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신기록, '첨단기술'에 달렸다[파리올림픽]

김희윤 2024. 7. 2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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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바꾼 스포츠용품 기업의 첨단기술
기술도핑 논란 불러온 '탄소 섬유판' 러닝화
신기록 108번 갈아치운 전신수영복의 말로

올림픽은 국가와 선수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전쟁터다. 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의 기량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사용한 스포츠용품도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스포츠용품 기업 입장에선 4년마다 기술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셈이다.

벤슨 키프루토(33·케냐)는 지난 3월 도쿄마라톤에 아디다스의 초경량 러닝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1'를 신고 출전해 2시간 2분 16초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사진제공 = 아디다스]

앞서 지난 2020 도쿄올림픽 육상에서는 신기록이 쏟아지며 언론이 원인 분석에 나섰다. 먼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 은퇴 후 첫 올림픽에서 100m 챔피언에 오른 이탈리아 대표팀의 마르셀 제이컵스가 9초80으로 유럽 신기록을 갈아치우며 1위에 올랐다.

무명 선수의 혜성 같은 등장은 성공 신화로 자리 잡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기록이 실력이 아닌 신기술 덕분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가 경기에 신고 나온 신발이 이른바 '마법 신발'로 불리는 나이키의 탄소섬유 운동화 ‘줌엑스 드래건 플라이’였기 때문이다.

신발 밑창이 탄소 섬유판으로 제작된 이 신발은 무게는 일반 운동화와 비슷하나, 뛰었을 때 통통 튀어 오르는 스프링 같은 추진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지렛대 역할까지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대 운동생리학과 바우터 후그카머 교수팀은 탄소 섬유판을 넣은 운동화를 신고 달릴 경우 일반 운동화를 신고 달릴 때 대비 전체 에너지를 4% 절감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세계육상연맹은 계속되는 기술 도핑 논란에 시제품 신발의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을 새롭게 만들었다. 사진은 나이키의 줌엑스 드래건 플라이를 신고 뛰는 킵초게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지난 3월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 2분 16초로 결승선을 통과한 벤슨 키프루토(33·케냐)는 아디다스의 초경량 러닝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1'를 신고 출전했다. 남성 270mm 기준 일반 운동화 대비 40% 더 가벼운 138g으로 제작된 이 신발은 메쉬 소재, 경량 갑피 등을 차용해 무게는 획기적으로 줄이고 아웃솔을 안정화해 '역사상 가장 가벼운 러닝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케냐의 국민 영웅 엘리우드 킵초게(40)는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인류 최초로 2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 기록을 달성할 때 나이키가 그를 위해 특수제작한 줌엑스 베이퍼플라이를 신었다. 당시 경기는 이벤트 경기로 공식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이 차세대 러닝화는 기존 줌엑스 베이퍼플라이의 발뒤꿈치 부분에 탄소 섬유판을 넣은 것으로, 이 판이 스프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 과학자 로스 터커는 이 신발을 두고 "선수가 평지 대비 1~1.5% 경사 내리막길을 뛰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준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킵초게의 베이퍼플라이에는 발뒤꿈치에 탄소 섬유판이 3장 들어갔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의 마르셀 제이콥스(오른쪽)가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 80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왼쪽은 은메달을 차지한 미국의 프레디 컬리. 두 선수 모두 나이키의 '줌X 드래건 플라이' 스파이크를 신고있다. [사진 도쿄=AFP연합뉴스]

운동화를 둘러싼 '기술 도핑' 논란이 일자 세계육상연맹은 '특정 선수만을 위한 신발은 공식 대회에서 사용할 수 없다'며 공식 대회 신발 규정을 새롭게 발표했다. 제품명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킵초게만을 위해 만든 신발은 사용할 수 없도록 한 대목이다. 다만 '모두가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어야 한다'고 덧붙여 '킵초게 신발'의 모태가 된 줌엑스 베이퍼플라이는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연맹은 '신발 밑창의 두께는 40㎜ 이하여야 하고 탄소 섬유판은 1장만 허용한다'고 규정해 스프링 역할을 하는 신발 사용에 제재를 가했다.

