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사이 경찰 세 명 숨졌다…"남 일 같지 않아" 내부 술렁

이보람 2024. 7. 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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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배달된 근조화환. 경찰관들은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통해 업무과중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관악서 소속 송모(31)경위를 추모하기 위해 근조화환을 보냈다. 관악서 민원봉사실 앞에는 근조화환 60여 개가 배달됐다. 이보람 기자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이를 시도하는 일이 잇따르면서 경찰 내부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수사권 독립 뒤 이어진 조직 개편과 실적 위주의 평가 압박 등으로 일선 경찰관의 근무 여건이 열악해졌다는 취지다. 경찰청도 전담팀을 꾸리고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최근 열흘 사이 알려진 경찰 사망 사건은 총 세 건이다. 이날 오전 서울 동작경찰서에선 경무과 소속 김모(43) 경감의 영결식이 열렸다. 김 경감은 지난 19일 오전 사무실에서 뇌출혈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26일 세상을 떠났다. 영결식엔 관내 600여 명의 직원 중 200명에 가까운 동료가 참석했다고 한다. 동료들 사이에선 “김 경감이 승진 스트레스와 과로 등으로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앞서 18일엔 관악경찰서 수사과 소속 송모(31)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국경찰공무원직장협의회(직협) 조사 결과 송 경위는 올해 승진해 수사과에 전입한 뒤 업무 과중을 호소했고, 특히 최근엔 장기 미처리 사건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토로했다. 송 경위는 주변에 “숨이 안 쉬어진다”, “월요일이 두렵다”고 하거나, “최근 체중이 10㎏ 넘게 빠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송 경위 부친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난 1일 동료와 나눈 대화를 보니, 맡았던 사건이 총 73건이었다”며 “지난 22일 전출 예정이었는데 그 전에 맡은 사건에 대한 방문 점검이 예정돼 있어 압박을 크게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송 경위가 휴대전화에 남긴 메모 형식의 유서에는 “수사팀에 온 뒤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동료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있었다.

충남 예산경찰서 경비안보계 소속 A(28) 경사도 지난 22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평소 주변에 과중한 업무를 하소연한 것으로 전해졌다.

26일 오전 5시쯤엔 혜화경찰서 수사과 소속 A(40대) 경감이 동작대교에서 한강으로 투신했다가 구조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한다. 동료들은 A 경감에 대해 “최근 큰 시민단체 사건과 의대 증원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과로를 호소했다”며 “원형 탈모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잇따른 젊은 경찰관의 죽음에 “남 일 같지 않다”며 경찰 내부가 술렁이고 있다. 송 경위가 일했던 관악서 앞엔 동료들이 보낸 근조 화환 수십 개가 놓였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지휘부에 재발 방치책을 요구하는 글이 물밀듯 올라왔다.

특히 수사 업무가 과중하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소‧고발 반려제도 폐지, 수사팀 통·폐합, 형사기동대·기동순찰대 출범 등으로 사건 수는 크게 늘고 수사 인력은 줄면서 1인당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2021년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이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처리 사건 수가 늘고, 지난해 잇따른 흉기 사건 뒤 수사 인력을 빼 현장 치안 업무에 배치하면서 생긴 문제다. 또 지난해 11월 수사준칙 개정으로 경찰 판단만으로 고소·고발 사건을 반려 또는 이관할 수 없게 되면서 각종 고소·진정 사건이 경찰에 몰려 과부하가 걸렸다.

26일 강원 춘천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경찰 내부 게시판인 현장활력소에 “지난해 상반기 통합수사팀 접수 사건은 2607건이었는데 올해 같은 기간 접수 건수는 137%(3575건) 증가한 반면, 인원은 32명에서 30명으로 줄었다”고 썼다. 또 다른 경찰관도 25일 이 게시판에 “사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됐는데 반려제도 폐지로 인한 행정력 낭비와 민원에 대한 부담은 오로지 담당 수사관 몫”이라며 “매일 1~2건 이상 사건을 받는 수사관들은 깊이 있는 수사를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쳐 내는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장기 미제 사건 처리 압박까지 겹쳤다는 게 일선 경찰관의 설명이다. 강남권의 한 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하는 경찰관(경감)은 “올해 들어 매주 장기 사건 처리 비율을 보고하고 장기 사건 보유 상위 10%에 든 팀장은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며 “큰 압박을 받아 직원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찰청도 사태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태 파악에 나섰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26일 경찰청 차장이 총괄하는 ‘현장 근무 여건 실태 진단팀’을 꾸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직협은 “실적 위주의 평가를 중단하고 기순대·형기대를 폐지해 수사 인력을 원상복귀 하라”고 요구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에 접수된 사건의 특성을 파악해 중요도에 따라 사건을 수사하고 종결할 수 있도록 과거 폐지된 고소·고발 반려제도를 업그레이드해 부활시키는 방안이 경찰들의 업무 과중을 해소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 이미지 그래픽

이보람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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