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와 몇 번의 전투, 동학혁명군의 해산
2024년이 동학혁명 130주년이다. 처음엔 '반역'에서 동학란으로, 또 그사이 동학농민전쟁이었다가 백 주년에서야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름 하나 바꾸는데 백 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동학혁명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 혁명에 참여했던 오지영 선생이 지은 <동학사> 한 권을 들고 전적지를 찾아다니며, 그 답의 실마리나마 찾아보려 한다. 우리를 되돌아보는 기행이 되었으면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처참한 학살을 목도한,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심정도 이러했을까?
▲ 우금치 전투(박홍규) 박홍규 화백이 그림으로 표현한 공주 우금티 전투. 용맹하나 처절한 모습 그대로다. |
ⓒ 이영천(대뫼마을 촬영) |
1894년의 전라도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억압과 질곡, 계급이 없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을 맞아들였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봤으며, 진정 사람으로 대접받는 기쁨을 맛보았다. 당연했으나 과분한 행복이었다.
그런 동학이 나쁜 권력과 악랄한 일제에 맞서 싸우겠단다. 허나 그 길에 기껍게 나서지 못했다. 겁이 났을 수 있다. 아니면 하나뿐인 목숨이 구차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앞서 길을 나선 수만 명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단다. 그들이 흘린 피가 내를 이뤘단다. 모두가 분노한다.
분노는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운 고통의 발로다. 의롭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그 깊이를 더한다. 결코 처참한 죽임을 보아서만이 아니다. 준동하는 악을 보고 겪었음에도, 당당하게 맞서지 못한 부끄럼 때문이다. 이게 선량한 백성의 참모습이다.
그런 분노가, 전라도 땅으로 후퇴한 동학혁명군과 함께하는 실천으로 바뀐다. 늦었으나, 살아 분노한 자들이 기꺼이 의로운 길에 나선다. 패배가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싸워보지조차 않는다면 그동안 올곧게 살아낸 삶의 염치마저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형편없는 무기일망정 당당하고 싶다. 전멸해도 상관없다. 싸워야 한다는 당위면 충분하다.
이게 살아남은 자의 심정이다.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분노다.
불타는 녹두 벌판
김개남은 1만여 군사를 거느리고 삼례역에서부터 전봉준과 서로 길을 나누어 청주 길로 들어갔다. 청주 경계에서 청주 병사의 관하 군대를 만나 서로 싸운다. 청주 병이 돌연 백기를 들고 항복하거늘 개남은 문득 의심이 들어 항복한 군사 수십 명을 총살하였다.
이로부터 관병들은 악감정이 생겨 죽기로 대들어 싸워 양군 사상자 수천 명을 냈고, 여러 날 싸움에 개남 군대는 패하여 북진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남쪽 길로 향하여 전주성에 웅거하여 관병과 싸우다가 마침내 패한 바 되었다. (동학사. 오지영. 문선각. 1973. p254~255)
▲ 황화산 동학군이 논산 대도소를 꾸린 소토산 쪽에서 바라 본 황화산. 호남선 철길이 옆으로 지난다. |
ⓒ 이영천 |
논산에서 익산 쪽으로 뻗은 철길 옆에 사발 모양의 황화산이 앉아 있다. 산은 작은 산성을 품고 있다. 황화산성이다. 이 작은 산성에서 수천 명으로 쪼그라든 동학혁명군이 적을 맞아 격전을 벌어야 했다.
▲ 황화산성 동학혁명군이 논산으로 후퇴하자, 조일 연합군이 쫓아와 이 산성에서 전투를 벌였다. |
ⓒ 이영천 |
며칠의 말미를 내어 전봉준은 후퇴 진용을 구성, 부상자들을 먼저 후방으로 보낸다. 대열을 정비, 질서 있게 전라도로 후퇴한다. 19일이다. 동학혁명군의 참담한 패배 소식이 각지로 퍼져나간다.
이때 양로로 후퇴한 동학군들이 한데 모여 수일 동안 휴식을 취하던 중 관병은 승승장구하여 논산 본진을 달려들어 치는지라 동학군들은 어찌할 수 없어 남방으로 내려와 전주성에 웅거하였다. (앞의 책. p254)
조·일 연합군은 공주에서 논산, 전주로 이어지는 고을을 샅샅이 뒤지며 남하하고 있었다. 그 길에 동학군으로 나간 사람을 이 잡듯 골라내 가족을 죽이고 집에 불을 질렀다. 말 그대로 청야작전(淸野作戰)이었다.
일본군은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선군을 사주하여 백성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는데, 매우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탄환을 아낀다며 총을 쏘지 않았다. 칼로 베거나 몽둥이로 쳐 죽이는 건 예사였다. 심지어 마른 볏단을 온몸에 둘둘 감싸고 불을 질러 죽이기까지 했다.
