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역사를 안다면, 일본보다 한국이 더 밉지 않을까

김성호 2024. 7. 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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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795] 영화 <대호> 와 세계 호랑이의 날

[김성호 기자]

기념일. 광대한 우주, 천체의 순환 가운데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이야 매일이 같겠으나 인간은 특별히 날을 정해 무엇을 기념하고는 한다. 이를테면 인간이 세상에 난 날을 생일로써 기념하고, 남녀가 처음 연인이 된 날이며 결혼식을 올린 날을 챙기고는 하는 것이다. 개인적 차원만은 아니다. 종교에선 성인의 탄생이며 순교와 같은 비극을 기념하고, 국가와 사회에서도 의미 깊은 날을 따로 추려 국경일이며 명절로써 다루고는 한다.

개중에선 이미 유명한 기념일도 있고 아직 얼마 알려지지 않아 아는 사람들만 기억하는 날도 있다. 그리하여 세상엔 더 널리 알려져야 하는 날이 적지 않으니, 나는 그중 몇의 의미를 주변에 알리고는 해왔던 것이다. 특히 7월 말에는 관심을 갖고 있는 날이 제법 있는데, 26일 국제 맹그로브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Conservation of the Mangrove Ecosystem), 28일 세계 간염의 날(World Hepatitis Day), 29일 세계 호랑이의 날(International Tiger Day)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유달리 의미 깊은 이 세 날을 나는 관련된 영화와 묶어 '씨네만세'에서 소개하기로 했다. 기념일의 이름만 듣는 것으로는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왜 기념일로까지 제정해 대중들이 알도록 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때문이다. '씨네만세 795'는 그 마지막 화로, 세계 호랑이의 날을 박훈정 감독의 영화 <대호>와 엮어 다룬다.
  
▲ 호랑이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일본 순사들이 호랑이를 사냥하고 찍은 기념사진.
ⓒ 엔도 키미오
 
호랑이 좋아하는 한민족, 그러나 실상은?

한국인은 유달리 호랑이에 애착을 가진다. 기아 타이거즈와 옛 울산 현대 호랑이 같은 프로 스포츠 팀부터, 고려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한민국 육군이며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까지가 호랑이를 마스코트로 삼은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한반도의 모양이 호랑이가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여기고, 동물원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동물로 호랑이가 꼽힌다.

그러나 그 호랑이가 한반도엔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 야생상태에선 말이다. 사실상 멸종, 남은 건 전부 외국에서 들여온 동물원의 호랑이 뿐이다. 한반도에서 보고된 마지막 호랑이 사살 공식 기록은 1922년이다. 총을 쏘아 죽인 채로 산에서 끌어 내려왔다고 했다. 경주 대덕산에서였다. 그를 죽인 건 미야케란 이름의 일본 순사였다. 이후 독립 이전까지 호랑이를 잡았다는 민간의 기록은 있지만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호랑이 연구자들은 이제 한반도 전역에서 호랑이가 멸종상태라고 말한다.

호랑이는 모두 6개의 아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반도에 살았던 건 흔히 시베리아호랑이라고 부르는 아무르호랑이다. 이제는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길림성, 흑룡강성 등지에 약 500여 마리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개체수 또한 크게 줄어 각종 보호사업에도 5000마리가 채 되지 않는다. 100년 전 아시아 일대에서만 10만 마리가 넘게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호랑이가 멸종위기에 이른 형국이다.
 
▲ 대호 포스터
ⓒ NEW
 
호랑이가 주인공인 보기 드문 영화

박훈정 감독의 2015년 작 <대호>는 호랑이가 주역인 흔치 않은 영화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을 배경으로 명포수로 이름을 날리던 천만덕(최민식 분)이 호랑이와 조우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때는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멸종 위기에 놓여 있던 시점으로,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이 포수는 물론 군까지 동원해 호랑이를 토벌하도록 하는 과정이 담겼다.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가 제 터전을 위협받는 이야기로부터 민족의 정기가 거꾸러져 가는 비극성을 형상화한다.

통상 호랑이가 나오는 영화에 따를 법한 기대를 감독은 전혀 충족시킬 생각이 없다. 이를테면 김한민의 <최종병기 활>과 같은 작품 속 괴수에 가까운 맹수인 호랑이가 저를 공격하는 인간과 날 선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산군이라 추앙받던 대호를 사냥하려는 일본군과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혹은 강압에 이기지 못해 호랑이를 추적하는 조선인 포수들의 이야기가 지루하게 다뤄질 뿐이다.

