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北 대사에 인사해도 빳빳"…평양서 '접촉 금지' 지침 내렸나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 27일 라오스에서 현지 북한 대사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다가갔지만 "돌아보지도 않아 민망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적대적인 대남 기조에 따라 다자회의 계기에 남측과 만나더라도 '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수뇌부 차원에서 내렸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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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 멈추라 말하려 했는데…"
조 장관이 언급한 이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와의 조우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 라오스 비엔티안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의장국 주최 갈라 만찬에서였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 안보 협의체다. 이날 취재진에 포착된 사진을 보면 조 장관은 이 대사에게 직접 다가가 팔을 만지며 말을 걸었지만 이 대사는 뒷짐을 지고 조 장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와 관련, 조 장관은 이튿날인 28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를 모두 마무리한 후 기자들과 만나 "(만찬장에서) 이영철 대사를 보고 자리를 옮겨서 다가가 건드리면서 '인사합시다' 했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빳빳이 서 있더라"며 "저는 민망해서 그냥 돌아서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하라는 말을 하려고 다가갔는데 악수조차 안 됐다"며 "반응이 없는 사람을 붙잡고 매달릴 수는 없지 않나. 무슨 반응이 있어야 대화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날 이 대사의 냉랭한 태도가 최근 남북 관계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것은 물론, 북한 수뇌부의 별도 지시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과거 남북한은 ARF 계기 갈라 만찬에서 짤막한 대화를 나누거나 적어도 서로 마주 보기는 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외교관은 남북 관계에 따라 반응이 다르다"며 "지금 남북 관계가 극도로 안 좋으니까 평양에서 '(남측에) 대응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이번 ARF를 앞두고 외교가에선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을 통해 얻은 외교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표적인 친북 국가인 라오스에 최선희 외무상을 파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결국 최 외무상 대신 현지 라오스 대사가 참석한 데 대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최선희가) 와봐야 계속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고 즐거울 것 같지 않다"며 "와봤자 편하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러 간 불법 군사 협력이나 거듭된 도발에 대해 아세안은 물론 우방인 중국조차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을 북한도 의식했을 거란 취지다. 실제 이날 ARF 본회의장에서 이 대사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다른 참가국 대표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내내 홀로 앉아 소외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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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러 맞서 "호도 말라" 반박
한편 이번 ARF에서 조 장관은 거의 모든 양자, 다자 회의 계기에 북·러 군사 협력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다만 ARF 결과 문서인 의장성명에 북·러 군사 협력을 직접 겨냥하는 문구를 반영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비판 받는 당사자(북·러)의 반대가 심할 것이고 (이를) 신경 쓰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작다"고 관측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조 장관은 지난 2월 취임 후 처음으로 라브로프 장관과 약식 회동을 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이 이 자리에서 북·러 군사 협력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자 라브로프 장관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적 없다. 북·러 조약(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도 방어적인 것이지 공세적이지 않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에 조 장관은 "우리 안보에 위협이 되는 추가적인 발전이 없기를 바란다"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라프로프 장관은 이날 회동은 물론이고 직전에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도 한·미 간 이른바 '공동 핵 계획'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한·미 정상이 핵 협의 그룹(NCG) 공동지침 문서(가이드라인)에 합의한 데 대해 반발한 것이다. 북한도 이런 라브로프 장관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한다.
이에 조 장관은 "(한·미 핵 공동지침은) 북핵 도발을 억제하고 한·미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것인데 잘못된 비판(false accusation)을 하지 말라"며 "정당한 우리의 대응(response)을 호도하는 주장을 당장 중단하라"고 맞받았다고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전했다.
비엔티안=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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