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몸값 5배 '손정의 매직'…AI에선 통할까 [테크토크]

임주형 2024. 7. 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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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 이번엔 AI 사업 투자 도전
과거 ARM 몸값 5배로 불린 선견지명
AI 칩 분야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관심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다시 한번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섭니다. 무려 1000억달러(약 138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동원해 인공지능(AI) 벤처에 투자하기로 한 겁니다. 궁극의 AI를 개발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되는 일명 '이자나기 프로젝트'입니다.

손 회장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항상 다사다난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자금난 때문에 미국 저택을 담보로 잡히는 등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지요. 그런 그가 항상 '불사조'처럼 다시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리 수조원대 피해를 보더라도 가장 핵심적인 투자만큼은 성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ARM처럼 말입니다.

ARM 몸값 5배 불린 손정의

정기주총서 발언하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이미지출처=AFP 연합뉴스]

소프트뱅크는 2016년 영국 ARM 홀딩스를 320억달러(약 44조원)에 인수했습니다. 이후 8년 만인 현재 ARM은 미 나스닥에 상장한 상태이며, 시가총액은 1600~1800억달러대(약 220~250조원)에 달합니다. 소프트뱅크는 여전히 ARM 지분의 9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무려 기업 가치를 5배 올린 '잭폿'에 성공한 셈입니다.

ARM의 성공에 힘입은 손 회장은 또 다른 일생일대의 베팅에 나섰습니다. 최근 소프트뱅크는 영국의 AI 반도체 기업 '그래프코어'를 인수했습니다. 인수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매체를 종합하면 4억~6억달러(약 5500~8300억원) 사이로 추정됩니다.

이 기업은 한때 7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손꼽혔습니다. 기업 가치는 20억달러(약 2조7720억원)를 넘어섰지요. 하지만 AI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엔비디아의 독점 체제를 유지 중이며, 그래프코어를 비롯한 AI 반도체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습니다. 손 회장은 그래프코어가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사실상 헐값으로 회사와 지식재산권(IP)을 통째로 집어삼킨 셈입니다.

범인공지능 핵심, AI 반도체 기업 인수

지난 12일(현지시간) 소프트뱅크는 그래프코어 인수합병을 공식화했다. [이미지출처=그래프코어 홈페이지 캡처]

그렇다면 왜 굳이 그래프코어일까요. 이미 성공적인 엔비디아나, 혹은 다른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사에 투자할 수도 있을 텐데요. 소프트뱅크는 그래프코어를 인수한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단 소프트뱅크는 성명에서 "차세대 반도체 및 컴퓨팅 시스템은 범인공지능(AGI)으로의 여정에 필수적"이라며 "그래프코어는 기술 경제의 선도적 고용주이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고도로 숙련된 일자리 창출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프코어는 엔비디아 GPU의 대항마 중 하나인 지능처리장치(IPU)를 개발하는 기업입니다. IPU는 AI 훈련 및 추론에 보다 최적화된 설계로 유명합니다. 1000개가 넘는 코어를 칩에 배열했으며, 각 코어에는 SRAM 메모리가 탑재돼 전체 메모리 용량을 높이는 동시에 병렬 컴퓨팅 능력을 강화했습니다. 두 요소 모두 AI 구동에 필수적인 기능입니다.

하지만 IPU를 비롯한 'GPU 대항마'는 현시점에선 빅 테크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래프코어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나이젤 툰은 외신들과의 인터뷰에서 '자본 문제'를 그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즉, 신생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초기 자본이 필요한데, 그래프코어가 유치한 7억달러 남짓한 금액으로는 어림도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래프코어는 매년 2억달러(약 2700억원) 넘는 금액을 직원 연봉과 연구개발(R&D)에 지출했습니다. 하지만 엔비디아와의 실질적인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갔습니다. 엔비디아는 자체 R&D도 매년 수조원대를 지출하는 데다, 막대한 자본력을 동원해 핵심 기술 업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래프코어 같은 스타트업에는 불가능한 선택이지요.

손정의 매직 또다시 가능할까

소프트뱅크는 ARM 홀딩스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소프트뱅크가 그래프코어를 인수한 건 IPU라는 제품의 잠재력보다는, 그래프코어가 지금껏 성장시킨 '팀'에 더 가치를 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기업의 공동 창업자인 나이젤 툰과 사이먼 놀즈는 2011년부터 AI 칩 설계를 구상해 왔습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GPU 기능을 물리학, 시뮬레이션 등 과학 분야에 접목하기로 한때와 비슷한 시기입니다.

또 그래프코어는 창업 이래로 현재까지 약 400명의 정예 칩 설계 팀을 쌓아 올렸으며, 이들이 축적한 노하우와 숙련도는 적어도 스타트업 중에선 최고 수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에게 '실탄'만 쥐여 준다면 현재의 엔비디아 천하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뭔가를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셈법일 겁니다.

사실, 소프트뱅크는 ARM을 인수할 때도 유사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영국 런던 증시 상장 기업이었던 ARM은 이미 모바일 칩 설계 부문에선 여지없이 최고의 기업이었지만,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R&D 자금을 마련하기 힘들어 고심이 깊어지던 때였습니다.

이때 시의적절하게 소프트뱅크 산하에 들어간 덕분에 한동안 적자를 감수하고 기술 투자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지금처럼 AI·서버 칩·오토모티브 칩 등을 망라하는 고성장 기업으로 재정비할 수 있었던 겁니다.

결국 높은 잠재력을 가진 기업을 정확히 골라내, 그 기업이 진짜 가치에 도달할 수 있을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게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의 생존 비결이었습니다. 과연 '손정의 매직'은 AI 칩 사업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을까요.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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