그 과정에서 지킬 것이 있는 한 아버지와 역시 지켜내야 할 것이 있는 다른 것이 대면하는 순간이 영화적 감흥을 일으킨다. 호랑이와 인간, 두 존재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육체적이며 물리적이라기보다는 숙명적이고 드라마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많은 이가 <대호>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로 꼽은 이 대목이 도리어 감독 박훈정의 관심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호랑이는 한국인에게 그저 그렇게 소비돼선 안 될 짐승이라고, 1920년대 맥이 끊긴 호랑이를 우리는 그저 그렇게 보내서는 안 되는 거라고 박훈정은 생각했으리라.

이제와 영화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영화가 선명한 은유를 담고 있고 어떤 감흥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전개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그를 뒤엎을 효과 또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시대와 민족과 정기의 종말을 그려내려 한 의도는 알겠으나, 이 시대 관객을 설득할 만한 화법을 갖추지 못했음이 명백하기도 하다. 말하자면 영화적으로 <대호>의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간다. 그 최민식까지 갖고서도 말이다.
 
▲ 대호 스틸컷
ⓒ NEW
 
한반도 호랑이, 일제가 다 죽였을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말하는 건 <대호>가 7월 29일, 세계 호랑이의 날을 맞아 시사점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호랑이와 관련해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한다. 또 그렇게 인식하며, 적어도 자신이 정서적으로나마 호랑이와 가까운 무엇이라 여긴다. 만약 호랑이에게 이를 알고 대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당장 앞발을 들어 세차게 후려칠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 일제만큼, 어쩌면 그보다도 더 호랑이에게 못할 짓을 해왔으니 말이다.

일본이 조선의 호랑이를 대대적으로 사냥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소위 해수구제, 해로운 짐승을 제거한다는 정책에 따라 1915년부터 1942년까지 통계에 잡힌 것만 100마리 가까운 호랑이를 사살했다. 흩어진 민간 자료를 취합하면 140여 마리까지 수가 늘어난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수백 년 앞선 임진왜란 당시에도 가토 기요마사 같은 왜장들이 한반도에서 호랑이 사냥에 나선 건 유명한 일화다. 일본 열도에는 없는 반도의 대표적 맹수를 침략자인 무인들이 죽이는 것, 그는 그저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일에서 그치는 것일 수는 없는 일이다.
 
▲ 대호 스틸컷
ⓒ NEW
그러나 일본만이 호랑이를 죽였을까. 시간을 조금 앞으로 돌려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선왕조 500년, 전국 군현에 호랑이를 매달 최소 1마리씩은 사냥해 호피 3장씩을 진상하도록 했던 이 시기의 이야기는 얼마 알려져 있지 않다. 범을 사냥하지 못하면 면이나 쌀, 비단 등으로 대체하는 징벌적 형식의 세금 호속목 제도 또한 200년 이상 유지된다.

조선은 수만 장에 달하는 호피를 창고에 쟁여두고 진상이나 하사품으로, 또 무역에 쓰는 매물로 활용했다. 호피는 조선의 대표적 특산품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냥꾼들의 주요 수입원이기도 했다.

호랑이의 터전이던 산과 숲을 개간해 농지로 바꾸는 작업도 지속됐다. 고려에 비해 인구수가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은 약 200여 년 만에 개국 초기 80여 만 결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 160만 결 내외의 농지를 확보한다. 이로부터 호랑이가 민가로 내려와 호환을 일으킨다는 보고 또한 급증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조선의 호피공납제를 위시한 체계적 호랑이 사냥은 민간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요소도 있었던 것이다.
 
▲ 호랑이 아무르호랑이
ⓒ 픽사베이
 
세계 호랑이의 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이를 통해 보자면 일제가 호랑이의 죽음에 결정타를 때린 것이 사실이라 해도, 한반도 위에 오래 터를 잡고 살았던 한민족의 책임도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호랑이에게도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있다면 더 증오하는 것이 일본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을 테다.

뿐인가. 해방 뒤 한국 또한 호랑이에게 많은 잘못을 범해왔다. 호랑이 보호운동에 진력하는 활동가들이 저술한 책 <호랑이여 영원하라>에 따르면, 한국은 1970년부터 19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6톤이 넘는 호랑이 부산물을 여러 경로로 수입해왔다. 약재로 인기가 있는 호랑이뼈가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만 3.7톤의 뼈가 수입된 것으로 기술돼 있다. 이는 호랑이 500마리의 뼈를 모아야 얻을 수 있는 양이다.(관련기사: 한국은 호랑이 멸종위기 부른 주요 국가였다 https://omn.kr/m7ij)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이 수입한 호랑이 부산물 상당수가 밀렵된 개체로부터 얻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한국이 호랑이 밀렵에 있어 주요 소비자로 하나의 축을 무척 오랫동안 담당해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호랑이 멸종에 경각심을 갖고 보호의 필요성을 알리는 이날, 7월 29일 세계 호랑이의 날을 그저 흘려보낼 수가 없는 이유다. 우리에겐 죄과가 있으므로.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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