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보급에 날개를 달아준 언해 불서

이호영 2024. 7. 27. 17: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동서 '조선전기 언해 불서의 기록 유산적 가치' 세미나 열려... 세계적인 기록 유산 마땅

[이호영 기자]

▲ 조선전기 언해불서의 기록 유산적 가치 세미나 안동에서 열린 세미나에 불교계, 학생 등이 참여하였다.
ⓒ 이호영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을 백성에게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언해 불서 덕분이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잘 아는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월인석보> 등이 그러하고 <능엄경언해>, <원각경언해> 등 불경 언해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저희들은 이 언해 불서를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고자 합니다."

경북불교문화원 도륜 이사장 스님은 26일 안동에서 개최된 '조선전기 언해 불서의 기록 유산적 가치' 세미나 개회사를 통해 언해 불서의 중요성과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거듭 설명하였다.

지난해부터 경상북도와 경북불교문화원에서는 언해 불서의 세계 유산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시대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훈민정음의 보급 과정에 큰 역할을 했던 언해 불서를 주목하고 이를 세계적인 기록 유산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언해 서는 당시 한문으로 된 불경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고 토를 달아 백성들이 훈민정음을 배우도록 한 책이다. 
 
▲ 언해불서 기록 유산적 가치 세미나 튀르키예 에르지예스대학교 정진원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호영
 
"<월인석보>는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아준 책입니다. <월인석보> 25권 가운데 현재 발견된 권수만도 20개이고 보물 등으로 등재돼 있습니다. <월인석보>는 조선 최초 훈민정음으로 쓴 한글 대장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미나에서 '조선 전기 월인석보의 세계기록유산적 가치' 논문을 발표한 튀르키예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진원 박사는 <월인석보>는 조선 대장경의 시작이고 집단 지성의 협업을 통해 만든 책으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 글자를 백성에게 보급하는 데 지대한 공로를 세웠다고 말한다.
 
▲ 어제 월인석보 서 조선 세조 때 발간. 정진원 교수 논문에서 발췌
ⓒ 정진원
 
<월인석보>는 조선 세조가 대군시절에 지은 <석보상절>과 세종이 이를 보고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합해 1459년 세조 5년에 탄생했다. 이 책 앞부분에 <훈민정음언해본>이 들어있다. <훈민정음언해본>을 통해 백성들이 누구나 훈민정음을 배우고 익히기를 원했다.
당시 <훈민정음해례본>이 있었겠지만 이 책은 500년 가까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돼 현재 간송미술관에 있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해례본>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훈민정음(한글)의 제자원리와 운용법 등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 언해불서의 기록유산적 가치 세미나 동국대 교육연구원 하정수 박사가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호영
 
역시 세미나에서 동국대학교 교육연구원 하정수 박사는 '고양 원각사 소장 <능엄경>의 서지와 판본 연구' 발표 논문을 통해 <능엄경>에 기입된 한글 묵서 등이 간경도감이 처음 발간한 <능엄경언해>의 번역 사업에 이용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백성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불경에 주목했던 것 같다.
유교를 중시한 조선이었지만 여전히 불교는 백성들의 종교이었기 때문에 백성들과 가장 많이 접촉할 수 있는 사찰과 불경을 통해 훈민정음을 보급했고 그 결과로 불경 언해서가 많이 생산된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세조 때인 1561년에 불경 발간처인 '간경도감'이 중앙에 설치되었고 개성과 안동, 상주, 진주, 전주, 남원 등에 분소가 생겼다. 안동 분소는 '광흥사'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광흥사' 사찰 측은 1940년 <훈민정음해례본>과 2008년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도 이곳에서 발간됐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와 광흥사, 대원사 등 안동지역 사찰에서는 <훈민정음해례본>의 귀향과 훈민정음의 세계화 등에 힘쓰고 있다. 특히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난 뒤 보급 과정에 앞장선 언해 불서를 발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목록화해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경북불교문화원은 8월 9일 '조선 전기 언해 불서의 기록 유산적 가치' 학술대회를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하고 이어 8월 30일과 9월 13일 소규모 논문을 발표하는 세미나를 연속으로 계획 중이다.
 
▲ 언해불서의 기록유산적 가치 세미나 발표자와 토론자, 관계자 참석
ⓒ 이호영
 
조선 시대 언해 불서는 훈민정음 창제 직후인 세종 대에서 세조 대에 걸쳐 대부분 간행되었다. 현재까지 대략 200여 책 이상의 언해 불서가 사찰이나 국내 연구기관 및 개인 소장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경북 불교 문화원은 이 가운데 훈민정음 보급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15세기에서 16세기 문헌을 목록화 하고 하고 있다.

"언해 불서의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재는 불교가 한글 창제 및 보급의 주체임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아울러 불교 사상이 민간에 수용되어 민족 정신의 근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등운 주지스님은 훈민정음 문자보급에 앞장선
'언해 불서'에 대해 전 국민이 많은 관심을 촉구하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으로 등재되는 날까지 종단 차원에서 힘쓰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