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명쾌... 할리우드 자본 영리하게 이용한 감독
[양형석 기자]
코엔 형제와 워쇼스키 자매, 루소 형제, 페럴리 형제, 류승완-류승범 형제, 엄태화-엄태구 형제처럼 영화계에는 유명한 형제 영화인들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 만큼 영화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 형제를 찾긴 쉽지 않다. 뤼미에르 형제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고 현재 영화 제작 시스템을 만든 선구자 역할을 한 형제로 현대 영화의 시조이자 '본류'로 꼽힌다.
뤼미에르 형제를 배출한 프랑스는 오늘날에도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높은 나라로 유명하다. 특히 쉽고 대중적인 영화보다는 예술가치가 높은 영화를 잘 만드는 나라로 유명하다. 실제로 세계적으로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하는 영화가 유독 프랑스에서는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프랑스는 나쁘게 보면 별나고 좋게 보면 독창적인 영화의 특징을 가진 나라라고 할 수 있다.
▲ <제5원소>는 북미보다는 해외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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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지향적인 영화 만드는 프랑스 감독
195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뤽 베송 감독은 1983년 흑백영화 <마지막 전투>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국내에서는 2000년에 개봉). 하지만 뤽 베송 감독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은 역시 1988년에 개봉한 <그랑블루>였다. 프리다이버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평가 받는 영화 <그랑블루>는 개봉 당시 9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뤽 베송 감독은 일약 프랑스의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다(프랑스 박스오피스 기준).
1990년 여성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신작 <니키타>를 선보인 뤽 베송 감독은 1994년 <니키타>에 등장한 캐릭터 '빅터'를 모티브로 할리우드에 진출해 신작을 만들었다. 국내 관객들에겐 뤽 베송 감독의 영원한 대표작으로 기억되고 있는 <레옹>이다. 1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45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올린 <레옹>은 국내에서만 5번이나 재개봉됐고 동명의 노래가 나왔을 정도로 문화계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레옹>을 통해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뤽 베송 감독은 1997년 9000만 달러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제5원소>를 연출했다. 뤽 베송 감독이 처음으로 SF액션 장르에 도전한 <제5원소>는 북미 흥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해외시장에서 선전하면서 세계적으로 2억6300만 달러의 괜찮은 흥행성적을 올렸다. 뤽 베송 감독은 1998년 5편까지 제작된 프랑스의 범죄액션 영화 <택시>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뤽 베송 감독은 1999년 차기작 <잔 다르크>가 제작비조차 회수하지 못하는 부진을 겪으며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다. 뤽 베송 감독의 '페르소나' 장 르노와 재회한 <와사비:레옹 파트2> 역시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뤽 베송 감독은 <트랜스포터>와 <테이큰>의 각본작업에 참여하며 젊은 감각을 유지했고 2014년에는 스칼렛 요한슨과 최민식이 출연한 <루시>를 통해 4억6300만 달러의 높은 흥행을 이끌었다.
2017년 <발레리안:천 개 행성의 도시> 개봉을 앞두고 홍보차 한국을 방문했던 뤽 베송 감독은 예능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슈퍼히어로 장르가 지나치게 산업화됐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2019년엔 사샤 루스, 킬리언 머피와 함께 신작 <안나>를 선보였던 뤽 베송 감독은 환갑을 훌쩍 넘긴 작년에도 액션 스릴러 <도그맨>을 통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브루스 윌리스는 1997년 <제5원소>,1998년<아마겟돈>,1999년<식스센스>로 3연타석 홈런을 쳐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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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SF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래세계를 그려 낸다는 점에서 작가들의 창작욕구를 자극하는 장르다. 하지만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만의 확실한 세계관을 구축하지 못하면 관객들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다. 자칫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결과물을 선보여 관객들과의 호흡에 실패할 경우 감독이나 작가는 스스로 만족할지 몰라도 투자사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도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장편 데뷔작 <마지막 전투>부터 <레옹>까지 자신이 연출한 모든 영화의 각본을 직접 썼던 뤽 베송 감독은 <제5원소> 역시 직접 각본을 썼다. 하지만 뤽 베송 감독은 어려운 세계관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혼란을 주기 보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스토리 전개를 통해 상업영화의 본분을 지켰다. <제5원소>는 '땅, 불, 바람, 물, 마음'으로 구성된 5가지 힘을 하나로 모아 지구를 지킨다는 1990년대 애니메이션 <출동 지구특공대>가 떠오르는 주제의 SF 영화다.
<제5원소>는 23세기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계는 하나로 통합돼 지구연방 대통령(톰 리스터 주니어분) 이 나오고 차들은 땅이 아닌 하늘로 주행하는 등 신기한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주인공은 여전히 무선전화기를 사용하고 택시는 수동으로 운전한다. 게다가 최첨단 무기를 거래처에 소개한 악당은 일을 마친 후 연초담배를 입에 물고 한숨을 돌리는 등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건강이 많이 악화돼 힘든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1990년대 중·후반 당시 브루스 윌리스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높은 흥행을 보장하는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이었다. 브루스 윌리스는 <제5원소>에서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택시운전을 하는 코벤 댈러스 역을 맡았다.
뤽 베송 감독은 <그랑블루>와 <니키타>의 차기작으로 <제5원소>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제5원소>의 많은 제작비를 감당하려는 제작사가 나타나지 않았고 코벤 댈러스 역으로 낙점했던 브루스 윌리스마저 <제5원소>에 회의적이었다. 이에 뤽 베송 감독은 <제5원소>를 만들기 위해 모은 제작팀과 함께 영화 한 편을 만들었는데 그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레옹>이었다. 그리고 뤽 베송 감독은 <레옹>의 대성공으로 <제5원소>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 <제5원소>로 스타덤에 오른 밀라 요보비치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로 할리우드의 대표 여전사로 발돋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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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올드만은 할리우드 최고의 악역배우로 꼽힌다. 특히 <레옹>에서는 부패한 형사 노먼 스탠스필드 역을 맡아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한 바 있다. 노먼 스탠스필드가 등장한 <레옹>을 연출했던 뤽 베송 감독은 3년 후 <제5원소>에서도 올드만을 캐스팅해 악역 캐릭터 조그를 맡겼다. 다만 우주해적들의 무기상인 조그는 <레옹>의 스탠스필드처럼 냉철하고 악랄한 빌런이라기 보다는 어설프고 코믹한 면이 있는 귀여운(?) 악당이다.
뤽 베송 감독이 <레옹>에서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배우를 발굴했다면 <제5원소>에서는 구소련에서 태어난 밀라 요보비치라는 신인배우를 발굴했다. <제5원소>에서 우주선의 잔해에서 발견한 세포를 바탕으로 복원한 신비한 여인 릴루를 연기한 요보비치는 신선한 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보비치는 차기작 <잔 다르크>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2002년부터 시작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통해 할리우드의 대표 여전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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