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온도가 경쟁력…큰 나무 심는 설계가 도시숲 성공 열쇠”

문정임 2024. 7. 2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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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도시, 제주 숲 프로젝트④]
인터뷰/이안 쉬어스 전 멜버른 시청 도시숲 정책 국장
멜버른 빅토리아 마켓 앞으로 트램이 지나고 있다.

편집자주
도시가 달군 팬처럼 뜨겁다. 여름은 이제 시작인데, 낮 기온은 30도를 웃돈지 오래다. 그래도 거리에 나무가 있어 사람들은 잠시 숨을 돌린다. 한여름 가로수는 도시의 휴식처다. 여러 겹의 가지가 촘촘히 햇빛을 막고, 시원한 공기를 내뿜어 주변을 쾌적하게 다. 사람을 걷게 하고, 폭염과 폭우가 주는 충격을 완화한다.

제주도가 나무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민·기업과 손 잡는 방식으로 녹지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국민일보는 달라진 제주도 도시숲 정책을 취재했다. 우리보다 앞서 기후 변화를 경험한 호주 멜버른의 고민과 이 도시의 녹지정책도 함께 살펴본다.

2009년 최악의 자연재해를 경험한 뒤 멜버른시가 수립한 도시숲 정책( ‘Urban Forest Strategy, 2012~2032’)은 매우 전략적이다. 어디에, 어떤 나무를, 어떤 순서에 따라 심어야 할지 기준을 명확히 수립했다.

멜버른시의 공공영역 캐노피(Canopy, 전체 토지에서 나무 그늘이 차지하는 물리적 범위)는 전략 수립 당시 22%에서 현재 30%까지 늘었다. ‘2040년 4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5월 멜버른 근교 윌리엄스타운 자택에서 이안 쉬어스(Ian Shears) 씨를 만났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멜버른시에서 도시숲 업무 책임자로 근무했다. 시가 기후 위기에 대응해 새로운 도시숲 전략을 구상하고, 수립해 시행하는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이안 쉬어스(사진) 전 국장은 “멜버른이 세계적인 ‘정원의 도시’이자 ‘살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게 된 도시숲 전략은 2009년의 비극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밀레니엄 가뭄’이라고 부르는 건조한 날씨가 2000년 이후 7~8년 동안 지속됐고, 2009년 멜버른 주변에 큰 산불이 있었다. 불은 한 달 넘게 지속되었고, 176명이 화재로 사망했다”고 했다.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극한의 폭염도 이어졌다. 당시 화재 등으로 인한 폭염으로 멜버른을 포함한 빅토리아주에서 4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쉬어스 전 국장은 “1800년대 도시가 처음 조성되었을 때 우리는 나무를 일종의 장식물로 여겼지만, 지금은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생각한다”며 “이것은 나무를 심거나 나무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도시에서의 삶을 더 낫게 하는 조치라는 걸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호주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대륙 중 하나다. 연평균 강수량이 우리나라의 절반인 600㎜를 밑돈다. 반면 기온은 대체로 연중 온화하다. 멜버른의 여름 평균 최고기온은 23~25도 수준, 하지만 2009년 1월 30일과 2월 7일에는 낮 최고기온이 45도까지 치솟았다.

늦가을에 접어든 지난 5월 멜버른 시내 모습. 사람들이 트램을 기다리고 있다.


폭염은 도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고온과 가뭄에 나무들의 상태가 악화했다. 해충과 곰팡이병은 늘었다. 도시 공해에 강한 나무로 인식돼 멜버른 도시상업지구(CBD)에 많이 식재했던 버즘나무는 고온에 약했다. 느릅나무는 뿌리를 접목하며 자라는 특성이 있어 감염 시 확산이 빨랐다. 이런 이유로 멜버른에서는 1200년이 넘은 거대한 느릅나무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2009년 발생한 기상 이변은 도시에 많은 문제를 가져다주었지만, 도시숲 정책을 한 단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쉬어스 전 국장은 “멜버른시는 도시 안에서 숲을 만드는 게 아니라 숲속에 도시를 만들 수 있게 전략을 개발하고 도시 비전을 준비했다”며 “초안 작성에서 의회 승인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렸는데, 여러 계층의 의견을 청취하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쉬어스 전 국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를 크게 키우려는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무를 길옆에 심으면 작은 나무만 얻을 수 있지만, 큰길에 심거나 도로 한 가운데에 심으면 정말 큰 나무를 얻을 수 있다”며 “수관이 넓은 나무가 더 많은 이익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어디에 나무를 심을지를 중요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또 “나무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기 위해 표면을 투수성 재료로 교체하고, 물 저장성이 큰 토양을 사용했다. 식수대 밑에 빗물 포집 장치를 설치해 인근 나무에 물을 공급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며 “나무를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한 지속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했다”고 했다.

그는 “도시숲 정책은 시민의 지지와 참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답변을 전달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도시숲이 경제적, 환경적으로 시민과 도시에 다양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했다.

가로수 정보가 탑재된 양방향 지도(Urban Forest Visual)를 통해 시민들이 가로수에 이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한 시책에 대해서는 “사람들로부터 개별 가로수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얻어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다른 부서나 기관에서 특정 지역 개발을 위해 나무를 잘라야 할 때 사람들이 이 나무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근거로 보여주며 설득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그 같은 상황이 발생했고, 나무를 보호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쉬어스 전 국장은 지난 2017년 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선 나무의 숫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를 보았다”며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큰 나무의 수와 큰 나무를 심기 위한 설계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시숲 전략을 짤 때에는 나무가 성장해 도시 온도를 낮추기까지 100년 이상 기간이 걸린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치인들은 자신의 4년 임기를 기준으로 도시숲 정책을 바라보기 때문에 시민들이 더 많은 정책과 개선을 요구해야 도시가 달라진다”고 조언했다.

그는 “앞으로 도시는 점점 더워지고 가물고 때로 급작스러운 폭우가 찾아올 것”이라며 “나무 등을 통해 도시 온도를 얼마나 낮추는가에 따라 도시의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라고 말했다.

멜버른=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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