이토록 잔인한 처형 방법은 적개심을 키우기도 하지만, 선량한 백성 하여금 극도의 공포감에 빠지게도 했다. 이로써 다시는 대들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다. 또한 숨어 있던 농민군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가족 소식을 듣고 물불 가리지 않고 대들도록 유도하여 전멸시킨다는 교활한 방법이기도 했다.
궁극엔 저항의 싹을 제거해, 장차 일본의 조선 지배에 대항할 세력을 뿌리째 없애려는 의도였다. 저들은 백성의 생명만 빼앗은 게 아니라,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간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해산
▲ 구미란 전적지 원평 읍내 인근 구미란 마을 뒷산에서 분노한 농민군과 조일 연합군이 격전을 벌이나, 화력 차이로 수십 사망자를 내고 동학군이 패배한다. |
ⓒ 이영천 |
전봉준과 김덕명 등이 열악한 화력으론 참담한 패배가 자명하다 설득하나 막무가내다.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들의 요구에 그나마 남아있는 낡은 대포 등 무기가 될 만한 건 모두 모아들인다.
25일 원평 동남쪽 구미란 마을 뒷산에 진을 치고, 조·일 연합군을 맞아 싸웠으나 무기 열세로 대패하고 만다.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태인 쪽으로 후퇴하였다. 조·일 연합군은 급히 뒤쫓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태인 읍내 후퇴하는 동학군이 공식적으로 마지막 전투를 벌인 태인 성황산에서 바라본 남쪽. 멀리 고부 두승산이 보인다. |
ⓒ 이영천 |
조·일 연합군의 기관총과 서양 총의 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적을 포위해 공격했으나 40여 전사자와 50여 포로를 남기며 패하고 만다.
또 관병과 싸워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금구, 원평 싸움과 태인, 정읍 등지에서 여러 번 싸웠으나 대세 이미 그릇된지라 연전연패를 거듭한 동학군은 장성 노령 아래에서 재기의 약속을 맹세한 후 각기 헤어지고 말았다. (앞의 책. p254)
조·일 연합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지나가는 고을마다 잔인한 보복과 약탈, 방화를 자행한다. 이용태가 불 지른 앙상한 그 봄의 만행보다 더 처참한, 까마귀 깍깍대는 스산한 삭풍의 한겨울이다.
갑오 십이월부터 조선 남방은 관병과 일병의 천지가 되고 말았다. 마을마다 살기가 충천하고 유혈이 낭자하였다. 이때 있어 조선 사람의 사상은 두 쪽으로 갈라지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관리, 양반, 부자, 유림, 소리, 사졸과 서학은 모두 정당이 되어 관병과 일병에게 한데 섞여 수성군 혹은 민포군 등을 조직하여 동학군 잡아들이기에 날뛰었고, 다른 백성들은 동학군 편으로 동정하였다.
관리나 양반이나 소리나 사졸배로서 동학당에 참여했던 자들은 일조에 표변하여 모두 동학당의 원수가 되었다. 제 두목이나, 제 장수나, 제 친구를 잡아 가두고 벼슬깨나 얻으려 한 놈들은 모두 다 이름을 바꾼 동학군 놈들이다.
동학군으로서 관병, 일병, 수성군, 민포군에게 당한 참살 광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중 가장 참혹한 곳으론 호남이 제일이었고, 충청도가 기차이며 그 밖에 경상·강원·경기·황해 등의 여러 도에도 살해가 많았었다.
전후 피해자를 계산하면 무릇 삼사십만의 다수에 달하였고, 동학군의 재산이라고는 모두 다 관리의 것이 되고 가옥 등은 죄 불에 탔으며 기타 부녀 강탈, 능욕 등은 차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전라, 충청, 경상 삼도로 말하면 사나운 화를 아니 입은 고을은 하나도 없으나 유독 고부, 태인, 정읍, 고창, 흥덕, 무장 …(중략)… 산청, 안의, 거창 등 여러 읍이 더욱 심했으며 또 함열 웅포진에서 수천 명이 일시에 강물에 빠져 죽은 일이며 광양 섬진강에서 강물에 빠져 죽은 자가 삼천 명에 이르렀다. 경기도는 …(중략)… 죽산, 양근, 저평 등지에서 살육이 많이 났었고, 강원도는 …(중략)… 장연, 수안 등지에서 피살된 자 수천 명에 달하였다. (앞의 책. p262~264)
태인 전투를 끝으로 11월 27일 전봉준은 동학혁명군 공식 해산을 선언한다. 그리곤 몇몇과 정읍 입암에서 갈재를 넘는다. 장성에 이르러 첩첩산중 작은 암자인 백양사 청류암에서 재기를 모색한다. 눈 덮인 새하얀 노령산맥이 소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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