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 날씨가 도와줄 것인가
[서부원 기자]
이번엔 지리산 종주가 가능할까.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교실과 운동장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함께 1박2일 지리산 종주를 감행했었다. 많게는 20여 명에서 적게는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함께했고, 큰 사고 없이 모두 완주해 천왕봉 정상을 가슴에 품었다.
지난 2020년 역병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가장 먼저 등산로의 대피소들이 문을 닫았다. 군대 내무반처럼 다닥다닥 붙어 잠자야 하는 내부 구조상 불가피한 조처였다. 당일 산행이면 몰라도 대피소가 폐쇄된 상태에서 지리산 종주 프로젝트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작년 비로소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대피소가 열리면서 다시 지리산 종주 계획을 세웠다. 당시 학급 담임으로서 아이들에게 프로젝트의 취지를 설명하고 자발적 참가 신청을 받았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과거에 견줘 참가 희망자가 턱없이 적어 적이 놀랐다.
27명 중 채 절반이 안 되는 12명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산속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점에 고개를 가로젓는가 하면, 직접 취사를 해야 한다는 걸 못 견뎌 했다. 아예 산이 높든 낮든 산행이라면 질색이라며 손사래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요즘 아이들에게 소풍이나 체험학습 장소로 차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이요, 최악은 산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당시 12명 '전사'들의 마음가짐은 남달랐다. 2주 전부터 병행한 체력 훈련과 안전교육에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서로 웃고 왁자지껄 떠들며 너끈히 견뎌냈다. 참가 신청을 하지 않은 아이들이 먼발치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렇듯 꼼꼼하게 준비했으나 출발 당일 계획이 무산되고 말았다. 태풍으로 인해 지리산의 입산이 전면 통제됐기 때문이다. 입산이 통제되면 대피소 예약은 자동으로 취소되고 전액 환불 처리된다. 다른 학사 일정도 고려해야 하므로 종주 일정을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시 대피소를 단체로 예약해야 하는 일 또한 만만찮은 일이다. 그렇게 내년을 기약했다.
▲ 빠진 부분이 없도록, 모둠별로 따로 모여 개인별 준비물까지 일일이 점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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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부장 업무를 맡은 올해는 학생회 임원 아이들과 함께할 요량이었다. 지난 5월 말 학생회 정, 부회장 선거를 치렀고, 6월 말에 새로운 학생회 조직이 꾸려졌으니, 사실상 이번 지리산 종주가 올해 학생회 활동을 시작하는 첫 번째 사업이다. 명목은 학생회 여름 간부 수련회다.
해마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가졌던 행사지만, 예년의 경우 단합을 위해 체육 활동을 한 뒤 삼겹살 파티로 마무리되는 게 보통이었다. 올해 느닷없이 관행을 바꾸려니 반발이 터져 나온 건 당연지사였다. 더욱이 학생 자치라는 대의를 저버린 교사의 폭력이라는 막말까지 나왔다.
그들을 설득하는 데만 열흘 넘게 걸렸다. 지리산 종주를 다녀온 선배들의 경험담을 소개했고, 교육적 효과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지리산에 얽힌 전설과 우리 현대사를 오롯이 품은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지리산이 은연중에 가슴속에 스며들도록 온 정성을 다했다.
다 제쳐두더라도, 교사로서 학창 시절 아이들에게 지리산 종주를 경험시켜 주고 싶은 이유가 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느껴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27년 교직 경력의 나이 든 교사의 개똥철학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딱히 대꾸할 말은 없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고 성찰하는 경험이야말로 교육의 고갱이라 믿고 있다.
성급한 일반화라 조심스럽긴 해도, 요즘 아이들은 귀찮고 힘든 일은 무조건 피하려 든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과 선풍기 앞으로 달려가고, 약간의 시장기도 못 참는다. 배고프다 싶으면 수업 중에도 매점을 찾는다. 유독 생선을 싫어하는 이유도 가시를 발라내기가 번거로워서다.
수업 시간마다 화장실을 찾는 아이들도 많다. 이는 오줌이 마려워서가 아니라 지루한 수업을 못 견디겠다는 뜻이다. 나른함과 심심함도 못 참는다.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주지 않는 한, 자투리 시간이 생겨도 어떻게 활용할 줄을 몰라 두리번거리다 그냥 엎드려 잠자기 일쑤다.
압권은 체육 시간이다. 명색이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인데도 땀흘려 운동하는 걸 좋아하는 경우가 되레 소수다. 공 하나 던져 주면 반 아이들 모두가 달려들어 뛰고 차고 부대끼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내내 멍하니 앉아 소일하거나 운동장을 배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느덧 익숙한 풍경이 됐다.
믿기지 않겠지만, 턱걸이를 3개 이상 할 줄 아는 아이들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턱걸이는커녕 태반이 철봉에 잠깐 매달려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체력이 원체 부족한 데다 끈기마저 없다. 요즘 아이들이 굳이 내세울 만한 게 있다면, 암기력 정도라는 조롱이 '웃프다'.
그래선지 최근 들어 아프고 다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머리와 배가 아프다며 조퇴 신청을 하는 아이들이 학급마다 넘쳐나고, 체육 수업은 물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다쳤다며 문턱이 닳듯 보건실을 드나든다. 요 며칠 교정엔 절뚝거리는 아이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하긴 다리에 깁스하고 목발을 짚은 채 등교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학생부장으로서 매일 아침 교문에 서서 등교 지도를 하고 있는데, 대충 헤아려 봐도 열에 한 명꼴이다. 다친 이유도 하나같이 가관이다. 농구하다 다리가 부러지는가 하면, 축구공에 맞아 손목이 부러졌다는 아이도 있다. 계단을 오르다 발목 인대가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폭소를 터뜨릴 뻔했다.
힘든 건 기피하고, 참을성이 부족하며, 땀흘리는 걸 싫어하고, 체력조차 형편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교육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찾은 해답이 바로 스스로 체력적 한계를 절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뭍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이라는 지리산의 정상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준비는 끝났다,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올해 함께할 아이들은 13명이다. 학생회 조직이 총 21명이니, 비율로 치면 절반이 넘는 숫자다. 나를 포함해 3명의 교사가 동반하기로 했다. 당일 새벽, 출발 장소인 구례 성삼재 휴게소까지 태워주고, 다음 날 하산 후 도착 지점인 남원 백무동 주차장에서 우리를 기다릴 3명의 동료 교사도 있다. 총 19명의 학생과 교사가 함께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셈이다.
무더위 속에서도 매일 방과 후에 한두 시간씩 체력 훈련을 했고, 폭염 경보가 내려지면 실내에 모여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또, 취사를 위한 모둠을 편성하고, 챙겨야 할 것들을 분담시켰다. 손 빠진 부분이 없도록, 모둠별로 따로 모여 개인별 준비물까지 일일이 점검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날씨의 도움뿐이다. 작년처럼 출발 당일 입산이 통제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특히 최근에는 짧은 시간 좁은 지역에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내는 국지성 호우가 잦아 실시간 기상 예보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종일 맑았는데 어둑한 밤기운과 함께 거센 소낙비가 내리고 있어 어째 좀 불안불안하다.
학교 휴게실에 지리산 종주 채비를 끝낸 아이들의 배낭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자못 비장하다. 짐을 꾸리면서도 입산이 통제될 경우를 대비해 '플랜 B'를 마련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대견하다. 과연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할 수 있을까. 날씨는 매번 나의 설렘을 시샘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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