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불복종행동 '정당행위'로 못박는 판결이 보고 싶다
[상현]
▲ 1, 2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례적인 원심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
ⓒ 픽사베이 |
기후활동가들이 베트남 붕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기후불복종' 운동의 일환으로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1, 2심은 이 같은 직접행동에 책임을 물으며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파기환송 했습니다. 이에 상현 기후활동가가 직접행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벌금'에 대해 경고한 대법원의 선고의 의미를 비평했습니다. 기후정의를 위해 기후위기 시대,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법익은 무엇인지 필자가 던진 화두에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3심 : 대법원 제1부 대법관 오경미(재판장), 김선수(주심), 노태악, 서경환, 2024.5.30. 선고 2023도5885
2심 : 수원지방법원 제4형사부 판사 김경진(재판장), 김주연, 여인지, 2023.4.12. 선고 2022노716
1심 :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 방일수 2022.1.19. 선고 2021고정593
"최후의 석탄화력발전소 내가 짓는다! – 두산중공업"
2021년 2월, 두 청년 기후활동가가 분당두산타워 'DOOSAN' 로고 조형물에 녹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것에 올라 펼친 현수막 문구다. 이들은 베트남 붕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의 행위를 고발하기 위한 '기후불복종' 운동의 일환으로 이와 같은 '직접행동'을 감행했다.
그 전 해 9월, 대한민국 국회는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처음으로 채택하였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베트남 붕앙 석탄발전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정 지었다. 한국전력과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등이 속한 '팀 코리아'가 추진하는 사업이었다. 한국전력은 전세계적인 '탈석탄' 기조를 역행한다는 거센 비판을 의식하는 듯, 기존에 추진하는 사업을 끝으로 향후 새로운 해외 석탄발전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기후활동가들이 붕앙 발전소를 '최후의 석탄화력발전소'라 명명한 이유다.
그들이 속한 청년기후긴급행동은 '붕앙팀'을 꾸리고, 베트남 붕앙에 한국의 기업과 정부가 석탄화력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갖은 활동을 펼쳐 왔다. 붕앙에 발전소를 짓거나 투자하는 한국전력공사,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수출입은행, 하나은행을 '탄소오적'이라 명명하며 대항 액션을 펼쳤고, 사업 참여 기업들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베트남 대사관 앞에서 발전소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두산중공업 스프레이 액션은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었다.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지구 공동체와 우리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직접행동
이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 1심(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22.1.19. 선고 21고정593)과 2심 판결(수원지방법원 2023.4.12. 선고 2022노716)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였고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500만 원(각각 300만 원과 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활동가들은 '기업이 이익을 창출하고자 환경을 파괴하는 것을 널리 알리고자 한 집회의 목적'과 '친환경 페인트 사용으로 집회 과정의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였던 수단'을 고려하면 옥외집회를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더라도 이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해왔다. 조형물에 뿌린 수성 페인트 또한 쉽게 지워지기 때문에 재물손괴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법조인 100인은 '심각한 기후위기 상황에서 지구 공동체와 우리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 체계를 고민하고,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석탄발전소 건설 기업의 사업 활동이 인류 문명과 뭇 생명들의 터전을 위협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실시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정당행위'라는 변호인단의 주장에 동감하는 연대 서명을 재판부에 전달하였고, 지구법학자(기후위기 시대의 법체계가 인간 중심이 아닌 지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법학자)들 또한 '재산 효용에 대한 침해 정도가 크지 않고, 지구 공동선 또는 집합적 공익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행위로 추구하고자 하는 이익과 행위로 인해 발생한 불이익 간 불균형성이 유지된다면 형법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형사 범죄로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표현의 자유 보장을 넘어 정당행위 인정이 필요하다
