키는 '앙드레'는 이해준, 김성식, 고은성이 연기한다. 신문기자이자 민중을 이끄는 '베르날 샤틀레' 역에는 박민성과 노윤, 그리고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서는 테너 서영택이 분한다. 왕비의 총애를 받아 권력을 쥐는 '마담 드 폴리냑' 역에는 서지영과 리사, 박혜미가 캐스팅되었으며, 이외에도 유소리, 장혜린, 송재림, 성연 등이 작품에 참여한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질문했던 사람들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의 삶을 살게 된 오스칼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경계에서 방황해야 했다. 오스칼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자신의 자리를 자문했다. 그렇게 오스칼은 자신에게 주어진 남자의 삶이 아닌 여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자의 삶을 부여하며 이루고자 했던 '조국에 대한 봉사'를 포기하진 않는다.

주어진 삶을 돌아보고 회의했던 오스칼은 그 덕분인지 귀족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여타 귀족들과는 다른 견해를 보인다. 대다수 귀족들은 자신이 귀족의 삶을 사는 것과 평민이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오스칼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귀족으로서 누리는 삶에 의문을 갖고, 나아가 민중의 어려운 삶을 대면하고는 그들의 삶에까지 질문을 던진다.

<베르사유의 장미>에 등장하는 베르날 샤틀레를 비롯한 민중들도, 자신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오스칼과 유사하다. 비록 계급과 지위는 다르지만, 민중은 자신에게 주어진 팍팍한 삶을 회의한다. 오스칼과 민중은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다르게 살 순 없나'라는 질문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로 살아온 나
누군가의 강요 앞에 굴복한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입는 옷까지 모든 건 오직 나의 선택"

오스칼은 존재에 대한 의문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확장시킨다(넘버 '나 오스칼'). 이는 파리의 민중도 마찬가지다. 민중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혁명을 벌이기로 한다. 귀족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근위대에서 나와 위병대로 들어간 오스칼은 민중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지켜본 끝에, 그들의 혁명에 가담하기로 한다.

이렇게 캐릭터의 고민을 녹여낸 성장 스토리 속에 혁명의 이야기가 녹아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막바지에 이르러 오스칼과 민중이 투쟁하는 장면은 동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자유인을 생각하다

자유는 평등, 박애와 함께 프랑스혁명의 주요 이념이었다. 그 뒤로 오늘날까지 자유라는 말은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는데, 수많은 철학적 논의가 진행되었고 이데올로기화되어 정치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그 용례가 너무 많아 자유를 자신의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특히 오늘날에는 자본주의 논리에 오염된 자유 개념이 남발되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서 필자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사회비평가 홍세화의 자유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 뜬금없이 자유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베르사유의 장미> 속 인물들에게서 홍세화 작가가 이야기한 '자유인'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저서 <결: 거침에 대하여>에서 자유의 핵심을 '나를 짓는 자유'로 보고, 그 조건으로 회의하는 자아를 꼽았다. 사유세계를 열어놓고 자신이 수많은 오류에 빠져있다는 점을 자각하며 살아야만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이야기한 오스칼과 파리의 민중들에게서 바로 이 '나를 짓는 자유'의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홍세화 작가는 욕망과 물질적 소유를 절제하고, 소박한 자아실현으로 만족할 줄 알며 이웃과 연대하려는 열정을 가져야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 지점에서는 가진 것을 내려놓고 민중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간 오스칼, 그리고 이런 오스칼 곁을 지키며 타오르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끝내 자신을 내던질 각오까지 하는 앙드레에게서까지 자유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뮤지컬 속 '마담 드 폴리냑'의 존재는 이들을 더 부각시킨다. 마담 드 폴리냑은 낮은 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왕비의 총애를 받아 권력을 쥔 인물이다. 미천한 출신은 그녀를 높은 곳을 향해 더 처절히 몸부림치게 만들었고, 그녀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오스칼과 앙드레는 마담 드 폴리냑과 대비되어 고결한 존재처럼 보이고, 반대로 마담 드 폴리냑은 섬뜩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사진
ⓒ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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