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매직넘버' 확보 해리스 "트럼프 잡는다"…필살기는?
흑인 표심 회복·검찰 출신 이력 강점
모호한 대중 노선·불법 이민 대응은 숙제
전·현직 대통령의 리턴매치로 여겨졌던 11월 미국 대선의 구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고령 리스크를 끝내 극복하지 못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에서 하차하면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매직넘버'를 하루 만에 확보하며 자신이 명실상부한 '포스트 바이든'임을 보여줬다. 문제는 '트럼프 대세론'을 뒤집을만한 경쟁력을 갖췄는지다. 성별, 인종, 나이, 이력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따른다. 이번 미 대선 최대 이슈인 이민과 대중 정책 등을 놓고 해리스 부통령이 얼마나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매직넘버’ 확보한 해리스…' 포스트 바이든'은 바로 나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직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민주당 집토끼들은 바통을 넘겨받은 해리스 부통령을 중심으로 빠르게 집결하는 모습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AP통신 자체 집계에서 하루 만에 민주당 대의원 2668명의 지지를 확보한 해리스 부통령은 26일 기준 대의원 3359명을 확보한 상태다. 대선 후보 지명에 필요한 매직넘버(단순 과반)인 1976명을 훌쩍 넘긴 셈이다.
집토끼들도 돌아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을 필두로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일제히 해리스 부통령 지지를 선언한 것은 물론 정치자금 기부를 중단해왔던 민주당 '큰손'들까지 속속 복귀하고 있다. 해리스 캠프는 대선 출마 계획 발표 24시간 만에 88만8000명의 기부자로부터 8100만달러(1125억원)를 모금했다고 밝혔다. 고액 기부자의 세부 후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링크드인 공동창업자인 리드 호프먼, 월가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 등이 지지 대열에 합류한 상태다.
여론조사 결과도 괄목할만하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 발표 직후 모닝컨설트의 여론조사에서 45%의 지지율로 트럼프 전 대통령(47%)을 2%포인트 차이로 따라붙었던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22~23일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유권자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양자 가상대결 조사에서 지지율 44%를 기록해 트럼프 전 대통령(42%)을 2%포인트 역전하는 데 성공했다. (오차범위 ±3%포인트). 뉴욕타임스(NYT)는 "해리스는 바이든이 선거에서 물러나 그녀를 지지하기로 한 지 불과 이틀 만에 11월 트럼프의 대항마로서 민주당에서 거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맞대결은 성별(남녀), 인종(흑백), 세대(트럼프 78세·해리스 59세) 등 태생적으로 주어진 배경에서도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의 나이는 59세다. 바이든 대통령을 끌어내린 고령·건강리스크가 부메랑이 돼 이제 그와 불과 3살 차이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몫으로 돌아온 셈이다. 최근 공화당 전당대회에 앞서 실시된 WP·ABC뉴스·입소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60%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를 더 수행하기에 너무 늙었다고 답했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타이틀에 도전하는 해리스 부통령이 아시아계·흑인이란 점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민 정책에 실망해 돌아섰던 흑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회복하는 데도 효과적이란 분석이 나온다. 최근 CNN-SSRS 여론조사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흑인 유권자 사이에서 지지율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78% 대 15%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과 6월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보인 리드폭(70% 대 23%)보다 격차가 확대된 것이다. 이에 경각심을 느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을 비롯한 공화당 지도부는 소속 의원 및 당원들에게 해리스 부통령의 인종과 성별은 언급하지 말고 업적을 비판하는 데 집중할 것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태생적 배경 외에도 해리스 부통령이 지닌 전직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이란 이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협할만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첫 대선 유세 장소로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밀워키를 선택한 해리스 부통령은 "난 검사 시절 온갖 종류의 범죄자를 상대했다"며 "도널드 트럼프 같은 유형을 잘 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새롭게 재편된 대선 구도를 '검사 대 범죄자'로 정의한 셈이다. 앞서 4개 형사재판을 진행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성추문 입막음 돈' 재판에서 34건의 혐의가 인정돼 유죄 평결을 받은 바 있다.
문제는 정책…바이든 그늘 벗어날까문제는 약점을 드러냈던 바이든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얼마나 차별화를 할 수 있을지다. 바이든 정부에 오랜 기간 몸담았던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돼도 바이든 정책의 연장선이 될 것이란 평가가 잇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의 극단적인 낙태 금지령을 중단할 것"이라며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최근 미국을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미 의회 연설에 불참하기도 했다. 이는 친(親)이스라엘 기조로 민주당 골수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온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정책과 거리를 두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의 최대 취약점으로 꼽히는 불법 이민 문제도 해리스 부통령을 따라다니며 괴롭힐 전망이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 등에 따르면 2020년 40만건이었던 불법 월경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인 2021년 165만건으로 4배 이상 폭증했다. 지난해 12월엔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인 30만여명이 미국에 불법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부 서열 2위인 해리스 부통령이 책임을 피해 가긴 어려운 대목이다. 이 점을 파고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4일 노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해리스가 계속 국경 차르를 맡는다면 매주 피에 굶주린 강간범들이 우리의 자식들을 쫓을 것"이라며 맹비난했다.
독자적인 대중 정책 노선이 없는 것도 해리스 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다. 해리스 부통령은 재임 기간 방중은 물론 중국 측 주요 인사와의 특별한 교류 경험이 없어 바이든 정부의 대중 정책을 답습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 싱크탱크 타이허연구소의 아이너 탕겐 선임연구원은 "중국 정책 측면에서 해리스는 부통령으로서 어떠한 정책 비전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다만 선딩리 상하이 푸단대 교수는 "해리스의 외교 정책이 어떻게 달라질지는 불확실하다"며 "치열한 선거운동에서 승산을 높이기 위해 트럼프보다 강경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60∼100% 폭탄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해리스 당선돼도 영향 제한적…자기 어필해야 승산"월가에선 '트럼프 대세론'과 해리스 부통령의 등판을 두고 시장의 미칠 영향을 저울질하는 분위기다. 투자은행 BTIG의 정책연구 책임자인 아이작 볼탄스키를 비롯한 월가 전문가들은 "해리스 부통령이 만약에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바이든 행정부의 연속선상이 될 것"이라며 시장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와 트럼프 2.0 출현을 선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세론을 뒤엎고 민주당에서 대통령이 배출되더라도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도 잇따랐다.
좌파 성향 언론으로 분류되는 워싱턴포스트(WP)는 "해리스는 내달 공식 대선후보 지명까지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며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겠지만 오히려 다양한 정책과 정치적 현안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야 승산이 있다"며 인플레이션과 재정적자를 유발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광범위한 학자금 대출 탕감, 임대료 완화, 중산층 감세 등 포퓰리즘 정책과 선을 그을 것을 주문했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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