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PICK]‘임산부 명사수’가 ‘엄마 은메달리스트’로…금지현이 은메달로 쏜 울림
‘임산부 명사수’가 해를 넘겨 ‘엄마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2년 전 임신 상태로 2024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내 감동을 자아냈던 금지현(24). 귀한 맏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한 뒤 맞이한 생애 첫 번째 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따내며 엄마 사수로서의 새 인생을 힘차게 열었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을 후배들을 향한 진심 어린 당부도 잊지 않았다.
금지현은 27일(현지시간) 프랑스 앵드로주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대회 10m 공기소총 혼성 경기에서 2000년생 동갑내기 박하준과 함께 한국 선수단의 파리올림픽 첫 번째 메달을 일궜다. 중국과 치른 1·2위 결정전에서 승점 12-16으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실 금지현은 대회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에이스 박하준이 아닌 최대한과 혼성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다. 그런데 샤토루 현지에서 감각이 크게 올라오면서 반효진을 대신해 박하준의 짝꿍이 됐다. 이 승부수는 적중했고, 금지현과 박하준은 생애 처음으로 나선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1m54㎝의 작은 키에도 5㎏가 넘는 공기소총을 흔들림 없이 잡는 금지현은 이번 파리올림픽 출전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시계는 2022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을 앞두고 병원을 찾았다가 덜컥 임신 사실을 알았다.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당시에는 2세 계획이 없던 상태라 부부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소중한 아이의 탄생을 기뻐하며 정성스럽게 출산을 준비했고, 지난해 5월 어여쁜 공주님을 낳았다.
‘엄마의 힘’은 출산에만 그치지 않았다. 금지현은 만삭의 몸으로도 현역의 끈을 놓지 않았다. 체중이 불고,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도 태아와 함께 사로를 지켰다. 아이를 밴 상태로 어떻게 총을 잡느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지만, 일과 가정을 함께 꾸리고 싶다는 목표 아래 임산부 사수의 길을 자청했다. 그 결과가 파리올림픽 출전권 획득이었고, 마침내 샤토루에서 은메달로 꽃을 피웠다.
금지현의 이러한 스토리는 지난해 5월 중앙일보가 기획한 〈스포츠계 저출산, 엄마선수가 없다〉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로 알려졌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계속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지현은 “임신하면 소속팀에서 잘릴 수 있어 눈치를 보는 선수가 많다. 대놓고 ‘뱃속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몰아세우는 이들도 있다”며 임신한 여자 선수가 뒤로 밀려나는 국내 스포츠계의 현실을 토로했다. 특히 금지현이 만삭의 몸으로 총을 잡은 사진 하나는 적잖은 울림을 줬다.
지난해 인터뷰 이후 1년 뒤 샤토루에서 다시 만난 금지현은 더욱 성숙한 엄마가 돼있었다. 아이를 위해 더욱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엿보였고, 후배들을 위해 멋진 ‘워킹맘’ 선배가 돼야겠다는 사명감도 느껴졌다.
금지현은 “임신을 한 뒤 ‘너는 애국자다’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임신 기간의 슬럼프를 극복했다”면서 “선수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시선에도 기죽지 말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해낼 수 있는 후배들이 나왔으면 한다. 나 역시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해서 선수로 뛸 수 있는 선배가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금지현은 대회 기간 내내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터라 대화를 나눌 수는 없지만, 멀리서나마 아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압박감이 사라지는 눈치였다.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메달을 따면 둘째를 낳겠다”고 공약했던 금지현의 다음 목표도 더욱 분명해졌다.
“2세 계획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겠죠. 그래도 둘째 낳고 다음 올림픽 갈게요!”
샤토루=고봉준 기자 ko.bong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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