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유행 '내면 개시는 위험' 무슨 뜻[日요일日문화]

전진영 2024. 7. 2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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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개시는 OO라도 위험"
독특한 취미·취향에
"그게 뭐야" 반박 두려워 생긴 표현
SNS 사용 잦은 MZ 특성 반영돼

좋아하는 가수 있나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가수 김경호 팬인데요. 그러면 보통 "머리 긴 사람?", "락커?", "달려가으아~"까지 하다가 결국 "너희 세대는 다른 사람 좋아하지 않냐", "보통 그럴 때는 아이돌 누구 말하지 않냐", "젊은 애가 특이하네" 등의 반응이 뒤따르곤 합니다. 응원봉 들고 콘서트까지 따라다니는 제 입장에서는 "아니 좋아하는 가수 물어봐서 대답했더니 왜……."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머쓱하지만 "취향이니 존중해주세요" 한마디하고 말죠.

네,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 '안물안궁' 정보를 왜 갑자기 알려주느냐. 일본에서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내면 개시는 OO라도 위험(?面開示は○○すら危?)'이라는 표현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거든요. 내 독특한 취향이나 취미 등을 함부로 공개했다가 무슨 소리 들을지 모르니 그냥 남들 다 아는 것으로 둘러댄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물어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닌데"하게 되는 것이죠. 단지 아이스 브레이킹일 뿐이니까요.

옥션이 과거 진행한 광고 캠페인 '취향존중' 캡쳐.(사진출처=옥션 유튜브)

X(옛 트위터)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이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등장인물 중 누구 좋아해?"라는 이야기에 "갈렌 마렉이요"라고 대답했다가 "걔가 누구야? 보통 그럴 땐 다스베이더나 요다 같은 거 말하지 않니"라고 한 소리 들었다 하는 이야기도 있네요. 그래서 결국 "내면 개시는 좋아하는 영화도 위험하다"라는 결론으로 수렴한다는 겁니다. 참고로 갈렌 마렉은 다스베이더가 몰래 양성한 마렉가의 마지막 후손으로’……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또 만화 좋아한다고 해서 뭐 좋아하냐 했더니 '짱구', '코난' 이런 알려진 거 말고 다른 거 말했다가 "너 오타쿠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우리나라의 '원나블(원피스·나루토·블리치)' 이외에 다른 만화 좋아한다고 하면 전부 오타쿠'라는 표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한마디로 "너의 마이너한 취향은 모르겠고 인사치레로 물어본 거니 너도 무리 없게 대답해"라는 측과 "그렇게 할 거면 대체 나한테 왜 물어봤어?"가 부딪힐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내면 개시는 좋아하는 가수라도 위험"이라고 쓸 수 있는 거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이 표현을 소개했는데요. 닛케이는 "현실에서 좋아하는 밴드명, 만화 제목, 자신의 어린 시절 등 내면과 관련된 일을 남에게 이야기했더니 한 소리 듣고 상처를 입었다는 글들이 있다"며 "좋아하는 가수나 만화 제목이 부담 없이 말하거나 들을 수 없는 프라이버시처럼 돼 버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이런 나만의 정보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나의 정보를 공개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가는 아이스 브레이킹의 과정을 '자기 개시'나 '내면 개시'로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불편하다는 것일까요? 닛케이는 "SNS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한 세대는 이를 함부로 말했다가 논란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기 이를 되도록 숨기려고 한다"고 분석했는데요. 괜히 분란 만들기 싫으니 상대에게 서로 거슬리지 않는 대답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닛케이는 심리학 전문가를 인용해 "이렇게 내 취향을 프라이버시로 숨기다 보면 표면적으로 사이는 좋겠지만 고독감을 갖기 쉬워진다"며 "반대로 용기를 가지고 내면을 보여준다면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내면개시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조언하는 일본 유튜브 채널.(사진출처=유튜브 멘탈리스트 다이고 채널)

한마디로 취향 하나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시대라는 것이죠. 요즘 MZ세대의 콘텐츠 소비는 파편화되고 분절화되고 있습니다. '초개인화'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예전처럼 "너 어제 개그콘서트 봤니?" 하면서 같은 문화를 모두가 공유하는 세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각자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만 해도 각양각색이고요.

그런데도 사회는 '표준'이라는 것을 정해놓고 이 이상의 범위를 넘나드는 것은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표준이나 유행은 언제나 바뀌기 마련입니다. 한때 촌스럽다던 Y2K 패션이 지금은 '안 입으면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요. 모두 다 아는 메이저가 정상, 마이너가 비정상은 아니죠. 취향 존중의 사회는 결국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일 수도 있겠습니다. 비단 일본뿐이겠습니까. 좀 특이해도 어떻습니까? 프라이버시로 남기고 마음을 닫기 전에 들어줍시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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