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국’ 베네수엘라 운명의 날… 25년 반미 끝날까
‘반미·포퓰리즘’ 마두로 대통령 3선 도전
민주야권 후보 우루티아와 ‘2파전’ 경합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보유하고도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를 받아 경제난에 시달려온 베네수엘라에서 25년 만에 정권이 교체될까.
베네수엘라의 운명을 결정할 대선이 28일 오전 6시(현지시간·한국시간 오후 7시)에 시작됐다. 3선에 도전하는 반미·좌파 성향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서방국 언론과 자국 내 일부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대로 패배해도 개표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국론 분열이 불가피하다.
투표는 이날 오후 6시(한국시간 29일 오전 7시)에 종료된다. 개표 결과는 오후 11시(한국시간 29일 낮 12시) 전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각 후보가 투표 종료 직후 자신에게 유리한 출구조사 결과만을 인용해 승리를 선언하거나 재검표를 요구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경우 당선인 확정 발표가 지연되고, 여야 지지층 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당선인은 내년 1월 10일부터 6년 임기로 집권하게 된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미 에너지관리청의 원유 매장량 조사에서 3038억 배럴로 세계 1위를 기록한 ‘석유 대국’이다.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와 함께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을 주도했던 국가도 베네수엘라였다. 막대한 석유 매장량을 기반으로 지난 세기 한때 세계 10위권 부국으로 올라섰지만, 지금은 민족주의 기반의 포퓰리즘 정권에서 미국의 고강도 제재와 높은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빈국으로 전락했다. 베네수엘라 유권자 2130만명은 현재 국운을 걸고 투표장으로 향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선에 도전한 후보는 모두 10명. 하지만 판세는 이미 마두로 대통령과 민주야권 연합 단일후보인 에드문도 곤살레스 우루티아의 2파전으로 좁혀졌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3년 3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사망 직후 기존의 국정 기조를 계승해 11년 넘게 집권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이 처음 정권을 잡은 1999년부터 현직인 마두로 대통령까지 베네수엘라의 반미·좌파 사회주의 정권은 25년간 이어졌다.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의 제재에 저항하는 자립 경제 활성화, 남미 내 좌파 정권들과의 연대 강화를 강조하는 한편 이웃국인 가이아나 석유 매장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 체제의 베네수엘라 정부와 여당은 선거관리위원회, 법원, 언론을 장악하고 민간을 가장한 ‘정부 연합 비정규 민병대’를 결성해 야권을 탄압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선거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베네수엘라 석유·가스 판매 제재를 연장했다.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에 따른 미국의 제재 수위 변화는 국제유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민주야권은 차베스 전 대통령 집권기부터 21세기 내내 이어진 좌파 사회주의 정권을 끌어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야권 지지층을 결집하는 구심점은 벤티베네수엘라 당수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56세 여성인 그는 서방 언론으로부터 ‘베네수엘라판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초 유력 대권 주자로 지목됐지만, 1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당한 뒤 우루티아 후보의 선거 유세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권 언론들은 우루티아 후보의 승리를 지목했다. 베네수엘라 여론조사 기관 ORC컨설턴트도 지난달 22~28일 지지율 조사에서 우루티아 후보에게 57%의 민심이 몰려 마두로 대통령(14%)에게 앞섰다고 발표했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친정부 언론들은 마두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50% 이상으로 집계해 ORC와 상반된 결과를 제시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이 패배할 경우 베네수엘라의 국론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2일 “마두로 대통령이 최근 유세에서 ‘내가 패배하면 피바다가 될 위험이 있다. 이번 선거는 평화로운 베네수엘라와 내전에 휘말린 베네수엘라를 선택하는 문제’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발언은 자신의 패배 시 지지층과 ‘정부 연합 비정규 민병대’에게 선거를 불복하도록 미리 선동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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