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인문고-수능-대입’ 꼭 해야 하나 고민했던 중3…9년차 스타트업 직장인 돼 창업 꿈꾸죠

김현정 2024. 7.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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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열여섯 살 채원이는 상위 10% 성적에 리더십도 뛰어난 중3이었어요. 친구들 대부분은 인문계고에 가서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가는 진로를 당연한 듯 받아들였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죠. “그때 가장 큰 고민이 수능이었어요. 정확하게는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하는데 한 번의 수능 시험으로 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 무척 두려웠죠. 머릿속으로 여러 번 다른 선택지들을 시뮬레이션해봤어요.” 고민 끝에 ‘내 인생의 목표는 대학이 아니다. 그러니 꼭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에서 공부하자’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전채원씨가 고2 때 친구·후배들과 함께 공모전을 준비하며 발표 연습을 했던 모습.

고교 졸업 후 스타트업 9년차 직장인이 된 전채원 야놀자 사업전략실 매니저 이야기입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좋은 IT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갖고 2014년 개발(프로그래밍)을 배울 수 있는 미림*마이스터고에 진학했죠.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었나 싶을 정도로 프로그래밍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어요.
“마이스터고가 특성화고에 비해 입학 성적이 높은 편이었어요.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하진 않았기에 제가 개발도 잘할 줄 알았죠. 막상 프로그래밍 언어를 접하고 보니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어요. 똑같은 시간을 공부했을 때 옆 친구보다 제가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받았죠. ‘어, 내가 일반 교과목은 더 잘하는데 왜 프로그래밍은 못 하지? 나는 개발 부진아인가’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미림마이스터고에서는 개발과 디자인, 두 가지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접하는 개발 언어는 자바(Java)·파이썬(Python)·C프로그램(C Program) 등 다양하고 수업도 매우 촘촘하게 진행됐어요. 학교의 목표가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이다 보니 직장에서 바로 1인분의 몫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스킬을 고교에서 갖춰야 하기 때문이죠.
개발에 적성이 맞지 않았던 채원씨는 갈수록 고민이 커졌습니다. 기획자나 마케터 직무 같은 다양한 진로를 고민하면서도 ‘그래,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정말 아니다 싶을 땐 다른 일에 도전해 보자' 생각하며 꾸역꾸역 개발 공부를 계속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지레 겁먹었던 것 같아요. 회사에 와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나니까 ‘내가 그때 왜 개발 공부를 더 열심히 안 했지? 지금 일하는 것 정도로만 했어도 개발을 더 잘했을 텐데’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됐어요.”

2014년 개발의 늪에 빠졌던 고1 채원씨는 앙트십스쿨을 만나며 희망을 되찾았다. 사진은 아이스브레이킹 시간.

개발의 늪에서 빠져나와 희망을 찾게 된 건 1학년 때 기업가정신 교육 *앙트십스쿨을 접하면서였죠. 앙트십스쿨을 만난 채원씨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어요. 돈 버는 일을 미리 고민해 보며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는 수업서 각종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중점적으로 했죠.
‘문제 해결’. 그동안 채원씨가 해왔던 수많은 고민이 이 한마디에 다 들어가 있었어요. 대학 진학이 목표인 인문계고가 아닌 마이스터고를 선택할 때 채원씨 나름의 문제의식, 즉 '수능 한 번으로 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문제를 해결했어요. 또 개발은 나와 맞지 않는다며 개발 공부에 자신을 던져 넣지 못했던 것 역시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개발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란 걸 알았죠. 이유가 뚜렷했다면 개발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수학을 배울 때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고 답을 맞히면 성적을 잘 받는다고 생각하잖아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학 공식인지 그런 근본적인 맥락을 알고 문제를 풀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프로그래밍도 똑같았어요. 그냥 주어진 교재대로 암기하고 코드를 짜는 일, 이걸 왜 하는지 무엇 때문에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 3학년이 된 채원씨는 기업가정신을 후배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1·2학년 30~40명을 직접 모아 앙트십스쿨 멘토로 활동했습니다. 자연스레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 기업가정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죠. 앞서 3학년이 되기 직전인 2016년 2월에 앙트십교육을 진행했던 오이씨 장영화 대표의 새 프로젝트 *조인스타트업 2기에도 지원했어요. 조인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좋은 인력을 채용하기 힘든 스타트업에 가능성 있는 인턴을 매칭해주는 서비스죠.

