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된 트럼프…"미 대선, 맹목적 진영 대결 치달을 듯"[특파원리포트]
지난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거즈를 붙이고 나타나 “아무도 ‘신의 계획(plan)’을 알지 못하지만, 의견의 불일치를 극복하고 하나의 사람, 하나의 국가로서 단결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리고 지난 24일 '신의 계획'을 언급한 전당대회 이후 처음으로 개최한 대중 유세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로 새로운 경쟁자가 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좌파 미치광이(lunatic)”라고 지칭했다. 지지자들은 일제히 “싸우자(fight)”를 연호하며 열광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암살 시도에서 생환한 이후 지지자들에겐 종교와 유사한 맹목성이 생겼다”며 “이 때문에 남은 100여 일은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극단적인 양극화 속에서 양당이 진영 전체를 동원하는 전면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신의 가호” 반복된 전당대회
지난 13일 발생한 암살 미수 사건 이후 지지자들은 총을 맞고도 살아난 트럼프에 대해 “신의 계시”라며 열광했고, 트럼프를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으로 추앙했다.
그러자 공화당은 밀워키 전당대회를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성토장으로 만들려던 기존 계획을 바꿨다. 새로운 계획은 트럼프의 생환에 일종의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지지자들을 맹목적 믿음을 가진 지원군으로 만드는 전략에 가까웠다.
이는 데이터로 확인된다. 뉴욕타임스(NYT)의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 전당대회 4일간 나왔던 11만여개의 단어중 가장 많이 언급된 말은 순서대로 트럼프(1049회), 대통령(905회), 미국(663회), 미국인(547회), 국가(445회), 바이든(393회), 국민(355회)이었다. 모두 선거 유세에서 당연히 나올만한 말들이다.
그런데 이들 7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나온 말은 310회의 ‘신(god)’이었다. 여기에 176회 언급된 ‘신의 가호(bless)’를 추가하면 신과 관련된 언급은 총 486회로 트럼프, 대통령, 미국, 미국인에 이어 5번째로 많이 언급된 말이 된다. 여느 전당대회와 달리 ‘신의 가호를 받은 트럼프’를 강조하는 방식이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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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성경에 나오는 사자”
실제 찬조 연설에 나선 코리 밀스 하원의원은 “성경 에베소서 6장 11절을 읽어보라”며 “트럼프를 구한 것은 하나님의 개입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성경 구절은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다. 트럼프의 며느리이자 공화당 전국위원(RNC)의 공동의장인 라라 트럼프도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라는 잠언 28장 1절을 인용한 뒤 “트럼프는 성경에 나오는 사자”라고 했다.
이외에도 공화당 전당대회에선 “하나님이 트럼프를 구한 것은 그를 통해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하나님이 특별한 이유를 위해 트럼프를 구했다”는 등의 연설이 이어졌다. 개신교 목사가 트럼프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이끄는 순서도 반복적으로 배치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당대회가 피습 사건 직후 열리면서 종교적 분위기가 유달리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종교가 된 트럼프…지지자 ‘팩트’ 불신
과거 TV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며 여론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트럼프는 ‘배우’ 역할을 마다치 않았다. 트럼프는 욕설에 가까운 평소 연설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역대 최장 기록인 93분의 수락 연설 내내 이례적으로 차분한 목소리로 단결, 사랑, 평화 등을 말했다. 연설에선 1만 2219개의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중엔 종교적 의미의 ‘명령(order)’이란 말이 32회로 상위권에 포함됐다.
또 경쟁자이던 바이든 대통령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평소 반복하던 ‘비뚤어진 바이든(crooked Biden)’이란 호칭 대신 ‘상대방(opponent)’이나 ‘그들(they)’이란 표현을 썼고, 바이든의 이름은 불가피한 자리에 단 두 차례만 사용했다. 바이든은 신의 선택을 받은 자신과 경쟁 상대가 아니란 점을 부각하기 위한 일종의 '무시 전략'이란 해석도 나왔다.
지지자 사이에선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트럼프의 말을 무조건 믿는 맹목성이 더 강해졌다. 전대 현장에서 만난 대의원 린다 존슨은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소개에 “트럼프의 말을 듣지 않았느냐”며 “한국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부터 꺼냈다. 한국이 세계 최대의 대미 투자국이고 미국 내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그럴 리 없다. 당신과는 더 얘기하지 않겠다”며 대화를 중단했다.
해리스 겨냥 '색깔론'에도 종교색
최근 트럼프 측은 ‘나이 공격’이 먹히지 않는 59세 해리스에 대한 공격 포인트로 꺼내 든 ‘색깔론’에 종교 색을 입히고 있다. 그는 26일 보수 기독교 단체 '터닝 포인트 액션'이 개최한 행사에서 해리스를 향해 “실패한 부통령”, “무능한 부통령”, “가장 극좌 부통령” 등이라고 호칭한 뒤 “해리스는 대법원에 노골적 마르크스주의자를 임명해 종교적 자유에 대한 헌법을 찢어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반기독교 편견에 맞서 싸우는 연방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미국 기독교인에 대한 모든 형태의 불법 차별, 괴롭힘, 박해를 조사하겠다”며 “우리의 임무는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등을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스테판 슈미트 아이오와주립대 교수는 중앙일보에 “종교색을 얻은 트럼프의 다음 전략은 유권자들이 해리스가 과격한 진보주의자라고 믿게 만드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웬디 쉴러 브라운대 교수는 “두 사람 모두 진영 내 불안감을 극단적으로 자극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며 “아직은 트럼프가 유리하지만, 대선의 승부는 어느 진영이 더 많은 지지층을 설득해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진영 간 전면전으로는 트럼프가 각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바이든 대통령과 맞붙었던 2016년, 2020년 대선이 꼽힌다. 두 차례 모두 상대에 대한 극단적 혐오가 이어졌고, 그 결과 양쪽 모두 상대를 떨어뜨리기 위한 진영 내 표 결집 대결을 펼쳤다.
2016년 도전자였던 트럼프는 힐러리의 비호감도를 극대화해 보수 진영을 결집하는 전략으로 6298만표(46.1%)를 얻었다. 트럼프는 힐러리의 6585만표(48.2%)보다 적은 득표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2020년 현직이던 트럼프는 보수 진영을 결집해 7422만표(46.9%)를 확보했는데, 이번엔 트럼프 재선을 우려한 진보 진영이 더 강하게 결집하면서 8128만표(51.3%)를 바이든에 몰아줬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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