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인간'이 아니었던 유일한 인간 김민기 [수산봉수 제주살이]
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인문학을 결합한 미디어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제주인과 나의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 <기자말>
[이봉수 기자]
▲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장례식장에 가수 고(故) 김민기(극단 학전 대표)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
ⓒ 학전 제공 |
▲ 작가이자 화가인 이현지의 우화집 <주머니 인간>에 실린 ‘주인공 인간’ 편 삽화. ‘주인공 인간’은 자기 세계의 주인이며 배경과 조연들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작품’에서 빠져나왔을 때 자신의 풍경을 진정으로 마주할 수 있다. |
ⓒ 이현지 |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떨친 김민기. 직함을 붙이기도 힘들어 그냥 '인간 김민기'라고 불러본다. 그가 떠난 뒤 수많은 이들이 글을 올려 추모했다. 그의 지인들은 저마다 경험한 '인간 김민기'의 삶을 조각조각 묘사했다. 모자이크를 통해 드러난 그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한 삶이었다. '뒷것'을 자처해온 건 겸양으로 해본 말이 아니었다.
지난 23일 서울 MBC저널리즘스쿨 강연 가는 길에 비행기편을 앞당겨 일찌감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에 관한 책 <김민기>를 쓰고 우리 키아오라리조트에서 '노찾사의 아주 작은 음악회'를 열었던 김창남-조경옥 부부는 문상객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김대중 정부 경제수석이던 김태동 교수,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 방송인 정관용 교수 등 오랜 지인들과 어울려 잠시 앉아있는 동안 낯익은 얼굴이면서도 제주로 이주한 뒤 몇 년간 만날 수 없었던 이들과 꽤 많이 인사를 나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죽어서 더 존재감을 뿜어내는 김민기가 사람들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다.
학전과 '지하철1호선'은 부활해야 한다
유족들에 따르면 그는 서너 달 전부터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면서 '그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실은 '지하철1호선' 등을 공연해온 '학전'의 간판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문화계와 문화행정의 '야만성'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고 싶었는데, 모두 다 내려놓고 떠나는 건 그의 의지였다고 한다. 학전을 유지할 후원 논의도 이뤄졌지만 '김민기 없이는 학전도 없다' '상업화는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전과 '지하철1호선'은 부활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유명한 문인이나 예술가들이 잠깐 묵어간 여관에도 명패를 붙여 그들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상업적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정치인 동상을 곳곳에 세우는 것보다는 뜻이 순수하지 않은가?
예술로 천민자본주의와 체제에 저항한 그였으니 지나친 상업화는 경계해야 되겠지만, 대중예술을 박제해 역사 속에 가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하철1호선'도 그의 음악도 이미 그를 떠나 대중의 것이 되었다. 1987년 시청광장 이한열 열사 노제 때 백만 군중이 '아침이슬'을 합창했다.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도 현장에 있었다고 말했다.
"앗, 뜨! 뭐 그런 느낌… 백만명이 부르는데, 그 백만명이 다 각자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부르는데 내가 그걸 뭐라고 감히 말하겠나? 그때 생각했다. 아, 이건 내 노래가 아니구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때도 그의 유언을 지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게 그의 뜻일지라도 추모객들은 어디 가서 애통함을 달랠 수 있으랴.
▲ ‘꿈밭극장’으로 변한 학전소극장. 김민기가 걸터앉곤 하던 극장 입구 축대 위 담벼락에는 그가 심은 나무와 능소화가 싱그러운데, 그도, 콘서트 1000회 기념 부조로 남은 김광석도 가고 없다. |
ⓒ 이봉수 |
▲ 발인 하루 전날 이른 오후, 학전소극장 담벼락 앞 축대에는 ‘아침이슬’을 생각나게 하는 소주병과 누군가 따라 놓은 맥주 잔, 불을 붙여 놓았던 담배 개비가 비에 젖고 있었다. |
ⓒ 이봉수 |
나를 홀린 건 처연하도록 고운 노랫말
김민기의 모든 노래는 선율도 아름답지만 나를 더 홀린 건 처연하도록 고운 노랫말이었다. '상록수' '친구' '작은 연못' '천리길' '백구' '늙은 군인의 노래' 같은 그의 노랫말에는 놀랍게도 외국어는커녕 오래전에 우리말이 된 한자말조차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학생들 글쓰기 시간에 그의 노랫말들을 스크린에 띄운 뒤 순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생동력을 가르친 적이 있다. 명사를 연결하느라 '의' 조사를 남발하지 말고 동사로 풀어 써야 말이 움직여 생동감이 살아난다고 강조한다.
의미심장한 내용도 쉽게 전달하는 우리말 구사 능력은 그의 노래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는 학전 배우들한테도 "배우는 모국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말의 생동감과 전달력에 매료돼 있었다. 미발표곡이어서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찌 갈거나'에도 한자말을 거의 쓰지 않았다.
'어찌 갈거나 밤은 깊은데 어찌 갈거나 길은 험한데
눈보라치는 얼음산 위에 내 집에 어찌 갈거나 오!