1, 2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이례적인 원심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조형물의 용도와 기능, 피고인들 행위의 동기와 경위, 수단,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인들의 행위가 조형물의 효용을 해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고, 재물손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한, 이들의 행위에 대해 형법상 재물손괴죄를 쉽게 인정한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점도 판결문에 명시했다. 직접행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벌금'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이들의 행위를 정확하게 '정당행위'로 명시하지 않은 대법원의 판결은 분명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판결에서 피고인들 행위의 동기와 경위, 수단, 내용 등을 고려한 점, 공익적 목적을 지닌 직접행동으로 인한 손해를 기업 등이 과도하게 책정하여 벌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명시한 점 등은 대법원이 간접적으로 이들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관련하여 기후활동가 직접행동의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한 유의미한 판결 사례도 있다. 지난해 1월, 포스코가 개최한 수소환원제철포럼 행사장에서 포스코의 온실가스배출 책임을 묻는 직접행동을 진행한 녹색당 활동가들이 벌금 약식명령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 1심 판결에서 판사는 "범지구적으로 기후위기가 급변점(티핑포인트)을 넘어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활동가들은) 산업계·정부 차원에서 현재보다 더 높은 수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측면에서 목적의 정당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판결문에 명시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확대와 선행 판례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 뒤이은 전향적 판결 사례들이 기대된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시민 불복종행동을 '정당행위'라고 분명히 못박는 판결 또한 보고 싶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총장의 비리행위를 비판하며 '퇴진운동'을 벌이던 중 면담을 피하는 총장을 만나기 위해 회의실 문을 부순 학생회 임원들의 행동이 사회상규상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업무방해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헌법이 정한 '학습권'에 근거하여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였으며,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통상적인 다른 절차를 거친 후 부득이하게 채택한 행위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판결이 가능한 사법부라면 온실가스를 대규모로 배출하고 현지 주민의 생존권과 환경권을 침해하는 두산중공업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행위를 막고자 취한 활동가들의 행동을 정당행위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후위기에 대한 기업과 국가의 책임을 고발하는 직접행동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법 해석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시민의 행동을 촉진하는 사법부의 역할을 촉구한다.
사법 판단 넘어 기업과 정부의 기후 생태 인권 책임 묻는 입법이 시급하다
기업과 정부의 기후위기 책임에 대한 사법부의 눈여겨볼 만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기후위기를 심화하는 기업의 행위를 처벌하거나 책임을 강제하는 근거법률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법률의 공백을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직접행동'으로 고발하고 이들 행위에 대한 처벌을 법적으로 다투는 사례가 대부분인 점은 매우 아쉽다(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직접 묻는 기후헌법소원 사례는 반갑다).
관련 법률이 마련되지 못해 처벌근거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는 입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예컨대,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얀마에서 벌이는 천연가스전 사업 대금이 쿠데타를 벌이고 시민을 학살하는 미얀마 군부에 흘러 들어가는 것을 지적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를 계기로 2022년 '미얀마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모임'은 분쟁지역에서 한국기업의 인권책무를 강화하는 해외자원개발사업법 개정안을 공동발의했지만 산업자원부의 반대 등으로 실제 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기업과 국가의 이익'이 같은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국경 너머 이웃 시민들의 '생명과 인권'에 우선해 놓인 탓이다.
만약 한국 기업과 정부가 해외에서 벌이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기후생태·인권 책임을 묻는 법률이 있었다면 활동가와 시민들이 힘겹고 지난한 장외투쟁을 벌여나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이윤보다 생명'이라는 분명하고 뚜렷한 상식에 기반한 법률이 필요하고, 이는 입법부에 맡겨진 임무이다.
이번 판결은 '활동가들의 직접행동이 정당한가'라는 논의를 넘어 우리에게 묻는다. 기후위기 시대,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장 중요한 법익은 무엇인지,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사회적 윤리가 기존의 사회상규와 어떻게 조응해야 하는지, 바꾸어나갈 부정의한 법제도와 관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논의에 부친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나가야 할, 지구 공동체와 우리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새로운 법 체계는 무엇일지.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는 상현 기후활동가(녹색당원)입니다.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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