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 휴가철 살인물가, 살아날 구멍은 있다

권진현 2024. 7. 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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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웃는 얼굴, 비용 걱정 없는 '물놀이터' 찾아보면 곳곳에...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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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현 기자]

아버지는 건설현장 노동자였다. 동이 트기 전부터 시작된 콘크리트 타설 현장의 하루는 할당된 작업량이 다 채워져야 종료되었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맞던 아버지는 여름철만 되면 자주 더위를 먹고는 했다. 당신은 40대가 된 내 나이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일을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삶에 휴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사무직 노동자다. 뜨거운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아버지와는 달리 나는 하계휴가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는 1년 중 유일하게 일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 온전한 쉼을 통해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휴가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고 있다. 정확히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부터였다. 모든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아이들이 되면서, 휴가 또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맞춰지게 되었다. 
 
 서울 전역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물빛광장을 찾은 어린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2024.7.10
ⓒ 연합뉴스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방학기간은 대부분 7월 말~8월 초이다. 학령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의 휴가가 이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이 기간은 자연스럽게 '극성수기'가 된다. 어디를 가나 사람에 치이고 살인적인 고물가에 한없이 위축되지만, 별다른 대안은 없다. 

부르는 게 값인 휴가철, 그래도 걱정 없이 갈 수 있는 곳

성수기 시즌에는 부르는 게 값이다. 성공적인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는 금전적인 준비는 물론 마음가짐을 단단히 하는 것 또한 필수이다. 비용이 비용인 만큼 휴가기간의 부모는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계획된 연휴 기간 동안 궂은 날씨를 맞이하거나 아이들이 아프기라도 한다면, 유리 같은 부모의 멘탈은 '파사삭' 무너지리라. 

누군가는, 돈이 없으면 불평하지 말고 조용히 '집콕', '방콕'이나 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팍팍한 맞벌이의 삶을 사는 경우, 양육자들이 아이들과 시간을 평소 충분히 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조금 덜 먹고 덜 갖더라도, 한 번이라도 더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 아닐까.
 
 지난 24일 오전 광주 북구 두암동 동강대학교 운동장에 개장한 야외 물놀이장에서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놀고 있다. 2024.7.24
ⓒ 연합뉴스
 
한주 내내 폭염으로 지친 아이들이 주말이 되자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휴가인 다음 주에 짧은 여행이 계획되어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주말에는 당연히(?) 밖으로 나가야 했다. 폭염과 무더위로 인해 유의하라는 안전 문자가 계속 날아오니 야외로 나가기는 부담스러웠다. 에어컨이 빵빵한 키즈카페가 떠올랐지만, 그래도 다음 주를 위해 최대한 소비를 줄여야 했다. 

아이들은 물놀이가 하고 싶다며 꽥꽥 외치다 시피 했다. 하지만 물놀이를 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이들, 그리고 아이들마다의 옷과 먹을거리를 챙겨서 먼거리를 이동하는 여정은 체력 소모가 꽤 크다.

장소 선정도 쉽지 않다. 해수욕장은 물이 깨끗하지 않고 사람이 많은 데다가, 샤워시설이 불편하다. 워터파크는 비용이 많이 든다. 소독된 물에서 놀고난 뒤 피부가 가려워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계곡? 계곡은 주차가 불편하고 별도의 안전요원이 없어 물놀이 사고의 위험이 있다. 

"여기 한 번 가보자."

아내가 말한 곳은 일명 '물놀이터'였다. 넓은 공간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며 뛰어놀 수 있는 곳인데,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곳에 물놀이터가 있었다. 우리는 부산에서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 경남 의령의 '서동생활공원'이라는 곳을 선택했다. 
   
드디어 도착. 직접 가보니, 만족도는 꽤 높았다. 우선 공짜였다. 물놀이 복장과 먹을거리만 준비되어 있으면 운영시간 내내 마음껏 놀 수 있게 돼 있었다.

물놀이터를 외곽으로 그늘막이 있어 돗자리를 깔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가까이에 화장실이 있고 크지는 않지만 탈의실 겸 샤워실도 있었다. 도심 한복판이 아니라서 그런지 극성수기 시즌임에도 '오픈런' 없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음이 펴지는 느낌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물놀이터. 덕분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권진현
더구나, 곳곳에 비치된 안전요원들 덕분에 마음 편히 놀 수 있었다. 그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친절하고 밝게 아이들을 대해주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3~4세부터 10살 이하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일 지켜보니 아이들이 노는 내내 조금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워터 슬라이드, 바닥분수, 대형 풀장 등 다양한 시설을 즐기며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50~60cm 얕은 수심이었지만, 어린아이들을 배려해 튜브를 무료로 대여해 주었다. 둘째와 함께 물속에 있는데 모르는 꼬마 아이들이 갑자기 나에게 장풍을 쏘아댔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놀이터에는 대략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어린 자녀들과 그들의 부모였고, 간혹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보였다. 외국인 가족들도 더러 있었다.

놀면서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살펴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방이 웃는 얼굴로 가득하니까, 평소엔 딱딱하고 경직돼 있던 내 얼굴에도 조금씩 웃음이 번져갔다. 주야로 격무에 시달려 쪼그라든 마음이 점차 펴지고 회복되는 것 같았다.
  
일박에 수십 만 원 하는 풀빌라나 펜션에 견주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재밌게 노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대형 워터파크에 비한다면야 다소 시설은 열악하고 스케일도 작았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는 듯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놀았다. 놀이터에 도착해서 입장권 팔찌를 받으며 부산에서 왔다고 하자, '멀리서도 오셨다'며 환하게 웃어주던 접수처 직원의 친절함이 참 고마웠다. 

성수기 시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가 부담된다면, 자녀들과 함께 근처 물놀이터를 찾아 한 번 가보는 것은 어떨까.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더라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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