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책으로 지은 천국, 트리니티 대학 롱룸
아일랜드는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 영국에서 자치 분리, 1948년에야 비로소 온전한 독립 공화국이 되었다. 8세기부터 북방의 바이킹족, 남방의 노르만족이 400년간 침략해 황폐화했고 이후 800년간 잉글랜드의 식민지로 가혹한 수탈을 당했다. 그 암흑 속에서도 윌리암 예이츠 등 3명의 노벨 수상자를 비롯해 오스카 와일드와 제임스 조이스 같은 대문호들을 배출한 예술과 학문의 나라였다.
트리니티 대학은 수도 더블린의 핵심에 있고 구도서관은 최고의 국보들을 보존 전시한다. 9세기 작품인 『켈스의 서』와 11세기 외적을 무찌른 브라이언 보루 대왕이 사용했다고 잘못 알려진 ‘보루의 하프’다. 켈틱 음악의 핵심 악기인 하프는 아일랜드의 국가 문장이며 흑맥주 기네스의 상징이다. 켈스의 서는 4복음서를 라틴어로 필사한 4권의 우피지 책이다. 정교하고 화려한 중세 성화들과 장식적 글자로 유럽 캘리그래프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외적의 침략을 오로지 종교의 힘으로 극복하기 위해 지극 정성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보물은 2층에 위치한 ‘롱룸’이다. 폭 12m, 길이 65m로 길쭉한 이 방은 20만 권의 고서들을 수장한 도서관이다. 중앙 통로 좌우로 15칸의 작은 방들이 2층으로 열을 지었고, 각 방은 14단의 서가들이 앞뒤로 가득하다. 2층은 서가 일부를 비워 만든 갤러리로 통행이 가능하다. 각 방 앞에는 조너단 스위프트 등 아일랜드 위인들과 플라톤 등 유럽 지성들의 흉상을 세워 대표적인 저자들을 마치 신상과 같이 봉안했다. 사방을 책으로 세운 롱룸은 지성의 신전이 되었다.
20세기의 문호 보르헤스는 “천국이 있다면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일 것이다”라 했다. 롱룸의 둥근 천장은 노아의 방주를, 전란 중에 제작한 켈스의 서는 고려 팔만대장경을 연상케 한다. 롱룸은 세계의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에서 일절 장식이 없이 가장 순수한 책의 공간, 구원의 천국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삼계탕 뚝배기 좀 구해줘요”…현대차 ‘양궁 뒷바라지’ 40년 | 중앙일보
- 노상방뇨 막겠다고 길거리 다닥다닥…파리 남자 화장실에 "충격" | 중앙일보
- "그래도 호상이라는데…" 오은영은 차에서 1시간 오열했다 | 중앙일보
- "거의 벌거벗었다" 고백…'스타워즈' 공주 의상 낙찰가 '깜짝' | 중앙일보
- "가장 지저분한 비밀"…올림픽 수영 선수들이 소변보는 법 | 중앙일보
- 이번엔 농구장서 남수단 국가 잘못 틀어…“무례하다고 느꼈다” | 중앙일보
- '우상혁 라이벌' 황당 실수…국기 흔들다 센강에 결혼반지 '퐁당' | 중앙일보
- "왜 자꾸 한국한테만…" 올림픽 공식 SNS에 태극기만 '흐릿' | 중앙일보
- 美 선수 '헉'…中다이빙 대표팀 '공주님 안기' 세리머니 화제 | 중앙일보
- 유명 정신과 의사 병원서 환자 사망…"배 부풀었는데 약만 먹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