2023년 6월 재택근무가 가능한 어느 날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원격으로 일하는 전채원씨.

“개발·기획·마케팅 중 기획을 해보겠다며 지원했지만 부적합 판단을 받았어요. 제 사회생활 첫 실패의 경험이죠. 이유는 명백히 제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스타트업은 가뜩이나 인원이 적고 한 사람이 1인분 이상, 2인분을 해내야 하는 조직인데 실력도 못 갖춘 고등학생이 열정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며칠 동안 좌절의 시간을 보냈지만, 자신과 맞는 직무가 뭔지 생각해보면서 우선 개발 공부를 꾸준히 했습니다. 기획을 너무 쉽게 봤다는 생각을 하며 오히려 개발자로 취업하는 게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3개월 후 다시 기회가 왔어요. 장 대표가 ‘나우버스킹’이라는 스타트업을 소개해줘 면접을 봤죠. 나우버스킹은 네이버 출신 전상열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공동 창업한 업체입니다. 식당 대기 서비스 ‘나우웨이팅’ 운영으로 잘 알려졌으나, 주력 사업은 나우웨이팅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상공인의 디지털 경영화를 돕는 거죠.
“처음 전상열 대표님과 면접을 보고 나서 저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어요.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대표님께 e메일을 보냈어요. 다음에 뵙기 전까지 공부를 해가고 싶은데 마케팅 직무에 대해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두 권의 책을 알려주셨죠. 간절함이라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 만에 『마케팅 불변의 법칙』 『기획이란 무엇인가』 두 권 다 읽고 간략하게 제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e메일을 보냈어요. 그 모습이 나쁘지 않았는지 한 번 더 면접을 볼 수 있었어요.”

채원씨는 평소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트렌드를 살핀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오프라인 팝업스토어에서 찍은 기념사진.

다른 공동창업자들과 두 번째 면접을 본 그는 2016년 7월부터 나우버스킹에서 마케팅팀 인턴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표는 채원씨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채용을 결심했던 거였죠. 한 달 정도 일한 뒤 사업개발팀으로 옮기게 되면서 직무가 바뀌었습니다. 사업개발팀에는 직원이 리더와 채원씨 둘밖에 없었죠. 영업도 하고 제안서도 쓰고 CS(Customer Service·고객응대서비스) 전화도 받으면서 채원씨는 ‘사업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가는구나’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업개발팀에서 일하면서 저는 주로 고객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어요. ‘내가 회사에 기여하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에서도 저를 좋게 바라보셨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회사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주력멤버처럼 느껴져 신나게 일했던 것 같아요.”
6개월의 인턴을 마치고 2017년 1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그는 2021년 11월까지 5년간 일하며 스타트업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뼈아픈 정리해고의 경험이었죠.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비스 사용자가 급락했고 회사는 후속 투자 유치가 어려워졌죠. 직원 절반이 정리해고 대상이 됐고, 동료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사업을 잘못하면 다 망하는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뒤엔 휴가를 통해 재충전을 한다. 지난겨울엔 이탈리아 로마 여행을 다녀왔다.