사상 첫 마라톤 3연패를 노리는 킵초게는 이번 파리올림픽에도 나이키의 알파플라이3를 신고 경기에 나설 전망이다. 알파플라이3는 지난해 10월 2시간 1분 벽을 깨며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켈빈 키프텀이 시카고마라톤 경기 당시 착용한 모델이다. 키프텀은 지난 2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마라톤 여자 세계 1위인 티지스트 아세파(28·에티오피아)와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하는 페레스 제프치르치르(31·케냐)는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EVO1를 신고 다시 한번 메달 사냥에 나선다.

육상만큼이나 기술도핑 논란이 일었던 종목이 바로 수영이다. 2008년 스피도가 공개한 전신 수영복 ‘레이저 레이서’는 선수들을 단숨에 슈퍼 히어로로 만들었다. 많은 선수가 물에 대한 저항력은 물론 추가로 부력까지 제공하는 소재로 전신을 감싸고 물어 뛰어들었다. 스피도 자체 연구 결과 이전 세대 수영복 대비 저항력은 24% 감소하고 헤엄 효율성은 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폴리우레탄 소재 전신 수영복을 출시했고, 모두가 전신 수영복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자 2008년에만 세계 신기록이 총 108번 나왔다.

2008년 스피도가 레이저 레이서를 공개한 현장. 가운데 마이클 펠프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AP연합뉴스]

국제수영연맹은 논란이 계속되자 2010년 전신 수영복과 폴리우레탄 100% 수영복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막았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전신 수영복은 볼 순 없지만, 스피도는 신기술을 적용한 ‘LZR 인텐트 2.0’과 ‘LZR 발러 2.0’를 선보였다. 우주에서 위성을 보호하는 데 사용하는 코팅기술을 적용한 이 수영복은 발수성이 뛰어나 물속에서 선수 스피드를 더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스피도 측은 설명했다. 경쟁사인 티와이알은 마찰이 없고 표면 리프트 기술을 적용한 자체 기술 슈트 TYR Venzo를 파리올림픽 미국 수영 국가대표팀 공식 유니폼으로 공개했다.

한국 양궁은 경기뿐만 아니라 산업에서도 세계 1위로 통한다. 2020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의 주인공인 안산(23)과 김제덕(20)이 금빛 과녁을 명중시킨 순간 두 사람이 들고 있던 활 모두 국내 기업 윈엔윈 제품이다. 윈엔윈은 세계 양궁 시장 점유율 60%, 한국 양궁 시장 점유율 80%를 자랑한다. 올림픽에서도 상위권 선수 대부분이 윈엔윈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경기 중계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양궁 국가대표로 활동한 박경래 윈엔윈 대표는 은퇴 후 대표팀 코치와 감독을 맡아 1985년 세계선수권대회, 19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 올림픽, 9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녀 단체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20도쿄올림픽 양궁 국가대표 막내 듀오였던 김제덕과 안산은 모두 윈엔윈의 활을 사용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는 감독 시절 외국 활 제작사들과 보이지 않게 신경전을 벌이며 후배 양궁선수들이 피해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오롯이 우리기술로 만든 최고의 활을 주고 싶어 창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윈엔윈의 활은 타사 제품 대비 화살이 빠르게 날아가고, 정확한 탄착군을 만드는 동시에 선수의 실수도 보정 하는 제품이다. ‘꿈의 소재’ 그래핀을 사용해 진동을 최소화했다. 기존 카본 소재보다 충격 흡수율이 40% 이상 높다는 평가다. 2020도쿄올림픽에서는 일본 국가대표 양궁선수 전원이 윈엔윈 제품을 사용해 화제가 됐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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