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과 '성장'의 이면... 이게 누구와의 상생입니까
[박은영 기자]
▲ 생을 마친 매미 여름길을 다 걸은 순례자 같다. |
ⓒ 박은영 |
아침 일찍 천막농성장에 도착해 주변을 정리하는데 뭔가 바닥에 떨어졌다. 공이 떨어지나 싶었는데 매미다. 이미 한 철을 울면서 날아다니다가 허공에서 삶을 다한 모양이다. 잠시 날개를 파르르 떠는가 싶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한 생을 끝낸 매미를 바라보며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일었다.
매미의 모습은 온 힘 다해 여름을 걸어온 순례자 같았다. 여름이라는 길을 자기 힘 다해 걷다가 툭 하고 앉아 쉬는 순례자의 모습. 지친 게 아니었다. 자기 사명을 다했다는 뜻이었다. 매미 한 마리의 생조차 쉽지 않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아직 여름은 매미의 생보다 길게 이어지고 있다.
뜨겁다. 온풍기에서 나오는듯한 바람마저 없다면 속수무책인데 다행히도 바람은 계속 분다. 한두리대교 아래를 간간히 찾는 이들은 더위를 잠시나마 식히려고 차를 세워둔 뒤, 차에서 나와 벤치에 눕기도 하고 산책을 한다. 어떤 이들은 강가에 내려가서 거세게 흐르는 강물 곁에 잠시 머물다 올라온다. 그라운드 골프장 어르신들은 제철 음식들을 가지고 와 나눠드신다.
▲ 이명박 녹색뉴딜의 결과물 금강에 가득한 녹조는 4대강사업의 결과물이었다. |
ⓒ 대전충남녹색연합 |
"국내 기업이 환경무역장벽에 대응하고 세계 시장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지원"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
김완섭 신임 환경부 장관 취임사에 등장한 위의 글들을 보고 떠오른 것은?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면서 강변했던 '녹색성장'이라는 문구였다.
당시 4대강에 드넓게 펼쳐진 녹색 습지를 포클레인으로 짓밟고 파헤친 그곳에 '녹색 뉴딜'이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하지만 4대강사업을 통한 30~40만개 일자리 창출 주장은 결국 사기에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고, 강에는 녹조만 창궐했다.
이렇듯 국민들을 현혹하려고 '녹색'이라는 언어마저 오염시켰던 자들의 후예가 바로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가 아닌가 싶다. 이명박의 4대강 망령을 부활시킨 한화진 전 장관은 이임사에서 '환경규제 혁신', '환경과 경제의 상생'이라는 말을 남겼다. 김 신임 장관도 '환경과 경제의 상생'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했다.
▲ 개발이라는 환상에 빠져 자연을 파헤치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는 이율배반적인 환경부. |
ⓒ 서영석 |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무조건적인 이윤창출이 아닌 기후재난을 대비하는 공공성 강화를 말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재된 성장, 발전 욕구에 경고판을 들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환경부 장관이 경제성장, 시장경쟁력을 외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찬 노릇인가(관련 기사: 이런 사람이 장관? 윤 정부가 또 국민 우롱했다 https://omn.kr/29jvp ).
그토록 길게 인사말을 하면서 강 이름 하나, 산 이름 하나, 꽃 이름 하나, 생명의 이름이 하나도 언급하지 못하는 이들이 윤석열 정부의 환경부 장관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들에게는 환경과 뭇생명들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생태적 상상력이 없다.
▲ 성서대전 고함기도회 세종보 재가동 중단을 요구하며 고함기도회를 열었다. 메세지를 전하는 전남식 목사의 모습. |
ⓒ 대전충남녹색연합 |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전 목사는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 결국 인간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간이 강을 막아서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겠다는 생각은 예측 불가능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강을 막아서 오리배를 띄우고 시설물을 만드는 일, 자연을 통제해 이윤을 취해보겠다는 허상이 현실이 되려면 자연은 희생을 당해야 한다.
▲ 강원도 홍천 양수발전소 건설 반대를 외치며 농성하던 풍천리 주민들을 경찰이 강제연행 했다. 시민사회와 주민가족들이 석방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 박성율 원주녹색연합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하지만 번번이 개발에 눈이 먼 지자체장들에 의해 환경은 파괴됐고 생명이 짓밟혔다. 이를 막으려는 끈질긴 싸움이 무위로 끝나는 일도 많았다.
▲ 백로의 활강 비가 잠시 멈춘 틈으로 백로가 금강 곁을 날고 있다. |
ⓒ 임도훈 |
천막농성장에 온 둘째가 순식간에 불어오는 비바람에 산과 건물이 희뿌옇게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더니 감탄하듯 말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한두리대교 끝에 서서 한참 동안 소나기가 지나가는 모습을 넋 놓고 지켜봤다. 비가 그치자 강 건너편에 있는 산과 건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럴 때마다 더위가 잠시 한풀 꺾였지만 다시 그 자리에 땡볕이 머문다. 냉탕과 온탕의 연속이다. 밤 9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신선한 기운이 이어진다.
자연이 주는 바람은 전기가 없어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누구나 누릴 수 있다. 나는 이 최고의 공공재인 바람을 마음껏 누리면서 올여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한 생명, 오랫동안 땅을 기반으로 살아온 이들을 짓밟는 일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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