밤은 깊어도 길은 멀어도 두려울 것 하나 없음은
들판에 서서 바라다보니 내 이웃 기다리고 있네'
'아침이슬'에서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고 외쳤는데, 그는 지금 들판 어디쯤에서 이웃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그의 노랫말들은 각자도생의 시대상황에서 더욱 가슴을 친다.
'주머니 인간'의 돌연변이
▲ <주머니 인간> 책 표지(왼쪽)와 삽화(오른쪽). 춘천에 있는 달아실출판사는 <눈사람 자살 사건> <애완용 고독> <전생을 기억하는 개> 등 철학이 있는 우화 시리즈를 계속 내고 있다. |
ⓒ 달아실출판사, 이현지 |
<주머니 인간>을 읽으면서 '제자에게 배운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됐다. 삶과 죽음에 관한 생각을 30가지로 깊이 해본 적도 없지만, 우화 뒤에 붙어있는 삽화가 나를 매혹한다. 그가 그린 삽화들은 의미를 되새기며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책 제목이 된 우화 '주머니 인간'은 크고 작은 주머니가 무수히 달린 망토를 입고 있는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질주하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그 인간이 주머니에 채워 넣은 것은 성적표의 괜찮은 등수, '좋은' 학교, 각종 자격증과 공인 영어시험 점수, 번듯한 직장, 차나 집 같은 자산, 다정한 배우자와 귀여운 자식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주머니 인간'은 등허리가 뻣뻣해지고 다리가 무거워져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다. 그는 숨이 막히자 가득 찬 주머니들을 비워야 했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원래 나 자신의 것만 남기고 내가 아닌 것들부터 버리기로 한다. 시험 점수는 물론 그가 나온 학교도 직장과 직위도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다. 망토까지 벗어던진 '주머니 인간'은 비로소 '나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기다리며 사는가?
▲ 주민센터에 가든 병원에 가든 대기표를 뽑아야 순서가 돌아온다. 현대인의 삶은 ‘대기하는 인간’이다. |
ⓒ 이현지 |
'기다리는 인간'의 우화는 이렇게 끝나고 답이 없으니 독자로서 마음껏 상상하면 된다. 나는 번호표가 저승으로 가는 티켓이라고 생각했다. 제주에 온 뒤 죽음과 삶에 관한 생각, 곧 사생관(死生觀)이 꽤 바뀌었다. 4.3항쟁에 관한 책과 보고서 40여권을 읽고 부상자와 유족 등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너무나 억울한 죽음을 수없이 접했기 때문이다. 야당마저 침묵하고 언론이 '폭도'로 왜곡하는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대부분 도민은 목숨을 건지려고 한라산으로 대피했다가 오도가도 못해 초토화작전의 적이 되고 말았다.
제주도 산하는 피가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고 거의 전역이 공동묘지다. 사적 보복을 막아야 할 공권력이 미군정의 앞잡이로서 오히려 증오심과 보복을 부추기고 집행했다. 4.3평화공원위령제단에는 이름도 없이 누구네 몇째 아들이나 딸 식으로 표시된 위패도 많다. 출생신고도 안 한 상태에서 학살된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죽임을 당한 걸까?
죽음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듯한 제주생활
제주는 교육열이 높고 일본에서 귀환한 유학생도 많아 해방 직후 전국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나라를 제대로 세우는 데 동량이 될 만한 인재들이 거의 다 학살된 것이다. 뜻을 펴 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그들에 견주면 나는 오래 살았고 여러 번 사표를 낼지언정 하고 싶은 일도 해왔다. 언제 닥칠지 모르지만 죽음을 담담하게는 몰라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에게 삶의 질과 행복에 관해 강의하면서 행복감은 상대적인 감정이라고 말한다. 동료나 친척, 이웃과 비교하고,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면서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장관, 국회의원, 대학총장 등 잘 나가던 사람들 중 은퇴 후 행복감을 느끼는 이를 만난 적이 거의 없다. 행복한 노년생활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30여년에 걸쳐 부모상 부음을 주로 받았는데 요즘은 본인 또는 배우자 상을 알리는 부음이 부쩍 늘었다. '백세시대'란 말은 어느새 늙어버린 노인에게 위로의 말은 될지언정 현실은 다르다. 육체는 멀쩡해도 뇌는 일찌감치 내구연한이 끝나 치매 등을 앓게 된다. 노인병은 자식들에게 말 그대로 몸 바쳐 헌신한, 열심히 살아온 증거이건만, 병든 노인의 위엄은 찾을 길이 없다.
수많은 성인과 현자들이 죽음을 논하고 간혹 담담하게 최후를 맞은 것 같지만 속마음도 그랬을까 의문이다. 법정 스님도 입적할 때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의 책을 많이 발간하고 '임종'까지 한 샘터사 대표에게 들은 얘기다.
▲ 2021년 김민기 헌정 음악회 포스터. |
ⓒ 한겨레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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