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겸손은 힘들다
칭찬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안세영이 했던 말 곱씹어보길
겸손하기란 참 힘들다. 조금만 잘나가도 사람은 우쭐대기 마련이다. 부와 명성을 쌓고 ‘팬덤’이란 인기까지 얻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수 있다. 체육계를 취재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포츠 스타들을 접하게 된다. 대부분 예의 바르고,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려 한다. 대중의 관심이 크니 매사에 경계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갑자기 주목을 받은 일부 선수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인기·비인기 종목 할 것 없이 세계적인 무대에 진출하거나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따면 주변에서부터 하도 흔들어대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유명해졌을 뿐 아니라 모두 자신을 치켜세우는 ‘칭찬 지옥’ 속에서 냉철함을 유지할 이가 얼마나 되겠나.
요즘 선수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크다. 언론 인터뷰나 SNS를 통해 외부에 노출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특히 SNS가 활성화하면서 인기를 실시간 체감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엔 팬레터가 인기의 척도였다면 지금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다이렉트메시지(DM)와 ‘좋아요’, 댓글이 인기를 가늠케 하는 요소다. SNS 팔로어 수가 곧 영향력이 되고, 인기와 돈이 일치한다는 걸 잘 아는 스포츠 스타에게 겸손을 기대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오랫동안 힘겹게 훈련하면서 빛 볼 날만 기다려온 선수가 막상 그 빛이 찾아왔을 때 이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실력으로 성과를 냈으니 충분히 즐길 자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또한 그들에겐 필요하다.
오죽하면 배드민턴 여자단식 세계 랭킹 1위 안세영 선수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우승 뒤 SNS에 이런 글을 올렸겠는가. “아시안게임 이후 정말 많은 분의 응원과 격려로 또 다른 세상을 경험 중입니다. 정말 많은 방송 출연, 인터뷰, 광고 등이 들어왔습니다.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 아는 안세영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저 평범한 운동선수 안세영입니다. 메달 하나로 특별한 연예인이 된 것도 아니고 오늘 하루 잘 이겨나가며 묵묵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선수들과 같은 선수 안세영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으니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려고 합니다.” 안세영은 2024 파리올림픽을 낭만 있게 끝내겠다며 금메달 자신감을 에둘러 드러냈다. 그가 우승한 뒤 조금 달라지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이런 마음가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역만리 떨어진 프랑스 파리에서 하계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무명이던 많은 선수가 놀라운 활약을 통해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릴 것이다. 전통의 인기 종목인 축구 배구 등 단체 구기 종목이 죄다 본선 진출에 실패해 상대적으로 비인기 종목이 더 주목받을 수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일도 잦을 것이다. 메달 획득에 따라, 또 감동적인 경기 내용에 따라, 혹은 돋보이는 외모로 인해 새로운 스타가 나올 테고 대중의 이목을 끌 것이다.
이 예비 스타들에게 최근 만난 어느 ‘레전드급’ 선수의 말이 좋은 본보기가 될 듯해 소개하려 한다. “인기의 맛을 본 선수는 그 인기를 놓치기 싫어한다. 요즘 선수들은 특히 그렇다. 인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을 뿐 아니라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인기와 돈에 취한 선수들이 연습은 게을리할 때가 많다. 한번 유명해진 뒤론 힘들게 훈련하는 걸 못 견뎌 하는데, 그래도 인기는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는 모순이다. 유명한 선수일수록 힘든 훈련을 견디고 꾸준히 성과를 내야 한다. 한번 인기를 얻었다고 만족하면 그 인기는 오래 가지 못한다.”
파리에서 탄생할 샛별들이 잘 새겨들으면 좋겠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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