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 향 담긴 금빛 성게알, 명절 선물로 만난다
“들게!(바다로 들어가자)”
“가게!(밖으로 나가자)”
성게잡이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18일 제주 서귀포시 동일리 앞바다. 테왁(부력이 있어 몸을 뜨게 하는 도구)에 몸을 의지한 채 험한 파도에 맞서는 해녀들의 대화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물질(조업)이 한창인 바다에선 간간이 휘파람 소리와 비슷한 해녀들의 호흡하는 소리, ‘숨비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높은 파도로 1시간여 만에 작업을 마친 해녀들의 망사리에는 시커멓고 뾰족한 성게가 가득했다. 고령의 해녀들은 각자 30~50㎏에 달하는 망사리를 등에 이고 바다에서 힘겹게 나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성게알은 사실 성게의 생식소(정소 혹은 난소)다. 성게 속이 노랗게 차는 6~7월이 되면 11명의 동일리 해녀들은 오전 6시부터 물질에 나선다. 두 달여 기간 동안 장마가 겹치면 물질을 할 수가 없어 실제 조업일은 약 24일 정도에 불과하다. 평균 3~4시간 동안 이어지는 물질로 잡는 성게는 인당 대략 100~200마리다.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손질 작업은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성게를 반으로 갈라 티스푼으로 속살을 발라낸 뒤 핀셋으로 내장을 골라내고 해수로 씻는 작업이다.
성게잡이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가시에 찔리면 극심한 통증과 함께 피부가 부어오른다. 성게 가시는 잘 부러지는 특성이 있어 자칫 피부에 박힌 채 부서지면 빼내기도 어렵다. 심한 경우 병원에서 제거 수술을 받거나 상처 치료를 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고무로 만든 해녀들의 잠수복에선 성게 가시에 쓸려 표면이 거칠게 헤진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슬포수협 동일어촌계장이자 현직 해녀 김계숙(71) 제주해녀협회장은 “성게가 든 망사리가 파도에 휩쓸려 몸통을 치면 잠수복이 가시에 뚫리기도 한다”며 “어찌나 아픈지 고통이 열흘 넘게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고달픈 작업 탓에 제주 해녀 수는 급감하는 추세로 2010년 4995명, 2017년 3985명에서 지난해 2839명으로 줄었다.
이렇다 보니 성게알은 비쌀 수밖에 없다. 제주 서남쪽 가파도산 성게알의 경우 수협에서 매입하는 가격이 지난해 1㎏당 17~18만원에서 올해 20만원대로 올랐다. 백진호 제주 모슬포수협 유통상무는 “다른 수산물의 경우 대량 출하되지만 성게는 해녀가 직접 채취해 소량 직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시세나 유통량 집계가 어렵다”며 “성게알은 점점 찾는 곳이 많아지고 있어 현재 주문받은 물량도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성게 수입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존 수출 물량은 국내 공급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성게 수입량은 2021년 0.7t에서 2022년 2.1t, 지난해 약 3t까지 늘었다. 올해는 4월 한 달에만 1.6t이 들어왔다. 현 추세대로면 올해 수입량이 연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로 성게를 수출하는 국가는 캐나다, 중국, 일본, 태국 정도다. 우리 성게를 수출해온 일본은 반대로 우리나라에 성게를 수출하는 국가가 됐다.
성게알이 더 귀해진 이유는 어획량이 줄어든 영향도 크다. 주요 원인으로는 바다 생물이 살 수 없는 ‘바다 사막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이는 연안 암반 지역에 산호말 같은 석회조류가 무성해져 해조류가 사라지고 황폐해지는 현상이다. 해조류는 성게는 물론 전복, 소라, 해삼의 먹이가 된다. 이같은 현상은 항생제 등의 사용으로 오염도가 높은 양식장 인근에서 더 두드러져 일부 지역에선 하루 성게 어획량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매년 높아지는 제주 앞바다 수온도 바다 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제주 대표 수산물인 갈치의 경우 올해 생산량이 급감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수협 위판물량 기준 갈치 생산량은 전년 같은 달보다 32.9% 줄어든 3209t이었다. 같은 기간 제주 산지 가격은 상(上)품 10㎏(33마리)당 1만6996원에서 1만9619원으로 15.4% 올랐다. 국립수산과학원 관계자는 “갈치는 따뜻한 물에 사는 어종인데 갈치가 주로 잡히는 서해와 제주 북부 일대 해역 수온이 평년보다 1~2.5도 오르면서 어군이 분산돼 자원 밀도가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갈치는 일 년 내내 잡히지만 6~7월이 최대 철이다. 제주 모슬포수협 위판장에서는 이 시기 이른 새벽부터 갈치 경매가 분주하게 이뤄진다. 이날 방문한 위판장에선 30~40척의 어선이 생물 갈치와 얼음이 가득 담긴 박스 10~30개를 내려놓았고, 중매인들은 갈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한 뒤 분주하게 가격을 적어냈다. 모슬포수협 관계자는 “갈치 어획량이 줄어든 데다 비싼 값을 받는 큰 크기의 갈치가 찾아보기 어려워지면서 지난달 어판장 매출이 1년 새 20% 넘게 줄었다”며 “선주들도 기름값·인건비를 빼면 남는 것이 없어 조업에 나서길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은 이처럼 품귀현상을 빚는 제주 수산물 확보에 발 빠르게 나섰다. 다가오는 추석에 맞춰 소비자 신뢰도가 높은 제주 수산물로 선물용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갈치·옥돔 같은 스테디셀러와 함께 올 추석엔 ‘제주도 해녀가 직접 딴 성게알·미역 선물’ 세트를 처음으로 선보이며 차별화를 시도한다. 특히 바닷물을 뺀 성게알 원물을 담아내는 데 공을 들였다. 제주 성게는 고소한 맛이 진한 데다 뜨거운 국물에도 잘 풀어지지 않아 미역국과 환상의 조합으로 꼽힌다.
이승훈 롯데백화점 씨푸드&HMR팀 바이어는 “프리미엄 식재료인 성게알은 희소성이 높아 고급스러움을 추구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번 추석 선물 세트에는 모슬포 해안가에서 해녀가 손질을 마치고 급랭한 성게알로 산지의 신선함을 그대로 담아냈다”고 말했다.
서귀포=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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