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생동하는 언어

2024. 7. 2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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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째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아주 단순한 표현만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지금 이 시기가 좋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언어를 대할 수 있다.

언어가 탄생하던 순간의 고유한 생명력을 아주 오랜 시간 후에도 새롭게 발명하는 것이 시인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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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오 시인


한 달째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아주 단순한 표현만 구사할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을 갖춘 지금 이 시기가 좋다. 독일어 단어 하나하나가 독특한 음성과 모양을 지닌 하나의 장난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언어를 대할 수 있다. 이상 시인의 ‘오감도’는 ‘조감도’라는 단어를 비튼 것으로 ‘조감도’의 ‘새 조(鳥)’ 자를 ‘까마귀 오(烏)’ 자로 변경하였다. 조감도란 새가 높은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처럼 전체를 한눈으로 내려다본 상태의 그림이나 지도를 뜻한다. 그러므로 ‘오감도’란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계의 지도라는 뜻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고 이상의 세련된 작업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조감도’가 ‘오감도’로 바뀌는 순간 낱말 하나가 만들어질 때의 생생한 환희와 흥분이 온몸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 따르면 서구어의 non, ne, nein 등의 부정부사는 고대 인도유럽어에서 ‘부정’을 뜻하는 개념인 ‘밤에 흐르는 물의 모호함’에서 나왔다. 상고시대에는 깜깜한 밤을 밝은 바다의 움직임이 끝나고 어두운 바닷물이 땅으로 흘러와 생기는 현상으로 이해했다. 고대인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뭘 봤니?”라고 물으면 “물만 보았다”고 대답했다. “물만 보았다”는 대답은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던 셈이다. ‘아니다’라는 부정부사 no, non은 인도유럽어의 물을 상징하는 ‘na’라는 음소에서 유래했다.

언어가 빈곤했을 오래전의 세상을 떠올려본다. 세계는 훨씬 뭉뚱그려져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많은 경우 언어를 경유하지 않은 채 자연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였을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대상을 호명하기 위해 인류는 언어를 발명해 왔다. 부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 말은 태어난다. 언어가 탄생하던 순간의 고유한 생명력을 아주 오랜 시간 후에도 새롭게 발명하는 것이 시인의 몫일 것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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