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 남북…조태열 팔 잡고 말 걸었지만, 北대사 쳐다도 안봤다

박현주, 김한솔 2024. 7. 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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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라오스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북측 대표를 만나 먼저 말을 걸었지만 북측은 눈길도 주지 않고 냉랭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남측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거리를 두는 기조를 이어가는 것으로 풀이된다.

26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내셔널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갈라 만찬에서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조태열 외교장관을 흘깃 쳐다보며 입장하는 모습. 뉴스1.


지난 26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계기로 열린 의장국 주최 갈라 만찬에는 한국 측에선 조 장관이, 북한 측에선 이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참석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 안보 협의체로 동남아 국가들을 주축으로 남북한은 물론이고 미·중·일·러 등 한반도 현안에 이해관계가 있는 주요국 외교장관이 모두 참석한다.

이날 이 대사보다 약 5분 늦게 만찬장에 입장한 조 장관은 이 대사를 보고선 그를 불렀지만 이 대사는 못 들은 것처럼 앞만 보고 걸어갔다. 이후 조 장관은 이 대사에게 직접 다가가 팔을 만지며 말을 걸었지만 이 대사는 뒷짐을 지고 조 장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 장관은 이 대사가 반응이 없자 곧바로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이 대사는 만찬에 앞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서도 북·러 협력, 오물풍선 살포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묵묵부답했다.

조태열 외교부장관이 26일(현지시간)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만찬에 참석해 이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에게 다가가 팔을 건드린 뒤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앞서 조 장관은 지난 25일 라오스 입국길에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북한 대표단을 만나면 어떤 언급을 할지 묻자 "(북한 측이) 대화에 응할지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비핵화에 관한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하고 대화에 열려 있단 입장을 밝히겠다. 불법 도발 행위를 중단하고 러시아와 밀착과 군사 협력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26일(현지시간)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만찬에 참석하며 조태열 외교부장관 인근을 지나가는 모습.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그러나 조 장관의 예상대로 북측이 전혀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서 ARF를 계기로 한 남북 고위급 외교 당국자 간 소통은 불발되는 모양새다. 27일 비엔티안 NCC에서 열리는 ARF 본회의에도 이 대사가 참석할 전망인데 이 자리에서도 남북 간 의미 있는 교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 대사는 이날 ARF 회의장으로 들어가면서도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한국 취재진이 다가가자 경호원이 강하게 제지하기도 했다.

북한 측은 앞선 ARF에선 한국 외교 장관과 짧게 인사를 나누거나 마주 서기는 했다. 2022년 캄보디아 ARF 땐 박진 당시 외교부 장관이 안광일 주아세안 북한 대사에게 "남북 대화가 필요하다"고 하자 안 대사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고 답했다. 안 대사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ARF 땐 박 전 장관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고 비핵화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를 듣는 모습은 보였다.

이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27일 오전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으로 외무상 대신 현지 대사를 ARF에 파견했다. 그러나 앞서 한때 외교가에선 북한이 6년 만에 처음으로 최선희 외무상을 ARF에 보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 ARF 의장국인 라오스가 대표적인 친북 국가인 데다 최근 북·러 연대 강화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외 접촉의 반경을 넓힐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그러나 북한은 다자 무대에 외무상이 등판하더라도 자신들의 선 넘은 도발로 인한 '외교적 고립'만 절감할 것으로 판단하고 올해도 외무상 파견을 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비엔티안=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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