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내내 '빵싸움'만 했다…"빵문회" 욕 먹은 이진숙 청문회 [현장에서]
토요일이던 27일 대전 MBC사장 관사 인근의 한 제과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가게로 몰려와 남아 있는 빵을 쓸어 담았다. 결제 금액은 24만원. 이들이 돌연 제과점에 들이닥친 것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의 사장 재직 시절 빵 구매 의혹, 즉 법인카드 결제 의혹을 검증하기 위해서였다. 이 후보자는 근무 마지막 날 이 제과점에서 53만원 어치의 빵을 사 직원들에게 선물했다고 밝혔는데, 야당은 사실이 아니라며 법카 유용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루 뒤인 28일, 이들은 국회에서 ‘현장 검증 결과’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원들은 “이 후보자가 혼자서 들고 가져갈 수 있다던 빵을 직접 구매했다”며 “(53만원이 아닌) 24만 어치조차 최소 3명이 붙어야 들 수 있었던 양”이라고 강조했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전 MBC 인근 빵집이 아니라, 20분 거리인 관사 근처 빵집까지 간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열을 냈다.
방통위는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고 미디어 산업 발전을 견인하며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행정기구다. 이런 기구의 수장을 맡을 후보자의 자질을 가늠하는 청문회가 ‘빵 논란’에 뒤덮여 버린 것이다. 야당 과방위원들은 24~26일 사흘간 열린 이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온종일 빵 구입 의혹을 제기했다. 여당에서는 “청문회를 사흘이나 해놓고선 대전까지 찾아가는 기행, 집요함에 기가 찬다”(최수진 수석대변인)는 반응이 나왔다.
방통위원장 후보자 청문회가 ‘빵문회’가 된 것은 야당의 의혹 제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대전 MBC에 사표를 낸 2018년 1월 8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단골 빵집에서 법인카드로 44만원을 결제했다. 2시간 30분 뒤에는 대전MBC 관사 인근 빵집에서 53만원을 결제했다. 야당에선 이를 놓고 청문회 첫날(24일)부터 “직원에게 빵을 돌린 게 아니라 본인이 이용할 목적으로 마지막 날 선결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청문회에서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 낮은 공방도 벌어졌다. 청문회 둘째 날인 25일 노종면 의원은 빵집 직원과의 통화 녹취를 틀었다. “50만원 어치 빵을 혼자 들고 갈 수 있나”는 노 의원실 질문에 직원은 “단팥빵 280개 정도로 혼자 들고 갈 수 없는 양”이라고 답했다. 청문회장 곳곳에선 웃음이 터졌고 이 후보자는 “사건을 희화화한다”고 항의했다. 노 의원은 “당신 같은 사람을 검증하는 게 답답하다”고 고성을 질렀다.
청문회 마지막 날인 26일에는 아예 ‘빵집 포인트’ 공방까지 벌어졌다. 수행 비서 등의 빵집 포인트 적립 내역 관련 법인 카드 사용 명세서를 제출하겠다고 약속했던 이 후보자가 “개인정보 보호 차원”을 이유로 번복하면서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궤변을 늘어놓아도 정도껏 하라”고 공격했고, 이 과정에서 이 후보자가 웃음을 보이자 “어머 지금 웃음이 나와?”(최민희), “성격 진짜 이상하다”(노종면) 등 일차원적인 조롱이 이어졌다.
공방의 초점이 역량 검증이란 본질에서 한없이 멀어지자 과방위원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빵집 포인트 문제에서 무엇을 검증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국민이 이해 못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사적으로 1만원도 쓴 적 없다”면서도 법인 카드 내역 제출을 거부하는 이 후보자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권에선 “청문회가 빵으로 시작해 빵으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의원은 “사실 우리도 이 후보자가 얼마나 적임자인지 궁금하고 의문도 있었는데, 계속되는 ‘빵 공격’만 방어하다가 끝났다”고 푸념했다. 이 후보자는 다음달 2일 과방위 현안질의에도 증인으로 소환되지만, 민주당은 여전히 “(법인카드 의혹 관련) 거짓말에 대한 위증죄를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민주당이 주도한 ‘빵문회’ 배경이 ‘친야 성향 MBC 사수’라는 것은 정치권에서 정설로 통한다. MBC 경영진 임명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위원회가 친여권 인사로 재편되는 것을 막기 위한 카드라는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이상인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 탄핵 카드로 방통위를 ‘빵통위’(방통위원 0명)로 만들었고, 아직 임명도 안 된 이진숙 후보자 탄핵도 이미 거론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후보자의 정치적 편파성을 맹공격하지만, 자질 검증과는 거리가 먼 ‘빵문회’를 통해 자신들의 편파성을 입증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빤 6년 만에 고독사했다, 엄마 이혼시킨 두 딸의 고백 | 중앙일보
- 오상욱 "이건 어따 쓰죠?"…금메달과 받은 '의문의 상자' 정체 | 중앙일보
- "그래도 호상이라는데…" 오은영은 차에서 1시간 오열했다 | 중앙일보
- "가장 지저분한 비밀"…올림픽 수영 선수들이 소변보는 법 | 중앙일보
- 노상방뇨 막겠다고 길거리 다닥다닥…파리 남자 화장실에 "충격" | 중앙일보
- "거의 벌거벗었다" 고백…'스타워즈' 공주 의상 낙찰가 '깜짝' | 중앙일보
- 이번엔 농구장서 남수단 국가 잘못 틀어…“무례하다고 느꼈다” | 중앙일보
- '우상혁 라이벌' 황당 실수…국기 흔들다 센강에 결혼반지 '퐁당' | 중앙일보
- "왜 자꾸 한국한테만…" 올림픽 공식 SNS에 태극기만 '흐릿' | 중앙일보
- 美 선수 '헉'…中다이빙 대표팀 '공주님 안기' 세리머니 화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