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교육정책 다시 꺼내 든 정부, 무슨 생각일까
[김홍규 기자]
▲ 교육부 '자율형 공립고' 선정 보도자료 교육부는 지난 2월 28일과 7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율형 공립고를 85개 지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7월 22일 보도자료 일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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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튀어나온 '좀비' 정책, 자율형 공립고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에서 폐기된 '자율형 공립고' 정책을 다시 꺼냈다. 교육부는 지난 2월 28일과 7월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율형 공립고를 85개 지정했다고 밝혔다(교육부, 2024년 2월 28일 보도자료, '지역의 교육혁신을 선도하는 자율형 공립고 2.0 40개교 지정', 2024년 7월 22일 보도자료, '지역과 함께하는 학교혁신, 자율형 공립고 2.0 2차 공모에 45개교 선정'). 1차에서 40개, 2차에서 45개 학교를 선정했다.
▲ 교육부가 밝힌 '자율형 공립고 2.0' 특징 교육부는 기업, 대학과 연계를 앞세워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정책과 차별성을 강조하며 ‘자율형 공립고 2.0’이라고 불렀다. 표는 교육부가 지난 2월 28일 보도자료에서 밝힌 '새로운' 자율형 공립고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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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기업, 대학과 연계를 앞세워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정책과 차별성을 강조하며 '자율형 공립고 2.0'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담당 장관이 같아서인지 과거 실패한 정책과 달라진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과거에 드러났던 교육적 문제는 그대로 안고 있다. 죽지 않고 다시 덤벼드는 '좀비'같은 정책이다.
자율형 공립고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추진과 함께 본격화됐다. 2009년 기존의 '개방형 자율학교'를 '자율형 공립고'로 이름을 바꾸고 2010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강영혜·박소영·김용, 2011, <일반계 고교 다양화 정책의 추진 현황과 과제>, 7쪽, 한국교육개발원 포지션 페이퍼 제24-1호).
2010년 22개, 2011년 36개, 2012년 39개, 2013년 19개 학교가 자율형 공립고 운영을 시작했다. 2013년까지 모두 116개교였다. 자율형 공립고는 자율형 사립고와 특수목적고 확대 등 이명박 정부 '고교 다양화 정책'과 궤를 같이한다. 목표는 '학교 다양화'로 포장된 고등학교 카스트를 만드는 데 있었다.
같은 장관, 이름만 살짝 바뀐 정책
'그 나물에 그 밥'. 낡은 표현이지만, '자율형 공립고 2.0'으로 포장된 윤석열 정부의 자율형 공립고 정책에 잘 어울린다. 교육부는 올해 2월 28일, 7월 22일 자율형 공립고 보도자료 제목에 '지역'과 '교육혁신'을 공통으로 넣었다.
2월 보도자료에는 한국수력원자력과 협약을 맺은 부산장안고, 한국전력과 지역 대학과 연계한 전남 지역 3개교 연합, 공주시 지원을 받는 공주고, 안동시 및 대학과 협력하는 안동여고 사례를 구체적으로 실었다. 7월 보도자료에는 IT 기업과 협약을 체결한 판교고, 경기대와 협약을 맺은 고색고, 괴산군과 중원대의 지원을 받는 괴산고 사례를 자세하게 덧붙였다.
▲ 이명박 정부 자율형 공립고 특징 교육부는 다시 시작하는 자율형 공립고가 과거 이명박 정부 때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임여박 정부 자율형 공립고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면 큰 차이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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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는 이명박 정부 때 자율형 공립고의 특징을 정리한 것이다. 교육부는 '새로움'을 강조했지만, 그렇게 보긴 어렵다. 교사 초빙 100%나 교원 추가 배정, 산학협력 겸임교사 정책은 이미 "자율형 공립고 1.0" 시기에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지원 금액인 학교당 2억 원도 같다. 이는 교육과학기술부 2011년 3월 31일 보도자료, '자율 공립고 39개교 추가 선정...전국 97개교로', 교육과학기술부 2012년 8월 22일 보도자료, '자율형 공립고 116개교 확대'에서도 볼 수 있다.