첫 직장 나우버스킹에서 채원씨는 두 가지를 배웠어요. 첫 번째는 창업이 무척 재밌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창업을 쉽게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자신이 기여한 서비스가 세상에서 바로 쓰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창업은 어렵지만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라면,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망할 수 있는 것 또한 창업이라는 것을 몸으로 배웠죠.
나우버스킹은 2020년 11월 *야놀자에 인수돼 자회사로 편입됐습니다. 퇴사를 고민하던 채원씨는 야놀자 채용공고를 보고 도전을 결심, 세 번의 면접을 통과해 2021년 12월부터 야놀자 비즈니스 스트레티지(Business Strategy)실에서 숙박사업(모텔 카테고리)을 담당하고 있죠. “모텔 카테고리가 회사 매출 중 큰 부분을 차지하다 보니 제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영향력이 매우 크겠구나 생각했어요.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쉽게 말하면 돈을 버는 일이죠. 광고 매출과 관련된 전략이나 프로모션을 짜는 일, 전사 전략과제에 대한 프로젝트 매니징 같은 일을 합니다.”
남보다 이른 나이에 일을 시작한 채원씨에겐 늘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직원 수가 약 1000명에 달하는 큰 조직인 야놀자에서는 보다 체계적인 조직문화를 접할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근속연수 5년차로 입사했지만 나이로는 여전히 ‘막내’였기에 채원씨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어요. ‘미래의 창업가’ 채원씨의 업무 스타일이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해준 곳이 첫 직장 나우버스킹이라면, 스타트업씬(Startup scene)에서 제대로 된 업무 스킬을 향상시켜준 곳은 지금의 회사인 셈입니다.

야놀자 패밀리데이인 ‘Y-community Family Festival’(YFF)를 맞아 뮤지컬과 콘서트 등을 즐겼다.

공부는 평생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채원씨는 더 늦기 전에 대학을 가야겠다 싶어 2023년 3월 건국대 신산업융합학과에 입학했어요.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학생이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 입학이 가능한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했죠. 평일은 화·목요일 저녁, 토요일은 온종일 수업을 듣고 한 학기에 20학점을 따야 합니다. 신산업융합학과에서는 프로그래밍·통계·기업가정신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그 변화에 따라가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없는 27세의 채원씨는 회사에 다니면서 창업을 꿈꿔요. 특히 AI기술을 활용해 인류의 다음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죠.
“페이스북(현 메타) COO였던 셰릴 샌드버그가 쓴 책 『Lean in』 속 문구 중에 ‘Done is better than perfect’라는 말을 좋아해요. ‘끝내는 것이 완벽한 것보다 낫다’라는 뜻인데 지금도 제가 이걸 잘 못 해요. 스스로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고교 때도 고민하면서 끝내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붙들고 있는 습관이 있었어요.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저 자신을 채찍질해요. 요즘은 ‘망해도 되니 빨리하자, 빠르게 실패하자’ 그런 생각으로 일합니다.”
이어서 그는 고입·대입 등 진로를 놓고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할 어린이·청소년 소년중앙 독자에게 전했죠.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텅 빈 자기소개서의 첫 문장을 쓸 때처럼요. 그렇지만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늘 열린 마음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지 않을까, 저는 믿고 있습니다. 머리 싸매고 고민할 시간에 뭐든 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 *마이스터고등학교: 기존의 실업계 고등학교를 발전시켜 일과 학습을 병행해 해당 분야의 기술장인을 육성하려는 목적을 가진 고등학교. 소프트웨어·바이오·반도체·자동차·전자·기계·로봇·통신·조선·항공·에너지·철강·해양 등 다양한 분야의 마이스터고가 전국 각지에 있다.

*앙트십스쿨: 변호사 출신의 창업가 장영화 오이씨 대표가 만든 맞춤형 교육 서비스. 청소년·청년·성인 및 기업을 대상으로 문제해결 역량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내용으로 넥슨·카카오·네이버 등과 협업했으며 공공기관과 교육 현장에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조인스타트업 : 오이씨에서 앙트십스쿨에 이어 내놓은 스타트업과 스타트업형 인재들을 연결해주는 인재매칭 서비스. 열정 레벨이 높은 청년들의 잠자는 스타트업 DNA를 깨워주고 키워주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도록 도와준다.

*야놀자: 초기엔 모텔 예약 플랫폼이었지만 2024년 현재 숙박·여행상품·교통티켓·렌터카 등 여행 및 여가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종합 플랫폼으로 기업가치 1조원이 넘는 유니콘기업이다.

글=김은혜 객원기자 sojoong@joongang.co.kr, 사진=전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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