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체스를 두는 인형이 나타났다” [편집장 레터]

김소연 매경이코노미 기자(sky6592@mk.co.kr) 2024. 7.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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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체스를 두는 인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1769년, 합스부르크 제국의 관리였던 요한 볼프강 리터 폰 켐펠렌 남작(1734~1804년)은 ‘기계 투르크인(the Mechanical Turk)’이라는 장치를 만들어 선보입니다. 켐펠렌 남작은 정치가면서 증기 엔진, 워터 펌프, 부교, 말하는 기계 등을 발명한 유명한 과학자였죠. 한 손에 파이프를 들고 체스판이 올려져 있는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인형은 털로 장식된 옷에 터번을 쓰고 있습니다. 책상 아래는 복잡한 기계 장치가 설치돼 있고요. 투르크족처럼 생겼다 해서 이름이 ‘투르크’입니다. 이 인형이 유명해진 건 혼자 움직이면서 체스를 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실력도 엄청났죠. ‘투르크’는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를 비롯해 체스 대결을 신청한 모든 왕족과 귀족을 물리쳤답니다.

남작이 사망하고 1808년, 멜첼이란 이름을 가진 이가 체스 인형을 구입합니다. 새 주인이 된 멜첼은 체스 인형에 몇 가지 움직임을 더 추가하고 심지어 간단한 말도 할 수 있게 개량했다죠. 1809년 멜첼은 쇤브룬 궁전에서 인형을 나폴레옹에게 선보입니다. 이때 투르크는 나폴레옹을 보자 손을 들어 경례를 하고, 나폴레옹이 반칙을 하자 팔을 휘저어 체스 말을 체스판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다네요.

투르크가 전 유럽에 명성을 떨쳤지만 한편에서는 사기 아닌가 하는 의혹이 팽배했죠. 두 번째 주인인 멜첼은 투르크의 내부를 공개하며 어떠한 속임수도 쓰지 않았다고 항변했고요. 멜첼이 사망한 후 투르크는 여러 주인을 거치다 박물관에 기증됐고 이후 화재로 소실됐습니다. 훗날 투르크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마지막 주인의 아들이 “투르크는 모두 사기”이며 “사람이 안에 숨어서 조작하는 방식”이라고 털어놓았죠. 실제로는 아주 작은 사람이 나무상자 안에 들어가 웅크린 채 기계를 조작했다는 스토리입니다.

체스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상자 안에서 표시 장치를 통해 게임을 지켜보고, 지렛대와 끈으로 인형 손을 움직여 체스 말을 잡아 옮기게 했다니 대단한 설계입니다. 게다가 상자 안이 어두워 조종자는 양초 램프를 조명으로 사용했는데 램프에서 나온 연기는 상자 뒷면에 숨겨진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했다니 눈속임도 이런 눈속임이 없습니다. 사기로 판명 났지만, 투르크는 사람처럼 움직일뿐더러 체스 실력도 뛰어날 만큼 엄청난 지능을 지닌 인형이 나타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했습니다.

매경이코노미가 창간 45주년 콘퍼런스를 열었습니다. ‘돈 버는 AI’라는 주제의 콘퍼런스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은 분야는 로봇과 AI 결합을 일컫는 ‘임바디드 AI’였습니다. AI에 보고 듣고 움직일 수 있는 ‘신체’를 달아주는 기술을 의미하죠. 챗GPT같이 언어를 기반으로 한 LLM(Large Language Model)을 넘어 실제 물리 세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LAM(Large Action Model)으로의 진화입니다. ‘투르크’가 사기가 아닌 실체가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니 기뻐해야 할 일이겠죠? 음~

[김소연 편집장 kim.so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0호 (2024.07.31~2024.08.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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