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고 불타는 지옥서 살았다" 전쟁 중 올림픽 택한 선수들의 사연[파리올림픽]

정현진 2024. 7.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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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 2년5개월째…국제 관심 줄어
폭격에 훈련장 붕괴-대피경보 이어져도
무시하며 훈련에 집중…가족 잃어 좌절했으나
"오늘을 위해 살아라" 슬픔 안고 올림픽 도전

"우리의 승리는 우크라이나에 큰 관심을 끌어다 줄 겁니다."

우크라이나 여자 허들 국가대표 선수인 안나 리지코바는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400m 계주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00m 허들 종목 5위를 기록한 베테랑 국가대표 선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스포츠센터에서 훈련해온 그는 "승리해서 시상대에 올라설 때만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더 높은 곳에 있을수록 더 큰 관심을 받는다"며 2024 파리올림픽 메달 확보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6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야로슬라바 마후치크가 여자 높이뛰기 결승전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메달을 꼭 목에 걸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2022년 2월 전쟁 발발 이후 2년 5개월째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시 상황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올림픽이라는 국제무대에서 우크라이나가 아직 전쟁의 고통 속에 머물러 있다는 현실을 알리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AP통신과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전쟁 시작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500개 이상의 스포츠 시설이 파괴됐다. 큰 공간이 필요한 수영장이 대표적이다. 2022년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2대 도시인 하르키우의 로코모티브 스포츠 센터가 무너져 2020 도쿄 올림픽 아티스틱 스위밍 종목 동메달을 따낸 선수들의 훈련 장소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항구 도시로 러시아에 점령된 마리우폴의 수영장도 포격으로 인해 이미 형체가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중남부 도시 드니프로의 메테어 수영장에서는 선수들의 훈련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여러 차례 공습이 이어지면서 유리창에 금이 가고 곳곳이 무너졌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하루에 5~10번 대피 경보가 울린다. 선수들은 경보가 갑작스럽게 울리는 상황에 적응해야 했다. 훈련하느라 물속에 있을 때도 물에서 외부 폭격의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 19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올림픽 하우스에서 우크라이나 우체국이 발행한 올림픽 우표 발행 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수영장이 폭격을 맞았을 당시에도 모두가 대피했다가 다음 날 돌아와 하루종일 청소했다. 인근 공장은 전소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다행히 수영장은 일부 사용이 가능해 그대로 이용했다. 우크라이나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 올렉산드르 젤티야코프는 "올림픽에 진출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여정의 시작일 뿐"이라면서 "(올림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최고의 방법으로 조국을 대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시 상황은 올림픽을 앞두고 훈련에 집중해야 할 선수들에게 타격이 된다.

우크라이나 높이뛰기 남자 국가대표 선수인 올레흐 도로슈크는 고향인 크로피브니츠키에서 경보를 무시하면서 훈련하는 방법을 익혀야 했다고 AP에 밝혔다. 가끔 폭격이 발생하면 방공호로 대피했다가 돌아와 훈련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는 러시아의 폭격이 떨어지고 다른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며 생사를 오가는 상황에서 훈련하는 자신의 행동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지난 6월 우크라이나 카르키프의 한 스포츠 센터가 러시아의 폭격으로 무너진 모습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높이뛰기 여자 국가대표 선수인 카테리나 타바쉬닉도 폭격이 발생할 때마다 고향 하르키우에 있는 가족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러시아의 폭격으로 어머니를 잃은 그였다. 그는 "지난 2년간 모든 것이 불타는 지옥 같았다. 때로는 고통이 온몸을 삼켜 마비시키는 듯했다"면서도 다시 일어나 올림픽에 출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그의 쇄골 아래에는 '오늘을 위해 살아라'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메달을 따기 위한 노력은 남다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실제 올림픽 메달권 진입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AP는 전했다. 2012 런던 올림픽까지만 해도 메달 수 순위에서 우크라이나는 상위 13개국 내에 들었으나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열린 올림픽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딴 메달 수는 11개로 독립 국가로는 가장 적었고 국가 순위도 22위로 내려앉았다. 2020 도쿄 올림픽 당시에는 16위로 올라섰으나 메달 19개 중 금메달은 1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러시아와 동맹국인 벨라루스 선수들을 마주칠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IOC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대한 징계를 내리면서 국가대표 출전을 막았으나 '개인중립자격선수'(AIN) 자격으로 출전이 가능해 현장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러시아 출신 선수들은 국기와 국가 등 상징을 사용할 수 없고 개회식에도 참가하지 못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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