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잘알X파일]"핵불닭보다 킹뚜껑"…K-라면 '매운맛' 지도
정부, 매운맛 등급 표기 권고했지만 전무
주요 제조사 생산 가장 매운 라면 '킹뚜껑'
최근 덴마크 정부가 삼양식품의 '핵불닭볶음면' '불닭볶음탕면'에 대한 리콜 조치를 해제했지요. "스코빌 지수 측정 방식에 오류가 있었다"는 우리 정부와 삼양식품의 지적을 받아들인 결과였습니다. 리콜 번복 해프닝은 악재였지만, 노이즈 마케팅이 되면서 호재라는 게 업계 반응이네요. K-매운맛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으니까요. 이처럼 매운맛은 K-푸드 인기의 원천입니다.
전국 맵찔이 "불닭 이후 매운맛 인플레이션…맵기 표시해야"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누구나 매운맛을 좋아하는 건 아니죠. 전국의 '맵찔이'들은 10년 전 불닭볶음면 출시 이후 매운맛의 기준이 너무 올라갔다며 불평합니다. 과거 매운맛의 기준이었던 '신(辛)'라면은 최근 나오는 매운 라면과 비교하면 '순(順)'라면이나 마찬가지라면서요. 매운맛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과거보다 신라면이 더 매워졌는데도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최소한 라면 봉지에라도 '매운맛' 정도를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사실 과거 라면의 매운맛을 등급화해 표기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농수산식품부는 2018년부터 라면의 매운맛을 순한맛·보통 매운맛·매운맛·매우 매운맛으로 나뉘어 표기하도록 권장했죠. 국내 소비자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에게 표준을 제공해 라면의 세계화를 위해서였는데요.
하지만 마트 라면코너에서 확인해본 결과 현재 정부의 매운맛 등급을 표시한 라면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삼양식품이 불닭볶음면을 비롯한 일부 제품에 매운맛 등급을 써놓았는데 이는 자체 지표인 BFL(Buldak Fire Level)이더군요. 라면 회사 관계자는 "라면은 식품의약안전처 관할인 데다 의무 표시 사항이 아니다보니 권장사항을 따르는 업체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름부터 무시한 염라대왕·불마왕·킹뚜껑·핵불닭…. 스코빌 지수로 보는 가장 매운 라면
그래서 전국의 맵찔이 혹은 맵부심을 과시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대신 물어보았습니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에 한정판을 제외한 주요 라면별 스코빌 지수(SHU)를 알려달라고 요청했지요. 스코빌 지수는 고추 등에 들어있는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 등의 농도를 측정하는 지표로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지수들이 꽤 있지만 식품사 관계자는 "게시자가 자체 측정한 것도 있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참고로 스코빌 지수는 1912년 미국 약사 윌버 스코빌이 개발했답니다. 당시에는 스코빌을 포함한 실험단이 고추 추출물을 물에 타 맛보면서 지수를 측정했다고 해요. 매운맛을 전혀 느끼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물이 필요한지가 지수를 결정했으니 실험단의 위와 장이 꽤 고생했을 듯 싶습니다.
조사 결과 국내에서 가장 매운 라면은 우리가 잘 아는 제조사의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름의 '염라대왕라면'이었는데요. 스코빌 지수가 2만1000SHU였습니다. 유튜브 등 SNS상에서 '맵부심'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들이 먹어 유명한 제품이죠.
다음으로 ▲금비유통 '불마왕라면' 1만4444SHU ▲팔도 '킹뚜껑' 1만2000SHU ▲삼양식품 '핵불닭볶음면' 1만SHU ▲팔도 '틈새라면' 9416SHU ▲하림 '장인라면 맵싸한 맛' 8000SHU ▲농심 '신라면 더레드' 7500SHU ▲농심 '앵그리 너구리' 6080SHU ▲삼양식품 '맵탱' 3종 6000SHU ▲오뚜기 '열라면' 5000SHU ▲오뚜기 '마열라면' 5000SHU ▲삼양식품 '불닭볶음탕면' 4705HSU ▲삼양식품 '불닭볶음면' 4404SHU ▲농심 '신라면' 3400SHU ▲삼양식품 '삼양라면' 매운맛 3000SHU ▲오뚜기 '참깨라면' 3000SHU ▲오뚜기 '진짬뽕' 3000SHU ▲삼양식품 '까르보불닭' 2400SHU ▲오뚜기 '진라면 매운맛' 2000SHU 순이었습니다.
물론 스코빌 지수의 함정이 있습니다. 열라면보다 스코빌지수가 낮은 불닭볶음면이 훨씬 더 매울 수가 있죠. 국물라면보다 스프를 더 많이 섭취하는 볶음라면의 매운맛이 더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운맛 인플레이션이 서글프게 느껴진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매운맛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으로 불리는 4대 맛과 달리 ‘통각’으로 인지되는 감각인데요. 매운맛을 보면 엔도르핀과 같은 행복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해요. 하지만 과도하면 위나 장에 좋지 않죠. 매운맛 열풍은 어찌보면 팍팍한 일상에 지친 이들이 값싸고 손쉽게 자신을 위로하는 수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적당히 즐기는 매운맛은 인생의 활력소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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