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개혁, 땜질 처방 중단하고 근본 개혁 집중해야

2024. 7. 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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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1만 명 이탈 장기화…현실적 대비책 마련을


내년 의사 국가시험(국시) 대상자 중 실기시험에 원서를 접수시킨 인원은 11% 남짓이다. 의대 재학생 중에선 5% 정도만 원서를 냈다. 매년 3000명가량이던 신규 의사가 내년엔 300명대로 급감할 위기다. 전공의가 1만 명 넘게 의료 현장을 이탈한 데 이어 신규 의사까지 줄어드는 상황이 다가온다. 의사 수가 부족해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오히려 의사 인력이 순식간에 대거 증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전공의의 빈자리를 채워 온 전문의들마저 심신의 한계를 호소해 응급의료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계획을 발표한 이후 반발하는 전공의에게 행정처분 철회를 포함한 다양한 구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런데도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았고, 의대생마저 국시를 외면하는 지경이다. 정부는 이제 의료 현장에 상당 기간 대규모 의사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가장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외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붕괴 조짐이 심상치 않다.

무엇보다 응급·중증 환자 진료가 무너지면 안 된다. PA(진료 보조) 간호사가 전공의의 공백을 일정 부분 메우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법제화해야 한다. 파격적 특례에도 불구하고 9월 전공의 모집을 통해 현장에 돌아올 의사는 거의 없으리란 예상이다. 많은 전공의가 입대를 준비하는 등 공백 장기화가 가시화한다.

작금의 사태는 정부의 안이한 판단이 자초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에서 “4개월 넘도록 의료 공백이 지속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내놓은 땜질식 처방으론 사태 해결이 어렵다. 대화해야 할 의료계는 전공의 대표가 대한의사협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자중지란이다. 난국에서도 대안을 마련해 결자해지하는 게 정부의 책무다. 의료개혁특위를 통해 내달 발표할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방안에선 발등의 불을 끄면서도 장기적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 방안을 담아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계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으면 탁상공론이 될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의대 파행 계속되면 교육 질 추락도 못 막는다


교육부는 지난 10일의 의대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에서 낙제(F) 대신 미완(I) 학점을 도입하기로 했었다. F학점을 받아 유급이 불가피한 의대생도 상위 학년으로 진급시키겠다는 의미다. 또 1학기 성적 처리 기한을 학년 말까지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한 과목만 F학점을 맞아도 1년을 유급하는 의대생에게 파격적인 구제책이지만, 이들이 학교로 돌아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지난 2월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휴학계를 제출한 의대생 대부분은 정부 발표 이후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 휴학은 개인의 권리라고 주장하는 의대생들과 집단휴학은 불허한다는 정부가 5개월째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의학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이대로 가면 내년 의대 예과 1학년 교실에선 8500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한다. 올해 유급하는 3500명과 내년 입학 예정인 5000명을 더한 규모다. 이런 ‘콩나물 교실’에선 정상적인 교육이 불가능하다. 정부의 현실적 고민도 있겠으나 부실한 교육을 받은 의대생의 상위 학년 진급을 정당화할 순 없다.

의학 교육의 평가·인증 기관인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독립·자율성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학교육연맹(WFME)의 인증을 받은 의평원은 양질의 의학 교육을 위한 ‘최후의 보루’다. 최근 정부가 의평원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나선 건 국제적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먹는 일이다. 의평원 기준을 낮춰 의학 교육을 하향 평준화할 게 아니라 충분한 교육 시설과 우수한 교수진을 우선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의대 교육의 최저 한계선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2026년 정원 문제를 포함해 꼬일 대로 꼬인 난제를 풀어가길 바란다.


대학병원과 의원이 경쟁하는 구조를 뜯어고치길


의사들의 거센 반발을 감수하며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한 목적은 왜곡된 의료체계를 뜯어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대학병원은 숙련된 전문의들이 중증·응급·희귀 질환에 집중하고, 일반 환자들은 지역과 동네 의원에서도 충분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목표에 충실히 접근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의 대책들은 반발하는 의사들을 달래거나,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증요법이 많았다. 예컨대 분만·소아 수가 신설, 응급·야간 가산율 확대, 일부 수술 수가 인상 등이다. 필요한 대책이지만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해당 분야만 찔끔 손봐서는 근본적 해결이 요원하다. 대학병원이 경증 환자를 놓고 동네 의원과 경쟁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의 난이도와 인적·물적 자원의 투입 정도에 따라 걸맞은 보상이 이뤄지도록 행위별 수가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또 중등도 이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중형 병원과 공공 의료체계에 대한 투자가 절실하다. 지방은 사실상 이 분야가 공백 상태다. 이런 공백을 채우지 않고 지역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계획은 공염불이다. 비급여 진료로 필수 분야 인력을 빨아들이는 실손보험도 이참에 꼭 손봐야 한다. 특히 금융위와 복지부가 서로 미루지 말고 함께 의료 쇼핑과 과잉 진료 유발 요인을 차단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무리한 의대 증원이 건보 재정을 축낼 것이란 의사들의 비판을 일축해 왔다. 건강보험에 쌓인 10조원 정도의 적립금으로 충분하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단발성 정책이 잇따르며 과연 기존 재원으로 충당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커졌다. 근본적 제도 개혁에 예상보다 돈이 더 든다면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한 뒤 고통 분담을 솔직하게 호소해야 한다. 돈에 정책을 맞추는 땜질식 처방으론 그간 겪은 혼란과 고통을 헛된 것으로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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