교육부가 자신 있게 내세운 사례 학교들 현황을 봐도 정책 추진의 허술함과 자신감 부족을 알 수 있다. 2월 28일 보도자료에 나온 사례는 모두 운영 전인 학교들이었다. 심지어 9월에 운영을 시작하는 학교도 있다. 이번 7월 22일 보도자료에 소개된 학교들은 모두 9월에 시작하는 학교들이다. 계획서에 있는 내용이다.
▲ 자율형 공립고 선정 학교와 지역 올해 교육부가 지정한 자율형 공립고 85개교 이름과 지역, 운영 시작 시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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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정책, 더 망할 정책
자율형 공립고 정책은 교육적으로 실패했다. 김태연·한은정은 자율형 공립고가 학업성취, 교육과정 시수 자율화, 진로교육 수준 등에 유의미한 영향이 없다면서 정책 재검토를 주장했다(김태연·한은정, 2013,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학교효과 분석', 교육행정학연구 31(3), 131~152쪽).
논문 몇 개를 근거로 '실패한 정책'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보고서들을 근거로 들 수도 있다. 이들 연구보다 더 확실한 근거가 있다. 박근혜 정부의 자율형 공립고 정책 폐기라는 역사적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여러모로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정권이다.
"학교 유형 다양화를 통해 학생들을 구분 짓는 것이 과연 진정한 다양성 있는 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기존의 특목고가 갖는 학교효과 및 고교 설립 유형에 따른 학교효과 연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김태연·한은정, 2013, '자율형 공립고등학교 학교효과 분석', 교육행정학연구 31(3), 147쪽)
일부 사람들은 학교의 우수함을 입시 결과나 취업 결과만으로 보려 한다. 하지만, '학생의 뛰어남'과 학교효과는 전혀 다르다. 좋은 학교일수록 배움이나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성장시킨다. 성적 서열 상위권 학교들일수록 학생들의 성장에 관심이 없다. 학생들 상당수를 우월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강준만은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에서 재미난 사고 실험을 제안한 적이 있다(강준만, 2008, <지방은 식민지다>, 개마고원, 97쪽, 115쪽). 서울 유명 사립대학인 고려대와 연세대 가운데 한 곳을 강원도 동해시로 옮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학교 이전 이후에도 두 학교는 라이벌로 남아 있을까? 그는 "곧 연·고대라는 말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은 OECD 최고다. 하지만, 이들이 대학에 가면 어떻게 되는가? 서울 유명 대학들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과 과학 성취를 보이는 학생들을 모아놓고도 학생들 탓하기에 바쁘다.
강원도에서 올해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학교는 세 곳이다. 상동고, 원주고, 춘천고이다. 강릉, 원주, 춘천은 평준화 지역이다. 오랜 기간 노력 끝에 지난 2011년 7만 3천 명 남짓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70.3% 찬성으로 시작됐다.
지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평준화 지역에 속해 '선지원 후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원주고와 춘천고가 독자적인 학생 우선 선발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학교 성적이 높은 학생들을 뽑아 이른바 '명문대학'에 더 많은 학생을 보내고 비평준화 시절 '명성'을 되찾겠다는 욕심이다. 이러한 '비교육적 욕심'이 자율형 공립고의 제 모습이다. 실패한 교육정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공립고등학교는 공적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공적 교육기관에 종사하는 이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국민 다수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 '지금 속한 학교만 이름이 나면 된다', 또는 '졸업한 학교가 유명해지면 된다'라는 생각은 자신의 존재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다.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학교장들이 학생 우선 선발을 정부에 요구하고 언론에 인터뷰까지 하는 일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교육부가 실패한 자율형 공립고 정책을 다시 꺼내든 덕분에, 전국에서 수많은 교육기관 종사자들이 국민 다수가 아닌 소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를 비롯한 공적 기관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는 정책을 펴서는 안 된다.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마스코트 '프리주(phryges)'가 상징하듯,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성 존중이 우리 모두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보여주었다. 자율형 공립고를 비롯한 학교를 줄 세우는 '카스트' 제도는 이같은 민주주의 가치에 어긋난다. 지금이라도 교육부는 정책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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