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제주생명평화대행진 함께 걸어요!
[고권일]
▲ 2023제주생명평화대행진 다시, 평화야 고치글라 |
ⓒ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조직위원회 |
안녕하십니까!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 고권일입니다. 올해도 작열하는 뙤약볕 아래 생명의 평화의 걸음을 함께하자고 초대의 글을 여러분께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2012년 강정평화대행진으로부터 시작되어, 2013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 2016년 제주생명평화대행진으로 명칭을 바꾸며 올해로 10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매해 지구의 기온이 새롭게 경신되며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폭염과 가뭄, 폭우와 강풍이 지구 곳곳을 할퀴고 헤집어 놓고 있습니다. 인간이 탄소 연료를 너무 무절제하게 써 온 것이 원인이라고 과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1980년 이전부터 경고를 해왔지만 우리 대부분은 무심하게 흘려들었습니다. 어쩌면 먹고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구에 대해서, 주변 환경에 대해서, 생태계에 대해서, 조금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이웃 나라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배려나 안부를 전하거나, 연민 같은 것을 느끼기도 전에 그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몰랐다는 이유로, 바쁘고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로 자본주의와 국가, 회사와 공동체가 시키는 대로 그저 따랐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듯 악의 평범성에 우리가 물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중심에는 뿌리 깊은 군사주의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군사 훈련과 군사 무기 생산과 유지에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인류 전체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20%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군수산업과 그와 연계된 정치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금융자본은 강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세계를 파괴하는 일에 우리와 우리의 부모 그리고 아이들까지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강한 군사력은 더 강한 대립을 낳고 사회를 경직시켜 더욱 강한 국가체제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민주주의는 후퇴하며 기후위기를 늦출 예산과 국민의 복지와 안녕에 쓰여야 할 예산이 국방비로 먼저 쓰이게 만듭니다. 부족해진 생활자원 때문에 무한경쟁 시대라며 개개인을 파편화하고, 정글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결과 증오가 삶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군사주의는 이렇게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인류를 파탄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라는 단어 자체가 공포를 낳고, 이 공포는 내 편과 내 편 아닌 사람들을 나누는 도구가 되어 대결을 통한 생존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오랫동안 해소되지 못하고 지속되는 상황 가운데 '기후위기'라는 공포를 유발하는 단어에서 전 세계적인 우경화가 파생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관점으로서 '기후변화'를 뜻하는 말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도 결국, 우리 하나하나가 결집한 힘, 민중의 단합된 힘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정해군기지 문제는 이미 종결되었고, 더 이상 아무런 싸움도 없지 않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 말씀도 옳습니다. 우리가 비록 매일 아침 생명평화백배를 시작으로 길거리 미사와 함께 인간띠를 진행하고 있으며, 기지 앞에서 해군기지 폐쇄와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구호들을 외치고는 있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공권력과 대치되는 싸움 현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말씀드렸듯 기후위기 주범 중 하나가 군사주의라는 것과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단순히 기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 공군기지로 쓰일 제2공항과 함께 제주도를 군사기지의 섬으로 만들어 갈 현실적인 위협입니다. 제주도의 군사기지화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대결 구도가 폭발 직전까지 팽창되며 신냉전 완성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신냉전이 도래하게 된다면, 단군 이래 최대의 평화 시대라는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으로 세계의 중심에 서는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닌 인권과 문화가 다시 군사정권 시대로 추락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강정마을에서의 평화 행동은 이러한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한 경고음입니다. 이 경고음에 반응하여 오는 여러분들도 우리와 함께 평화의 미어캣이 될 것입니다.
평화란 몇 명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미어캣 행동이 퍼져나가 평화의 공명현상을 일으키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 울림은 다른 어떤 진동보다 큽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마음이 일으키는 진동이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주변의 작은 미물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나를 둘러싼 공기와 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속삭임으로 시작되어도 다다를 대상에게는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에너지로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구어진 아스팔트를 걸으며 온몸이 붉게 그을리고 비 오듯 땀 흘려 걷는 즐거움이란, 고통을 극복할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동지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얻을 수 있음을 우리는 매번 경험합니다. 함께 걷지 못해도 응원의 함성이나 손짓, 수줍게 내미는 수박 한 덩어리나 얼음물 한 병에서 기운이 솟아나는 기적을 행진 때마다 얻습니다. 그 기운으로 우리는 아홉 번을 치렀고 열 번째에 도전합니다.
평화의 미어캣으로 퍼져나갈 메아리를 강정마을로 초대합니다. 비록 2박 3일간의 짧은 기간을 준비했습니다만, 그 어느 때보다 꽉 차고 단단한 행진이 되도록 준비하겠습니다. 함께 걷는 세 번의 낮과 두 번의 밤은 각자의 마음에 다섯 개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백 명이 모이면 오백 개의 이야기가 되고 오백 명이 모인다면 이천오백 개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메아리가 되어 세상을 바꿀 미어캣이 될 것이라고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 2024제주생명평화대행진 |
ⓒ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조직위원회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성한 고권일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주민회 공동대표입니다. 이 글은 제주의소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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