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없는 태권도에 반해"…난민팀 기수 시리아 '태권청년'의 꿈
"가장 선두에서 깃발을 들고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를 밟은 건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2024 파리올림픽 남자 태권도 68㎏급에 출전하는 시리아 난민 선수 야히야 알 고타니(21)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고타니는 지난 27일(한국시간)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서 난민올림픽팀(12개 종목 총 37명)을 대표해 기수로 나섰다. 오륜기가 새겨진 깃발을 든 고타니가 이끈 난민팀은 그리스에 이어 둘째로 입장했다.
난민팀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건 2016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와 2020 도쿄 대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주기 위해 팀을 꾸렸다. 그래서 별칭도 '1억 명을 대표하는 하나(1 in 100 million)'다. 1억 명은 전 세계에서 집계된 난민(Refugee)의 숫자, 하나는 이들을 대표해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난민팀을 상징한다.
지난 27일 파리의 올림픽선수촌에서 만난 고타니는 "기수의 임무를 마쳤으니, 지금부턴 경기에 집중하겠다.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하며 생애 첫 올림픽을 준비했다. 경기장에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기울인 노력의 100%를 발휘하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2003년생으로 21세인 '태권 청년' 고타니는 시리아 난민이다. 조국 시리아는 매일 같이 총성이 들리고 포탄이 터지던 지옥이었다. 결국 8세 때인 2011년 내전으로 가족과 함께 요르단의 아즈락 난민캠프로 피신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어려워 거대한 감옥 같은 난민 캠프에 갇혀 지냈다. 현재 부모님과 6명의 동생들(남 4명·여 2명)과 2대의 카라반에서 생활 중이다.
무언가는 배우기가 쉽지 않은 그곳에서 고타니는 14세 때 태권도를 만났다. 친구 따라 우연히 세계태권도연맹(WT)의 지원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고타니는 태권도에 빠져들었다. 고타니에게 태권도는 난민캠프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를 배우고 세상과 통할 수 있는 소통 창구였다. 체계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해 5년 만에 2단을 땄다.
2018년 조정원 WT 총재가 세운 태권도박애재단(THF)에서 아즈락 캠프에 휴메니테리안 태권도 센터를 건립하면서 고타니는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기량도 국제 대회에 나설 정도까지 오르면서 파리올림픽 초청까지 받았다. 그는 "태권도는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승패를 가리는 '전쟁'이 아니다.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차별'도 없다. 다함께 정신과 신체를 단련하는 스포츠라서 반했다"고 말했다.
태권도를 수련하며 고타니는 한국에 푹 빠졌다. 그는 WT와 대한태권도협회의 지원을 받아 지난해 7월부터 4개월간 한국에서 올림픽 대비 전지훈련을 했다. 고타니는 "태권도 종주국 한국에서 훈련한 것은 동기부여가 됐다. 롤모델인 태권도 레전드 이대훈(은퇴)도 만나보지 못해 아쉽다. 새콤달콤한 김치 맛을 잊지 못해 한국을 또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고타니에게 꿈에 관해 물었다. 그는 "언젠가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당차게 말했다. 그러면서 "난민인 내가 올림픽 무대에 선 것 자체가 기적이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전 세계인과 1억 난민들에게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자신을 믿어라. 그럼 꿈은 이뤄질 것이다!'"며 웃었다.
파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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