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금반지 대신 주식’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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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백일 땐 금반지 대신 주식을 사준다"고 했던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가 발언을 사과하고 주식 37억원도 사회에 환원했다.
이 과정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던 헤드라인은 "요즘 아이들은 돌이나 백일 때 금반지를 사주지 않고 주식을 사준다"는 이 후보자 말이었다.
예컨대 특정 대기업의 경영자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법관이 유죄를 선고하기 전에 해당 기업 주식을 매도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상고심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할 것 같은 대법관을 일부러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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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백일 땐 금반지 대신 주식을 사준다”고 했던 이숙연 대법관 후보자가 발언을 사과하고 주식 37억원도 사회에 환원했다. 인사청문회는 지난 25일에 진행했고, 보도자료는 27일 나왔다. 기부 대상이 된 청소년행복재단은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과정에서도 가장 주목받았던 헤드라인은 “요즘 아이들은 돌이나 백일 때 금반지를 사주지 않고 주식을 사준다”는 이 후보자 말이었다.
이 후보자는 부자다. 재산 170억원을 신고했다. 서울 서초구에 174㎡ 규모 아파트도 갖고 있다. 예금은 14억원에 달한다. 배우자의 재산도 100억원대다. 20대인 장녀는 다세대 주택을 포함해 총 6억원을 소유했다. 여기에 부모에게 돈을 빌려 산 비상장 주식을 다시 아버지에게 팔아 6년 만에 약 63배 시세차익을 거뒀다. ‘아빠 찬스’ 논란이 거세졌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대법원이 아닌 투자회사에나 어울린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가 ‘자산가’여서 자녀가 대물림으로 큰돈을 취득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실증적 비판을 받아야 할 일일까. 증여 과정의 적법성을 따져보는 게 우선 아닐까. 재판관도 자유방임과 사적 자치 원칙 속에 살아간다. 사유재산권을 보호받고, 주식·부동산도 보유한다. 고위공직자는 ‘지대’나 ‘잉여생산물’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법은 없다. 법관은 계약도, 투자도, 매수도 하지 않는 탈(脫)시장의 세계, 무균질의 진공 상태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기대는 허구적이다. 그러려면 세속에서 벗어난 성직자만이 법관을 해야 할 것이다.
핵심은 ‘이해충돌’과 ‘사익추구’ 여부다. 그래야 더 명료하고 가시적으로 법관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 판결에서 재판관 이익이 반영되거나, 편견과 선입견이 반영될 경우 적극적으로 제척, 회피했느냐 여부가 도덕성 검증의 핵심이 돼야 한다. 예컨대 특정 대기업의 경영자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법관이 유죄를 선고하기 전에 해당 기업 주식을 매도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두 대상이 법익을 놓고 싸울 때도 마찬가지다. ‘근로자·사용자, 소비자·기업, 항의자·질서유지자, 채권자·채무자, 처분받은 당사자·행정청, 피해자·가해자….’ 대법관은 다툼의 경기에서 심판으로 참여한다. 법관이 경기에 직접 관여한다면, 그가 가진 사적 이익과 결부되기 쉽다. 이를 견제하는 것이 대의 기관인 국회의 역할이다.
미국 연방대법원 이야기를 다룬 책 ‘지혜의 아홉기둥’에는 변호사가 나온다. 상고심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할 것 같은 대법관을 일부러 찾아간다. “재심을 청구할 것”이라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두 대법관은 그 정보를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재판을 회피한다. 대법관의 도덕성이자 직업윤리의 구체적 표상은 이런 것이다.
“법관이 이렇게 재테크를 하다니”라는 식의 비판 논리가 담긴 인사청문회가 효과적인 대법관 검증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특권층의 쏠림과 부의 세습은 조세부담률, 상속 및 증여세, 빈부 격차 해소 등 구조적 문제의 교정과 함께 짚어야 할 일 아닐까. 선출된 기관인 국회가, 선출되지 않는 사법권력을 감시할 땐 정교한 원리에 기반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론재판식 인사청문회가 주는 피로감이 크다.
구채은 기자 fakt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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