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팬덤]⑥팬덤에 몸살 앓는 정치인들
천하람 "전체 목소리 아니라는 것 명심해야"
편집자주 - 한국 정치에서 '팬덤'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팬덤이 정치를 지배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이어 이재명 전 대표까지 팬덤이란 정치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동훈 신임 국민의힘 대표 역시 팬덤을 중심으로 당권까지 잡았다. 다만 팬덤은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서 정치 양극화를 초래하고 갈등을 확대 생산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팬덤 정치의 실태와 이유를 진단·분석하고 변화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①"한동훈은 도구" "이재명은 적격" ②온·오프 넘어 유튜브, 언론까지 활동 확산 ③책 사서 변호사비 모으고 SNS 릴레이 후원 ④숫자 많은 '재명이네 마을' VS 조회수 높은 '위드후니' ⑤ '팬덤 공포' 걱정하는 지지자들 ⑥팬덤에 몸살 앓는 정치인들
"전화 문자 그만 좀…."
누군가 질린 말투로 개인 SNS에 남긴 글이다. 글의 주인은 다름 아닌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그는 지난달 대표직을 사퇴한 뒤 개인 페이스북에 "시도 때도 없는 문자, 전화는 응원 격려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지지하는 내용이 담긴 연락도 '고통'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과잉된 팬덤은 지지하는 정치인에 반하는 목소리를 낸 사람을 '캔슬(취소·배제)'한다. 타깃이 되면 불특정 다수로부터 비난을 듣게 된다. 휴대폰이 먹통이 되거나 보좌진이 혹사당하기도 한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더는 반대 의사를 내비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직 내려놓은 곽상언…팬덤 성화 못 이겨
민주당 당론에 이견을 낸 곽상언 의원은 팬덤 등쌀에 원내부대표직을 사퇴했다. 곽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사 4명 탄핵소추안 조사를 위해 법제사법위원회로 회부하는 표결 때 박상용 검사에 대해 '기권'표를 던졌다. 박 검사는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을 수사한 검사다. 민주당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검사 4명 탄핵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곽 의원은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제안 설명만 듣고 탄핵 찬반을 판단하기에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해 기권했다”고 설명했지만, 민주당 강성 지지자를 중심으로 원내부대표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지난 10일 곽 의원의 종로구 지역사무소 앞에서는 규탄 집회도 열렸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튜버를 중심으로 강성 당원 열댓 명이 모였다. 현수막을 설치하고 '곽상언은 각성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흔들었다. 이들은 네 시간 넘게 집회를 이어갔다. 곽 의원은 10일 오후 자진해서 사퇴했다.
곽 의원 보좌진은 지난 14일 "의원님이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만 말씀을 해주셔서 그렇게 알고만 있다"고 말했다. 곽 의원 사퇴를 수용한 민주당 원내 대표단 사이에서도 "그 정도로 반응할 일인지는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의원은 "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했고, 다른 한 의원은 '당론 위반 여부'를 묻는 말에 "솔직히 저희도 잘 모르겠다"며 "지난 21대에 (당원들의) 아픔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자·팩스 '테러'…죽을 사(死) 쏟아진 조정훈 의원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조두알'이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조 의원에게 이 별명을 붙여준 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팬덤이다. 조 의원은 총선이 끝난 뒤 한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의 오찬을 거절하자 "타이레놀 두 알 먹고서라도 만났어야"라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한 대표 팬들의 전화 공세가 폭발했다.
'타이레놀 두 알'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한 대표의 팬덤은 22대 총선 이후 조 의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조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한 후보가 총선에서 고생을 많이 했고 건강이 좀 상한 것 같다며 푹 쉬다가 회복하고 나왔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조 의원 보좌진은 "당시 사무실이 마비됐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한 대표의 팬덤뿐만 아니라 이 전 대표의 팬덤인 '개혁의 딸(개딸)'로부터 공격받은 적도 있다. 조 의원 보좌진은 지난해 2월 개딸들로부터 받은 공격이 가장 수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마치 20만명 정도가 조 의원 핸드폰과 의원실 전화로 연락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시대전환 소속이던 조 의원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좌진은 "그때 사무실에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죽을 사(死)자가 적힌 종이가 팩스로 계속 들어왔다"고 전했다.
보좌진은 "조 의원은 업무용 핸드폰과 개인용 핸드폰 등 두 개를 갖고 있는데, 두 개 모두 전화기와 배터리가 40~50분도 못 버텼다"고 밝혔다. 같은 내용의 문자가 각기 다른 번호로 하루에 800개에서 900개 정도 왔다고도 했다. 조 의원을 향한 개딸의 공격은 조 의원이 이 대표 관련 대장동 특검을 주장할 때와 국민의힘에 합류할 때도 반복됐다.
"팬덤 아닌 적극적 표현자" 해석과 "의연한 대응" 조언도소신을 굽히지 않겠다고 밝힌 의원도 있었다. 김성환 민주당 의원은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를 뽑을 때 '추미애 vs 우원식' 구도 속에서 '우원식을 뽑았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당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등에서 꾸준히 추미애 의원이 1위를 달린 만큼, '감히' 당원의 요구를 꺾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실제 김 의원이 소신을 밝힌 페이스북 댓글에는 "친목질"이라는 비판 댓글도 다수 달렸다.
김 의원은 "전화가 많이 오기는 했지만, 격려 전화도 많았다"며 "어느 정당이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당원과 국회의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좋은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당원 의견이 한쪽으로 몰렸을 때 (의원이) 중재하는 것이 필요하냐'는 질문에 "그렇다. 피할 일이 아니고 숨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제3당의 입장에서 "거대 양당 모두 과잉 강성 팬덤들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런 분들은 대부분 정치 고관여층"이라며 "온건하고 합리적인 정치를 추구하는 분들은 목소리를 많이 안 낸다"고 했다. 그는 "이재명 전 대표 팬덤은 다른 당인 저한테까지 '수박'이라고 한다. 너무 민감하다"면서도 "예전에 국민의힘 대표로 출마했을 때도 국민의힘 지지자로부터 욕 문자를 4만 개는 받았다"고 했다.
천 원내대표는 "어쨌든 '조용한 다수'인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팬덤이 있는 정치인들은 팬덤이 안 좋은 방향으로 작동하거나 다른 정치인을 공격하는 형태로 변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먼저 소통해야 한다"고 했다. 또 "팬덤이 딱히 없는 정치인들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모든 국민의 의사가 아니라는 것을 늘 명심하면서 의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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