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두 건의 판례 변경에 대한 소고

2024. 7. 2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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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남편은 1971년 혼인해서 1973년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곧바로 별거에 들어간 이들 부부는 1984년에 이혼했으나, 아들의 양육비 지급에 대해서는 협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성년이 되기까지 19년 동안 홀로 양육했고, 그동안 전 남편은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이 성인이 되고 23년이 지난 2016년 뒤늦게 전 남편을 상대로 과거 양육비 1억2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전 남편은 그녀의 과거 양육비청구권은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훨씬 지났으므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사자 간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이 생기기 전에는 양육비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게 오래된 판례였다. 그녀와 전 남편이 양육비 지급에 대해 협의한 적이 없는 이상, 이 판례에 따라 그녀의 과거 양육비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았고, 전 남편은 과거 양육비를 지급해야 했을 것이다. 아이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늦게나마 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하필 이 사건에서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했다. 과거 양육비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부모의 양육의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지만, 자녀가 성년이 되어 부모의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는 일반 채권과 마찬가지로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판례 변경으로 ‘독박 양육’한 그녀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언에 따라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판례 변경은 비양육자의 양육비 지급 책임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사회적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나쁜 판결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한편 칭찬할만한 좋은 판례 변경 사례도 있다.

그는 편도 4차로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진로변경을 제한하는 ‘백색실선’이 설치된 구역에서 1차로에서 2차로로 진로를 변경했다. 그런데 2차로에서 주행하던 택시가 그의 차량과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정거했고, 그 과정에서 택시 승객이 전치 2주의 부상을 입었다. 검찰은 백색실선에서의 진로변경 행위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해당하는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 위반’으로 보고 기소했다.

‘백색실선에서 차로를 변경하는 행위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12대 중과실에 포함되고, 따라서 면책될 수 없다’는 기존 판례에 따라 검사가 기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백색실선에서 진로를 변경하는 행위가 12대 중과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일반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백색실선 위반을 신호 위반이나 중앙선 침범, 보도 침범 등과 같은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인지,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했다. “백색실선은 진로를 변경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진로변경 후 해당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백색실선 침범 행위는 ‘통행방법제한’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는 있어도, ‘통행금지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즉, 백색실선 위반은 12대 중과실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검사의 기소는 기소할 수 없는 사건을 기소한 것이 되어서 공소기각 판결로 결론이 났다. 기존 판례가 국민에 대한 형사처벌 범위를 부당하게 확대했던 것을 이번 판례 변경으로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판례 변경의 모범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법관이 법전을 손에 쥐고 근엄한 자세로 법대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좋은 판결이 나올 수 없다.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시대의 흐름을 통찰할 수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판결이 가능할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이런 판결을 향한 법관들의 노력이 거듭되면 당연히 높아지지 않겠는가.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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