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준-금지현, 한국 첫 '은메달 획득' 낭보…사격 10m 공기소총 혼성 준우승 [2024 파리]
(엑스포츠뉴스 권동환 기자) 한국 사격이 2024 파리 올림픽 첫 날 대한민국 선수단 첫 메달을 안겼다. 기대는 했지만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섣불리 입상을 점치지 못했던 종목에서 은빛 낭보를 전했다.
한국 사격은 3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은메달 하나만 따내는 수모를 겪었으나 이번 대회에선 첫 종목부터 메달을 거머쥐면서 향후 금메달 획득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10m 공기소총 혼성 종목에 나선 박하준(KT)-금지현(경기도청) 조가 활짝 웃었다.
박하준-금지현 조는 27일(한국시간) 프랑스 샤토루 국립사격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하계올림픽 사격 10m 공기소총 혼성 결승에서 중국의 성리하오-황위팅 조와 접전을 펼친 끝에 12-16으로 패해 은메달을 차지했다. 둘 모두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었다.
동메달은 카자흐스탄에서 온 이슬람 사트파예프-알렉산드라 레에게 돌아갔으며 독일 대표 막시밀리안 울브리히-안나 얀센 조는 4위를 차지했다.
박하준-금지현 조는 결승에 앞서 열린 본선에서 631.4점을 기록, 성리하오-황위팅 조(632.2점)에 이어 출전한 28개 조 가운데 2위를 차지하고 결승(금메달 결정전)에 직행했다. 결승에서도 사격에 관해선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 대표 선수들에 밀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추격전을 벌인 끝에 귀중한 은메달을 수확했다.
사격 10m 혼성 종목은 이번 파리 올림픽 첫 금·은·동메달 주인공이 가려지는 종목이어서 박하준-금지현의 은메달 가치가 더욱 빛났다.
박하준-금지현 조와 함께 출전한 최대한(경남대)-반효진(대구체고) 조는 본선에서 623.7점으로 22위에 그쳐 탈락했다.
10m 공기소총 혼성 종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혼성 종목 채택 움직임에 따라 3년 전 벌어진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됐다. 남자 사수와 여자 사수가 짝을 이뤄 각자 얻은 점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본선과 결승을 치르는 식이었다.
도쿄 올림픽에선 본선 1라운드를 통해 2라운드에 오르는 8개 조를 가려낸 뒤 여기서 1~2위가 결승, 3~4위가 동메달 결정전에 오르는 방식이었지만 이번 파리 올림픽에선 경기 방식을 바꿔 본선 2라운드를 없애고 바로 결승과 동메달 결정전 진출 조를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박하준-금지현 조는 변경된 방식의 혜택을 본 셈이 됐다.
본선에선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가 각각 30분 동안 30발씩 총 60발을 쏜다. 사격은 한 발 만점이 10.9점이다. 본선 만점이 654점이다.
박하준-금지현 조는 본선 총 3개 시리즈 중 1~2차 시리즈에서 선두를 달리며 결승행 청신호를 밝혔다. 둘은 첫 10발을 각각 쏘는 1차 시리즈에서 211.1점, 2차 시리즈에서 210.2점을 쏘며 1위를 지켰다. 3차 시리즈에서 성리하오-황위팅 조에 본선 1위를 내줬으나 3위 그룹을 1점 이상 여유 있게 제치고 은메달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 시간 쉬고 열린 결승전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었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 종목 금메달을 따낸 성리하오-황위팅은 둘 다 10대 후반으로 중국 사격이 내놓은 '천재'들이다. 성리하오는 도쿄 올림픽에서 16살 나이로 10m 공기소총 은메달을 따내 역대 올림픽 사격 최연소 메달리스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남여 소총을 대표하는 박하준과 금지현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10m 소총 혼성 메달 결정전은 한 발당 시간제한이 50초다. 남·녀 선수가 한 발씩 격발한 뒤 점수를 합산해 높은 팀이 2점을 가져가고, 낮은 팀은 0점에 그친다. 동점이면 1점씩 나누는 매치 플레이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방식으로 한 발씩 쏴 합산 점수를 가리고, 먼저 16점에 도달한 팀이 승리한다.
박하준-금지현 조는 초반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성리하오가 9.7점을 쏘는 실수를 틈 타 박하준과 금지현이 각각 10.3점씩 쏴 20.6-20.3으로 이겨 첫 2점을 따낸 것이다.
