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노(老)정치인은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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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쌍한 X자식(That poor son of a b---h)." 80대라는 세월의 무게 탓에 결국 대선 후보직을 내려놓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혈기 넘치던 의원 시절이 있었다.
1994년 상원 외교위원장 자리를 노리던 50대 초반의 바이든은 같은 민주당의 70대 후반 클레이본 펠이 파킨슨병 증상에도 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자 가볍게 욕설을 섞어 비판했다.
바이든은 누가 뭐래도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고, 경선에서 87%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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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불쌍한 X자식(That poor son of a b---h).” 80대라는 세월의 무게 탓에 결국 대선 후보직을 내려놓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혈기 넘치던 의원 시절이 있었다. 1994년 상원 외교위원장 자리를 노리던 50대 초반의 바이든은 같은 민주당의 70대 후반 클레이본 펠이 파킨슨병 증상에도 위원장직을 내려놓지 않으려 하자 가볍게 욕설을 섞어 비판했다. 공개 발언이 아니라 기자 한 명 앞에서 편하게 뱉은 농담이었지만, 30년 만에 비수가 돼 돌아왔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의 칼럼니스트 톰 갤빈은 이 일화를 공개하며 “이제는 바이든이 무대를 떠날 때”라고 압박했다. 그리고 이렇게 칼럼을 맺는다. “지금 바이든을 보면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저 불쌍한 X자식’.”
바이든은 도널드 트럼프와의 TV토론에서 참패한 뒤 미국 언론들로부터 수모에 가까운 사퇴 압박을 받았다. 폭스뉴스 같은 보수 언론이 아니라 뉴욕타임스 같은 진보 언론이 더 극성스럽게 후보 포기를 요구했다. 폴리티코 칼럼도 인신공격에 가까운 수많은 칼럼 중 하나였다. 결국 바이든은 물러났다. 대선 후보 자리는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에게 양보했다. 비정한 정치의 세계에서 미국 대선 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찬사가 아닌 모욕을 받는 상황에서 실천하는 양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양보가 당연한 건 아니었다. 양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바이든은 누가 뭐래도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고, 경선에서 87%라는 압도적 지지를 얻어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게다가 바이든은 그 자신의 말처럼 “트럼프를 이긴 유일한 사람”이다. 바이든은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이겼고, 2022년 중간선거에서도 트럼프를 앞세운 ‘레드 웨이브(공화당 바람)’를 막아냈다. 민주당에 트럼프를 압도하는 확실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이 흔들어 대든 언론이 욕을 하든 ‘버티기’에 들어갔다면 시간은 바이든 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결국 후보직을 내놨다. 미국 역사상 경선에서 승리한 뒤 후보 확정을 앞두고 사퇴한 대통령은 바이든이 처음이다. 이런 상황에 분개하지 않을 정치인은 없다.
바이든도 개인적으로는 분노했다. ‘브로맨스’(남성 간의 뜨거운 우정) 관계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의회에서 동고동락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바이든은 그런 감정을 정치의 세계로 끌고 오진 않았다. 바이든은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마지못한 양보라는 티를 내지 않았다. 곧바로 해리스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여러 대선 주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충성과 지분을 요구하는 ‘상왕’ 노릇을 하지 않았다. 바이든의 결단 덕에 해리스는 잡음 없이 대선 후보 자리를 승계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정치인이 자신보다 당을 앞세우는 ‘선당후사’는 낡은 말이 됐다. 양보는커녕 ‘배신’ 운운하며 치킨게임을 벌이는 정치가 매일 뉴스를 탄다. 용산과 여의도에서 ‘양보’는 멸종된 미덕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모욕과 압박 속에도 당을 위해 후보 자리를 내려놨다.트럼프를 막을 작은 기회라도 잡기 위해 자기 자리를 비워줬다. 50년 넘게 정치를 하며 마지막 순간 ‘정치인’이란 이름에 값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노병이 죽지 않듯이 노(老)정치인도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바이든은 “새로운 세대에 횃불을 넘기는 것이 전진을 위한 최선의 길”(대국민 연설)이란 말을 유산으로 남기며 서서히 사라지는 중이다.
임성수 국제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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