그러나 이후 3차례 시리즈를 연달아 내주면서 추격자 신세로 변했다. 중국은 특히 여자 선수인 황위팅이 2~4차 시리즈에서 10.8점, 10.6점, 10.6점을 맞히는 좋은 실력으로 성리하오의 들쭉날쭉한 점수를 만회했다. 한국은 2-6으로 뒤지게 됐다.
한국 코칭스태프는 흐름을 끊어야 겠다고 생각한 듯 작전 타임을 부르며 숨을 골랐고 이게 잘 먹혔다. 5차 시리즈에서 20.8점을 기록, 20.7점을 찍은 중국을 누르며 4-6으로 추격한 것이다.
다만 6-8로 두 점차 따라붙은 상황에서 중국이 8~9차 시리즈를 통해 4점을 챙기면서 승기를 잡아나갔다. 9차 시리즈에서 0.1점이 뒤져 2점을 빼앗긴 것이 뼈아팠다.
박하준-금지현 조는 좌절하지 않았다. 8-14로 몰린 상황에서 12~13차 시리즈를 연이어 쓸어담고 경기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기 때문이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한국 응원단이 환호성을 지르며 극적인 뒤집기 승리를 기원할 정도였다.
하지만 중국의 사격 천재들은 마지막에 힘을 발휘했다. 14차 시리즈에서 성리하오가 10.8점, 황위팅이 10.7점을 쐈다. 거의 만점에 가깝게 쏘다보니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박하준-금지현 조가 은메달을 확정지었다.
금빛 소식은 아니었지만 도쿄 올림픽에서 참패했던 한국 사격이 파리에서 부활할 수 있음을 알린 귀중한 은메달이 나왔다.
한국 사격은 역대 올림픽에서 금메달 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개를 기록할 정도로 강세를 드러냈다. 한국 스포츠의 효자종목이었다.
21세기 들어 세계적인 총잡이 진종오가 권총 종목에서 금메달 4개를 쓸어담는 등 최근엔 권총이 강세를 보였으나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 사격에 올림픽 1~2호 금메달을 안겨준 여갑순과 이은철이 모두 소총에서 낭보를 전하고 2000 시드니 올림픽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여고생 강초현이 은메달을 따내는 등 소총은 전통적으로 강한 종목이기도 하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선 여갑순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온 터라 좋은 기운을 받을 것으로 여겨졌는데 틀리지 않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당시 대회 전체 첫 금메달을 따내 스포츠라이트를 받았던 여 감독은 지도자로 변신한 뒤 참가한 파리 올림픽에서도 대회 전체 첫 은메달을 이끌었다.
한국은 도쿄 올림픽 이 종목에서 남태윤-권은지가 짝을 이뤄 출전했고, 동메달 결정전 끝에 4위로 대회를 마쳐 눈 앞에서 메달을 놓친 적이 있다.
박하준-금지현 조가 은메달을 떠내 아쉬움도 풀어냈다.
박하준-금지현 조의 메달은 코칭스태프의 혜안이 빚어낸 것이기도 하다.
당초 우리 사격 대표팀은 남자 소총 에이스 박하준과 무섭게 떠오르는 여고생 총잡이 반효진을 이 종목에 짝지어 투입하려고 했다. 박하준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이 종목에서 이은서와 호흡을 맞춰 동메달을 따내는 등 기량과 경험을 모두 갖췄다.
그러나 결전을 앞두고 한국 사격에 낭보가 전해졌다. 국제사격연맹(ISSF)이 지난 16일 홈페이지에 선수 랭킹포인트에 따른 파리 올림픽 국가별 출전 쿼터를 최종적으로 확정 공지하면서 한국은 이 종목에 한 팀이 아닌 두 팀이 출전하는 것으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사격 대표팀은 현재 또 다른 여자 소총 선수이자 '엄마 선수'인 금지현이 파리 현지에 도착한 뒤 더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고, 빠른 시간에 많이 쏴야 하는 혼성 종목 특성을 고려해 박하준 파트너를 반효진에서 경험 많은 금지현으로 교체했는데 이게 완전히 적중했다.
박하준과 금지현의 파리 올림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박하준은 28일 주종목인 남자 10m 공기소총 예선, 29일 같은 종목 결승에 출전한다. 31일과 8월1일엔 50m 소총 3자세에도 나선다.
금지현 역시 28일 여자 10m 공기소총 예선을 치르고 상위 8명 안에 들면 29일 결승에 나선다.
사진=연합뉴스, 파리올림픽 홈페이지
권동환 기자 kkddhh95@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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